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몇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자려고 누웠다가 TV에서 이 영화를 해 주었다. 그래서 보다가 스스륵 자야지 하던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다 보고 자느라고 늦게 일어나서 결국은 모자를 뒤집어 쓰고 출근했다. (머리 안감았단 소리다.)

영화의 주인공은 포스터 제일 가운데 있는 남자이다. (맞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피비의 남동생. 나이많은 여선생과 결혼해서는 누나에게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하는 엽기적이고도 어리한)

19살의 주인공 세스는 학생이다. 그러나 집에서 나와 혼자 살면서 불법 카지노를 운영하는 바람에(카지노라고 하면 대단해 보이는데 집구석을 약간 개조해서 만든. 그러니까 우리나라 같으면 하우스 정도의 의미이다. 종업원이 달랑 1명인걸 보면 규모를 짐작하리라 믿는다.) 대학에서 잘린다.

세스는 늘 자기를 믿지 않고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를 만족시켜 주고 싶어 하지만 일확천금을 노리는 성격이라 쉽지 않다. 아주 노멀하게 좋은 직장에 받은 봉급 꼬박꼬박 저축하는 타입을 선호하는 아버지와 카지노건 뭐건 해서 대박을 꿈꾸는 아들은 늘 불협화음을 낸다.

그러다 세스는 어느날 제이티 말린이라는 주식 중개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세스가 항상 바라는대로 많은 돈을 벌게 되지만 회사에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사장은 뭐가 들이닥치면(FBI건 경찰이건) 바로 튈 수 있도록 옆 건물에다 전화기를 쫙 설치해 두었고(이들은 전화를 해서 고객과 주식거래를 성사시킨다.) 새롭게 그들이 판매할 주식의 회사에 찾아가보니 아무것도 없는 유령 회사였다. 그리고 자신이 판 주식은 어김없이 휴지조각이 되었다. 결국 세스는 증권 브로커 업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만 이 모든것이 사기와 협잡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을 살 돈인 전재산을 날린 고객에게 다시 돈을 돌려주고 발을 뺀다. (이 과정에서 FBI가 개입한다.)

나는 주식이나 증권가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세스가 한 일은 다단계 판매와 상당히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놀랐다. 일단 전화로 고객에게 거짓말을 하는것 그리고 그 거짓말의 시나리오까지 상관이 다 지시해 주는것. 그리고 누구나 쉽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까지 어쩌면 내가 경험한(경험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다단계에 미친 친구를 억지로 관두게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삼일인가 그 친구가 일하는 곳에 함께 있었다.) 것과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단 아는 사람을 끌어들여 인력네트워크를 하는 점은 좀 다르지만 말이다.

내 친구는 당시 대학교 1학년 이었다. 한참 순진한 때였는데 머리는 좋지만 가난한 학생이었다. 가난이 지겨워서 그애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쉽게 넘어갔다. 말 한마디만 들어봐도 사기치고 자빠졌네 같은 반응을 보이는 나 같은 인간도 있는 반면 세상에는 정말 순진한 사람도 많다. 나는 다단계에 들어가서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은 전부 무식하고 바보인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 봤을때 너무 멀쩡한 사람들이 많아서 좀 놀랐었다. 학교 공부랑 사람 약은거랑은 아무 상관이 없구나 싶었다.

세스가 주식을 사게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단 전화를 걸고 상대방의 혼을 쏙 빼 놓는다. 상대의 혼을 빼기 위해서는 어떤 거짓말도 상관없다. 겨우 19살 세스는 결혼 6년차가 되기도 하고 회사는 아버지 혹은 삼촌의 회사가 되기도 한다. 뭐든 고객과의 인간적인 공통점을 찾아내서 물고 늘어진다. 그 다음에는 여느 판매원처럼 징징 거리며 애원하지 않는다. 바짝 밀어붙여서 정신을 못차리게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정말 바보 멍충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 만큼 몰아세운다. 돈을 거절할 꺼냐고 눈 앞의 기회를 왜 안잡느냐고... 내일 생각해보겠다 혹은 누군가와 의논해 보겠다고 말하면 차라리 때려 치우라며 호기를 부린다. 순진한 사람들은 마치 여우에라도 홀린것 처럼 주식을 산다. 최소 100주 부터 많게는 2만주에서 5만주 까지 전재산을 단 한순간에 건다. 그리고 실제 운영되고 있지 않은 유령회사의 주식은 얼마후 곧 휴지조각이 된다. 세스는 돈을 많이 벌지만 대신 그의 아버지 말 처럼 가정 파괴범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 정도는 일확천금을 꿈꾼다. 나 역시 아직 복권을 사 보지 않았지만 그건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런 놀라운 행운이 나한테 일어날리가 절대로 없다는 다소 비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생각 때문이다. 나도 하늘에서 맞아 죽어도 좋으니 돈벼락이 떨어졌으면 할때가 있고 길을 가다가 현금이 가득든 주인잃은 가방을 줍기를 소망한다. 사람들이 다단계에 들어가 피해를 보는 것도 매일 로또 복권을 긁는것도 세스가 파는 주식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전재산을 거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전부 일확천금을 노리기 때문이다. 한 순간에 모든걸 걸고 한 방에 가지고 싶어 하는것. 그걸 바라는건 당연한거다. 누가 매일 아침 교통대란을 뚫고 출근해서 머리가 깨질만큼 일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서 팍팍하게 사는걸 좋아하겠는가. 그나마 그런 직장이라도 언제 짤릴지 몰라서 불안하다면 더더욱 사는 꼴이 한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차라리 부자와 중산층 그리고 하층민이 섞여 살지 않는다면 모르기라도 하지. 이건 날마다 돈 있는 인간들이 어떻게 쓰는지를 보며 살아야 하니 배가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집과 차를 마치 우리가 과자 사듯 쉽게 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돈은 내 일년치 연봉으로도 불가능 하다면. 그걸 눈으로 보며 살아야 한다면 일확천금에 대한 꿈을 버리기 힘들다. 나는 뭐가 못나서, 나라고 왜 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쉽게 말해 우리처럼 평범한 인간이 백만장자가 될 정도로 쉬운 세상이라면 아무도 돈 때문에 밧줄과 강물에 자신의 목숨을 매달지 않는다는 것이다.

TV에서 본 영화 치고는 무지하게 재밌었는데(사실 TV에서 공짜로 하면 다 재밌다. 예전에 너무 재밌게 공짜로 본 영화를 비디오로 다시 보니 전혀 재미 없었었다.) 그냥 재미도 재미지만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적어도 저 영화를 본다면 다단계 같은 곳에서 쓰는 수법을 습득하고, 그런걸 몰라서 걸려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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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2004-02-0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플라시보님 ^^ 매일 훔쳐보기 하다가 .. 이렇게 흔적을 남깁니다.
저두 어제 그 영화를 봤거든요. 휴일에 유일한 낙! 낮잠을 때리고 나니 도통 잠이 안와서요. ^^;;
그 세스라는 쥔공이 반지의 제왕에 나왔던 호빗들중 한명이 아닌지요? 머리 곱슬곱슬 하여 무척 귀여웠는데. 어제보니 올빽~ 머리는 왠지 약(@.@)한 애 같더라구요. -.-;;
저는 주로 산만하여 영화를 볼때 줄거리나 주인공 이름을 절대 기억을 못합니다.(멍청하다고 해도 할말 없음 --; 저 스스로도 의심할때 겁남.)
이 산만함.. 또 엉뚱한 길로 들어설려합니다.
그래서 기억력이 안좋은 관계로 주로 영화를 보면 어느 한장면 또는 어느 한대사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어제 본 영화에서는 세스가 그 (흑인)여자친구에게 말하는 장면있죠. 어렸을때 아버지가 사준 새자전거를 타다가 그만 넘어져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고, 아버지가 달려와 보더니 뺨을 때렸다는 그래서 세스는 그때 아버지가 정말 자기를 끔찍히 사랑한다는걸 알았다고 하죠. ^^;;
이 영화에서는 이 대사가 기억에 남아 버렸습니다. --..
웃기죠??
영화 아메리칸뷰티에서는 그 역시 기억안남 남자 주인공 (옆집 딸래미하고 도망친) 몰래 약팔던 애기요.. -.-;; 가가 비됴로 찍은 검은 비닐봉다리가 바람에 날라다니는 걸 찍었더랬죠. 그 장면이 그렇게 가심에 박히더니만...

플라시보 2004-02-0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인숙님. 세스라는 애는 호빗중 한명은 아니구요(거의 착각할 만큼 호빗틱합니다만 제가 말했듯 시트콤 프렌즈에 나오는 녀석입니다.) 저도 산만해서 주인공 이름 잘 기억 못하는건 마찬가지 입니다. 음. 그 자전거 말하는 장면. 그게 이 영화에서 핵심은 아니더라도 하나의 포인트이긴 한것 같습니다. 세스 아버지도 그 일을 한시도 잊은적이 없다는걸 보면 말입니다. 아메리칸 뷰티에서는 그 옆집 남학생이 웨스 벤틀리 인데요. -흔히 사람들이 조아킨 피닉스(리버 피닉스 동생)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다.- 비닐 날라다니는걸 찍은 장면이 와 닿는다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제 친구도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내내 그 이미지가 남았다고 하더군요.
TV영화의 좋은 점은 공짜로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데 있는것 같네요. 이인숙님도 저와 같은 시간에 영화를 돈 안들이고 보셨을테니^^ 세스 가만보면 좀 약한 애 같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람 눈은 비슷한가봅니다.
앞으로 여기서 왕왕 뵙기를 바랍니다.

나방 2004-02-10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꼬릿글만 한두번 달았지 들락날락 하면서 한번도 제대로 인사를 못했네요
안녕하세요 플라시보님, 뭐때문인진 몰라도 버릇같이 자주 들리게 되네요
아마도 그대 글빨에 사로잡혔나 봅니다. 그리고 요리 올려주시는거 유용하게 잘써먹고
있답니다. 짧고 명쾌해서 좋아요.

피비의 남동생으로 나오는 이배우.
얼마전에 lost in translation을 보는데 나오더라구여. 별로 비중있는 역은 아니었지만, 좀 깔끔하게 나와요 직업도 사진작가로. 그래도 말더듬는건 여전하고 어벙벙합니다.
이배우 이상하게 매력있지 않나요. 목소리도 맹맹거리는게, 영화에 주변인물로 나온걸 자주 본기억이 납니다. 왠지 빅스타가 될지도 모르겠단 느낌이 드네요. 과연;;;
lost in translation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란 제목으로 개봉하는거 같던데 정말 추천입니다.
간만에 영화 참 뭉클하게 본것같아요. 저 말도안되는 번역제는 불만이지만서도.



플라시보 2004-02-1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나방님. 여기서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아...정말이지 우리나라 개봉작 이름 짓는거 보면 헉겁할때가 간혹 있습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이전에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가 있었죠. (원제는 high fidelity였습니다.) 저도 lost in translation보고 싶었는데 피비의 남동생이 나온다니 더욱 땡기는군요.
흐. 그리고 밥 해먹기가 도움이 된다구요? 감사합니다. 근데 너무 애매모호하진 않던가요? 한동안 새로운걸 안만들었는데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사실 속으로 저는 누가 나보다 음식을 못 만들어서 저걸 참고하나 싶었거든요^^

야초 2004-02-1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이 명예의 전당에 오르실 당시에 아마 군복무중이었을 거예요 부대안에서 책을 구하기가 쉽질 않아서 휴가 나올때마다 알라딘을 통해서 책을 신청하고 받아서 보다가 플라시보님의 "언더그라운드-무라카미하루키-"에 대한 서평을 읽으면서 나방님의 말씀처럼 글빨에 홀려서 정신없이 다른 서평들도 찾아읽었어요, 자주 들른다는 입에 발린 소린 하지 않을게요 가끔씩 꾸준히 잊지 않고 들르겠습니다 항상 안녕하세요

플라시보 2004-02-1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명예의 전당에 오를때 군복무 중이셨다구요? 흐흐. 오래전 일 처럼 느껴지네요. 그동안 알라딘이 많이 변하기도 해서 그런것 같습니다. 가끔이라도 오셔서 재밌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