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와 나 -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와 함께한 삶 그리고 사랑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집은 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다. 우리집 개답게 (어째서인지 우리 집에 오는 강아지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먹을 걸 무척이나 좋아하고 산만하며 더불어 시츄라 덩치가 약간 있다. 먹을 걸 좋아하는 점 이외에는 우리 가족 탓임이 분명했다. 냄새에 민감한 엄마는 개를 '좋아하는' 우리가 모든 뒤치닥거리를 한다는 조건하에 개 기르는 걸 허락했고 아빠는 너무 바쁘셔서 걸핏하면 달려들어 장난치는 녀석과 느긋하게 놀아줄 수 없다. 그리고 불행히도 나는 내 방조차 청소하기 싫어하고 매사가 느슨한 주인라 제대로 혼내는 것조차 잘 못했다.

 

동생과 배변 치우기/뒷정리 하기/목욕시키기 등으로 싸우기는 해도 녀석은 우리집의 귀염둥이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작은' 개들과는 덩치가 다르긴 해도 손바닥만할 때부터 키워와서 이제는 그 덩치조차 귀여워 보이고, 엄마가 '저 바보'라고 말하는, 자기 꼬리를 잡기 위해 빙글빙글 도는 모습조차 흐뭇하게 바라본다. 다른 집 개들은 주인이 우울하면 위로도 해준다는데 이 녀석은 내가 울 때조차 자기 좀 편하게 자겠다고 날 두고 총총거리며 방을 나가 순간 어이없어 날 웃게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저렇게 귀여운데!

 

아마 내가 말리를 만났다면 일단 겁에 질려 백리밖으로 도망갔을거다. 저멀리서 눈을 빛내며 달려오는 덩치 큰 리트리버 개라니! 하지만 말리라면 우헤헤 웃음이라도 흘릴 표정으로 내 뒤를 쫓아와 장난을 쳤을거란 생각이 든다.

우하하. 생각만 해도 웃긴 장면이다. 비록 말리 밑에 깔려있는 게 바로 나고 내가 개 침으로 세수하는 걸 싫어한다는 걸 염두에 둔다쳐도 남들보기에 흐뭇할 장면임은 틀림이 없다. 게다가 그 큰 개가 날 싫어해서 쫓아오지 않은 게 어딘가!

 

말리보다 덩치는 작지만 말썽으로는 빠지지 않을 개를 기르는 입장에서 책을 읽으며 난 단박에 말리가 좋아졌다. 강아지들이 너무 얌전해도 재미없다는 건 말썽많은 개를 겪어본 사람만이 (씁쓸하게 웃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일일거다. 그리곤 포기한 듯 웃으며 '그래도 착해요'라고 말하겠지.

 

개를 기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몇 년이 지나면 말도 알아듣고 제 앞가림을 하는 아이들과 달리 개는 평생이 지나도 못 알아듣는 말이 있고 뒷정리를 스스로 할 수도 없다. 배변 습관을 잘 들이지 않으면 집안은 지린내로 진동을 하고 벽지를 물어뜯는 일도 다반사며 어째서 휴지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다 물어뜯어놓아 집 안을 온통 하얗게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물을 싫어해 목욕 때마다 주인에게 달려들어 결국 주인도 목욕을 하게 만들고 뭔가에 집착하며 물어뜯어 놓기도 한다.

 

그렇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돌보지 못 하면...' 하고 엄포를 주는 게 장난이나 협박이 아닌 것이다. 집안의 개를 제대로 돌보지 못 하면 집안의 사람들도, 그 당사자인 개도 불행해진다.

 

하지만 그 처음의 미칠 것 같은 과도기를 겪고난 뒤 슬슬 이 작은 존재가 내 삶의 한 구석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면 어쩐지 내가 손해보는 것 같은 공존생활을 즐기게 된다. 축축한 콧등이 손바닥을 문질러올 때, 동그랗고 까만 눈이 난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현관 앞에서 날 반기며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고 있을 때.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퍼지는 걸 막을 수 있는 '귀찮은 일'이란 없다.

 

그 순간 귀찮던 '개'가 '가족'이 된다. 아무리 내가 화를 내도 내게 화내지 않을 사랑스러운 가족이. 그런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 말리를 만난 존 그로건은 행운아인 셈이다. 사람을 붕 날아올라 환영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개, 남의 얼굴에 침 범벅을 만들어놓고 신나하는 개, 다른 사람들에게 "얘는 사는 게 즐거운가 보군요"라는 말을 예사로 듣는 개. 그런 개 옆에 있으면 피곤한 날조차 얼굴에 웃음꽃이 피지 않을까?

 

하지만 슬프게도 개의 수명은 짧고 강아지로 있는 기간은 더 짧다. 늘 곁에 있던 '존재'가 사라진다는 건 그 존재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쓸쓸하고 슬픈 일이다. 내가 기르던 첫 강아지가 죽었을 때 나는 꼬박 일주일을 울었다. 마지막을 보지 못했기에 실감은 나지 않은데 집 안 어디에도 그 조그만 녀석이 없다는 것, 더이상 컹컹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 자꾸 날 괴롭혀댔다. 모르겠다, 그 때의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리 성실한 주인은 아니었지만 그 동그랗고 까만 눈에 홀라당 빠져있었다. 그 눈이 사라진 게 슬펐고 잘 대해주지 못해서 괴로웠다. 이런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며 100% 사랑해준 그 작은 존재가 뒤늦게 안쓰러웠다.

 

그렇다. 자신의 100%로 주인을 사랑하는 존재가 없어진다는 건, 상상 외로 쓸쓸한 일이다.

 

그래도, 그런 슬픔도 감수할 정도로, 반려동물이란 존재가 인생 안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인생은 풍부해진다. 말리와의 추억이 가득한 <말리와 나>를 보라. 인생이 초콜릿 상자와 같다면 반려동물이 있는 인생은 또 다른 초콜릿팩이 딸려오는 스페셜 초콜릿 상자일 것이다.

 

<말리와 나>. 고맙다, 새삼 우리집 강아지의 사랑스러움을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 내 인생이 작은 존재로 인해 얼마나 풍요로운지 깨닫게 해줘서.

 

 

-말리는 그저 덩치 크고 사랑스러운 멋진 개로, 침입자를 공격한다고 해봐야 죽도록 핥아주기만 할 녀석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 집을 노릴 수도 있는 좀도둑이나 공격자들이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이들에게 말리는 덩치 크고 힘이 세며 걷잡을 수 없이 날뛰는 개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69)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멈춰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항상 날뛰는 말리가 어깨를 제니 다리 사이에 끼고는 큼직하고 뭉툭한 머리를 제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꼬리는 축 늘어져 있었는데 이 꼬리가 우리 두 사람 중 하나 아니면 무엇인가를 치지 않는 모습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눈을 제니 쪽으로 향한 말리는 작은 소리로 낑낑대고 있었다. 제니는 말리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갑자기 얼굴을 말리 목의 두툼한 털가죽에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창자를 끊어내듯 격렬하고 멈출 수 없는 흐느낌이었다. (76)

 

-거칠 것 없는 야생마 같은 말리도 패트릭이 옆에 있을 때는 달라졌다. 말리는 아마 패트릭이 연약하고 힘없고 조그만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 듯했고, 그래서 아기가 옆에 있을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으며 아기의 얼굴과 귀를 부드럽게 핥아주곤 했다. ~ 말리는 패트릭 주변을 맴도는 마음 착한 거인이었으며 이제 2등으로 밀려난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155)

 

-말리가 그렇게 믿음직하고 단호한 태도로 우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개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너무 맞는 말이다. (169)

 

-하지만 손바닥으로 살짝만 쳐도 분노가 담겨있거나 아니면 엄한 목소리로 야단이라도 치면 즉시 깊은 상처를 받는 것이었다. 덩치는 태산만한 녀석이 엄청나게 예민하다는 얘기다. 제니에게 맞았다고 다친 것은 아니었고 다친 것 긑처에도 못 미쳤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제니가 말리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 것이 분명했다. 제니는 말리의 모든 것이었고, 세상에 둘뿐인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였는데 이제 제니가 말리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제니는 말리의 여주인이었고 말리는 충실한 종이었다. 제니가 때릴 만해서 때렸다면 말리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고 맞고 있었을 것이다. 개 치고도 말리는 영리한 편이 못된다. 그러나 충성심 하나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95)

 

-말리는 용기만 있다면 내가 갖고 싶었던 특징, 그러니까 거칠 것 없고 반항적이고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자세를 갖추고 있었고, 나는 녀석의 이런 모습에서 대리 만족을 얻었다. 그리고 말리는 삶이 아무리 복잡해져도 삶 속에 단순한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무리 많은 지시를 받아도 말리는 항상 의도적 불복종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상전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말리는 자기 자신의 상전이었다. (196)

 

-2년 전 우리가 집으로 데려온 것은 살아 숨쉬는 생물이었지 구석에 세워놓는 액세서리가 아니었다. 좋든 나쁘든 말리는 우리 개였다. 우리 가족의 일부였고, 무수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말리는 우리에게 받은 사랑을 수백배로 불려 갚아주었다. 말리가 우리에게 보인 정도의 충성심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99)

 

-말리가 어떤 식으로든 삶의 모범이 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발코니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리며 생각해보니 녀석이 '잘 사는 것'의 비결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며, 마치 사춘기 소년 같은 활력, 용기, 호기심, 장난기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내라.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달력이 몇 장이 넘어가건 여전히 젊은 것이다. 괜찮은 인생 철학이었다. 물론 소파를 찢어 놓거나 세탁실을 난장판을 만드는 부분은 제외하고 싶지만. (259)

 

-말리를 보면 인생이 짧다는 것, 그리고 순간의 기쁨과 놓쳐 버린 기회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전성기는 한 번뿐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은 꼭 갈매기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차서 바다 한 가운데를 향해 끊없이 헤엄쳐 가는 날이 지나면 물그릇의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굽히기조차 힘든 날도 온다. 패트릭 헨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에게도 인생은 한 번뿐이다. (328)

 

-말리는 이것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이 더 있었다. 이제까지 말리에게 한 번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 그 누구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 말이다. 나는 말리가 죽기 전에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말리, 넌 훌륭한 개야."(365)

 

-말리는 우리를 실망시키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값을 매길 수도 없는 소중한 선물을 공짜로 주었다. 조건 없는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준 것이다. 어떻게 주는지, 어떻게 받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조건 없는 사랑만 있으면 다른 것들은 대부분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아간다.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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