TV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이후 이따위 제목 다는데 재미 붙였나보다.) 를 비교해서 보여줬다. 둘 다 볼 만한 영화라는 감이 팍 들었고 이어서 우리나라에서 흥행을 하기에는 좀 역부족이겠다 싶은 감도 들었다. 첫째 감독이 아주 유명하지도 않고(실제로 이 두 여성 감독은 유명하지만 누구나 아는 스필버그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둘째 빅스타가 출연하지 않으며, 셋째 블럭버스터도 아니다. 아마도 태극기 휘날리며의 대단한 마케팅에 눌려서 멀티플렉스당 개봉관 두 개만 잡을 수 있어도 이 영화는 행운일 것이다. (실제로 상영관 16개의 멀티플렉스관에서 이 영화가 잡은 개봉관 수는 달랑 1관 이다.)

경매일을 하고 있는 마린은 늙은 애인 해리(잭 니콜슨)와 같이 주말을 보내기 위해 엄마 에리카(다이안 키튼)의 별장으로 향한다. 둘이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의 옷을 훌렁 벗어져치고 있을 즘. 예고도 없이 희곡 작가인 에리카가 동생과 함께 도착을 한다. 에리카는 언뜻 보아도 자신과 동년배로 보이는 해리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우리네 엄마들 같을 경우 딸이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중 늙은이를 사귄다면 아마 너 죽고 나 죽자며 머리채부터 잡기 시작했을 것이다.) 딸의 입장을 생각해서 자기네가 별장을 비우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에리카의 동생이자 마린의 이모의 제안으로 그들은 함께 별장을 쓰기로 한다. 그러나 해리가 마린과 거사를 치르려고 하던 중 심장발작으로 인해 병원에 실려가게 되고. 거기서 의사 줄리안(키아누 리브스)를 만나게 된다. 평소 에리카의 팬이었던 줄리안은 에리카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해리는 응급조치를 끝내고 별장을 떠나려고 하지만 줄리안은 위험하다며 회복이 될 때 까지 입원을 하거나 별장에 있으라고 한다. 별장에 머무는 쪽을 택한 해리. 하지만 마린도 이모도 모두 일 때문에 떠나야 한다고 하고 결국 에리카가 해리를 돌보게 된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난 이후 일에만 매달려 살았던 에리카와 힙합 레코드사를 운영하며 늘 젊은 여자들만 사귀었던 해리는 사사껀껀 부딪치게 된다. 하지만 젊은 아이들이 아닌 그들은 논쟁까지는 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자제를 한다. 그러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너무 외롭게만 살았던 에리카에게 해리는 남자로 보이기 시작하고, 늘 사랑없는 육체적 쾌락만 추구하는 만남만 해 왔던 해리는 에리카에게서 젊은 여자들에게서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를 눈치챈 마린은. 엄마가 늙은 해리를 사귀는 것을 받아들였듯 쿨하게 자신도 엄마를 위해 해리와 헤어진다. (둘은 별로 심각한 사이가 아니었다.) 여차여차 해서 에리카와 해리는 가까워 지고 해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줄리안은 계속 에리카에게 관심을 보인다. 결국 에리카와 해리는 헤어지게 되고 에리카는 해리와 자신의 이야기를 희곡으로 써서 연극을 올린다. 에리키는 젊고 잘생긴 의사인 줄리안과 사귀게 되고 자신의 생일날 다시 해리를 보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배우의 연기력이 얼마나 영화에 중요한 요소인가를 다시 한번 깨닳았다. 물론 감독과 각본도 훌륭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이안 키튼과 잭 니콜슨의 놀라운 연기였다. 다이안 키튼은 늘 냉철하게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사랑에 빠져서 고통스러워 하는 나이든 여자의 역활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뭣보다 궁상스럽지 않다.) 잭 니콜슨 역시 진정한 사랑 같은건 해 보지 못하고 새로운 물건을 사듯 여자들을 갈아 치우던 바람둥이에서 사랑을 처음으로 겪어보고 처음에는 그 감정에 두려워 하다가 점점 인정하게 되는 늙은 남자의 역활을 잘 해 낸다. 두 사람은 각자 연기도 훌륭하지만 호흡도 잘 맞춘다. 흔히 연기를 잘 하는 두 배우가 상대역으로 나오면 삐끗 하는 수도 있는데 이들은 마치 잘 짜여진 톱니바퀴처럼 연기한다.

사랑은 행복하고도 두려우면서 동시에 유치하기도 하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아무리 늙었어도 사랑을 하게 되면 세월 같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질 망정 유쾌하게 웃고 단 한번도 자신의 헛점을 보이지 않았던 완벽한 사람들이 갑자기 허점 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사랑에 대해 이렇게 유쾌 상쾌 통쾌한 영화는 당분간 보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제목이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 이라고 지은 이유는 순전히 키아누 리브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니라면 당최 이유를 모르겠다. 주인공들은 사랑을 위해 뭔가를 희생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찾고 느끼게 된다.) 에리카 에게 있어 20년이나 어리고 자신을 사랑해주며 잘 생긴 의사 줄리안은 분명 해리를 사랑함에 있어 버려야할 아까운 존재이다.

우리의 정서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다가 보면 어느새 우리는 에리카를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녀의 모든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조금만 늙어도 애 보는 할머니나 친정엄마 역활 이외에는 맡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로 볼때 저 영화를 보는 한국 여배우들은 정말로 헐리웃에 태어나지 못함이 한스러울 것 같다. 물론 헐리우드라고 해서 늙은 여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 세우는 작품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저 영화로 인해 어느정도 성공은 거두었다고 본다. 흔히 말하는 멜로물에 젊고 탱탱한 배우들이 아닌 60이 다된 늙은 배우들이 나와서도 전혀 추하거나 불쌍하거나 하지 않고서도 사랑을 말 할 수 있도록 한 감독의 역량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그건 감독이 여자였기에 저런 섬세함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잠깐이지만 에리카의 동생을 통해 쏟아지는 대사들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아니 여자들에게 옳소 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혹시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이 되거든. 그래서 사랑따위는 다시는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 이 영화를 꼭 한번 보길 바란다. 또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도,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도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멜로는 별로 없는데 이 영화는 사랑을 꿈꾸건 혹은 현재 진행형이던 간에 모두를 만족시켜 줄 것이다. 

아 그리고 늘 결혼을 밥먹듯 하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안해본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엄마를 조금씩 이해 해 볼까 생각 중이다. 엄마도 사랑할 수 있는 여자니까 말이다. 다만 남들보다 그 사랑이 좀 더 자주 그리고 주기가 짧았을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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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초 2004-02-1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서재에 들른지 며칠이 채 안되지만 영화를 정말 많이 보신다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들어올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는.. ^_^ 요즘 들어서 영화관련 티비 프로나 잡지류를 통 본지가 오래 되서 어떤 영화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지 이 작품은 이러하다저러하다는 류의 글을 읽어본지 참 오래 되었습니다 오늘 님의 글을 읽다보니 영화가 자연스레 보고 싶어지네요

플라시보 2004-02-13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별 일 없으면 일주일에 영화를 한편 보는 것이 기본입니다. 회사 건물 안에 메가박스가 있기도 하구요. 또 제 친구와 목요일 아니면 금요일에 으례 영화를 보는 것으로 잠정적인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야초 2004-02-14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가박스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기억이 납니다 마감반에서 일을 해서 가끔 일을 마치고 나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영사기사님을 졸라서 영화를 틀어달라곤 했죠 서너명이 모여서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서 밤과 아침이 겹치는 하늘을 보면서 별을 보면서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참 좋았어요 졸음이 오네요 자러 가야겠어요

플라시보 2004-02-15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서너명이서 그 큰 극장 한관을 통째로 전세낸 기분이었겠어요. 조금 크게 웃거나 떠들어도 눈치보지 않으면서 마치 좀 사는 집의 홈시어터 분위기 내셨겠는데요? 흐흐. 저도 늘 멀티플렉스 극장 그리고 페스트푸드점에서 꼭 한번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싶었었는데 이상하게 한번도 하질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