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성 살인사건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또다시 '살인사건'으로 끝나는 제목의 책을 골라봤다. 사실 일본 추리소설은 심리적인 면이 강조되는 작품이 많은 듯 해서 오래전부터 외국 추리소설에 익숙해져있는 나로서는 스트레스를 풀려다 머리 아플정도로 몰입하게 된달까. 결코 일본 추리소설이 싫은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스트레스 풀기'에 알맞은 추리소설 류는 아닌 듯 해서 의식적으로 일본 추리소설은 피해왔지만 모처럼만의 도서관 나들이에 추리소설만을 빌리려니 냉큼 '절규성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책을 한아름 들고 책장 앞에서 고민하기를 수 분, 어차피 고민할 거 그냥 빌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작고, 척 보기에도 우울한 분위기의 표지를 다른 책 위에 올렸다.

 

들고 다니기 쉽게 작은 책이라 당장 펴들었는데 생각 외로 가벼운(단순히 단편이라 그렇게 느낀 것 같지만) 이야기인데다 단편의 제목이 하나같이 ooo살인사건이라는 점에서 가벼운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 후기를 살펴보니 평소에는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을 피해오던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잡지청탁으로 처음 ~살인사건이란 제목을 달게되었다고 한다. 그 후 시리즈물로 쓴 단편을 모아 만든 작품이 바로 이 '절규성 살인사건'이라고 한다.

 

각 단편들의 제목은 흑조정 살인사건, 호중암 살인사건, 월궁전 살인사건 등 작품 안에 나오는(즉 대부분 배경이 되는) 장소의 이름을 딴 살인사건으로 되어 있다. 아무래도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이다보니 장소의 이름도 독특한 뜻이 있어서 작품 속의 숨은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절규성 살인사건>은 총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범죄사회학자인 히무라 히데오와 대학친구이자 조수로 일하고 있는 추리소설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다. 추리소설작가라고 해도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이야기에 재치를 더해주는 화자 역할으로 홈즈와 왓슨으로 치자면 충실한 왓슨 역할이다. 어딘가 초연한 성격인 히무라 히데오와 달리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성실하고 의욕 넘치지만 그만큼 추리실력만큼은 뒤쳐지는 어리숙함을 매력으로 뽐낸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일본판 홈즈와 왓슨같은 충실한 콤비의 짧은 단편이지만 확실히 일본 추리소설다운 '뒷맛 씁쓸함'이 은연중에 뿜어져 나온다. 특히나 마지막 작품이자 표제작은 '절규성 살인사건'은 작품 중 길이도 제일 길지만 제일 뒷맛이 씁쓸하기도 하다. 추리소설의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는 없으니 뭐라 설명하긴 힘들지만 절묘하고 매우 현실적이며 그래서 더 씁쓸한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끔씩 드러나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사고방식에 (추리소설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웃으며 공감할 수 있었다. 왓슨이 철저히 홈즈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좀 더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는 편이다. '통조림' 상태의 작가라는 건 만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실제하는 모양이다. 사실 내가 제일 공감한 건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그의 사고방식이었다. 그 유명하지만 사실상 일상 대화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이솝우화에 대해 나랑 생각이 같은 사람이 있다니 소소하지만 기뻤다.

 

아무래도 화자가 추리소설 작가다 보니 추리소설에 대해 '읽는' 관점이 아니라 '쓰는' 관점에서 말해주고 있어서 추리소설을 읽으며 추리소설을 다시 생각해보는 독특한 기회가 되었다. 그런 말들을 읽어도 고정관념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왜 추리소설 작가가 이렇게 추리를 못하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자꾸 머리에 떠올랐지만 말이다.

 

아리스가와-히무라 콤비의 추리에 흠뻑 만족하며, 오늘은 이만 추리소설을 접어야겠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완전히 텅 빌 수는 없는 것이라, 그 빈 머릿속에도 여러 가지 사념의 조각들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10)

 

-추리소설로 사람들을 속이는 테크닉은 마술과 달리 전혀 실용적이지 않아. 작가만 알고 있는 답을 맞춰 보라고 하면서 일부러 독자가 알아채기 힘든 힌트를 이곳저곳에 뿌려 놓고 혼란에 빠뜨리기만 하면 되니까. (21)

 

-그것은 이 안에 있습니까? 그것은 입는 것입니까? 그런 질문을 스무 번 하기 전에 출제가 생각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를 맞추는 게임 말이다. 질문의 답을 모으면 모을수록 정답은 점점 미궁에 빠지는 국면의 초조함과, 정답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이 게임의 참맛이며, 그 맛은 추리소설의 수수께끼 풀이와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21)

 

-뭐가 '마음의 어둠'이란 건지. 그런 알맹이 없는 표현을 통해 자신이 무언가를 포착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전쟁, 빈곤, 질병, 그런 '커다란 이야기'를 소설의 주제로 사용하기 어려워진 요즘, '마음의 어둠'이란 것을 사랑하는 작가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웃기지도 않지. 그런 표현을 사용하면 자신이 좀 똑똑해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마음의 어둠, 마음의 어둠, 마음의 어둠. 얼마나 알기 쉬운 표현인가. 이렇게 읊다 보면 모든 사고를 정지시킬 수 있다. '활기찬 인생',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은행이나 보험광고에 필적하는 저질 표현이다. 모두 입을 모아 큰 소리로 마음의 어둠을 노래한다. 그 백 코러스는 트라우마, 트라우마, 트라우마.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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