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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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낭패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가 생각한 단어는, 슬프다거나 가슴이 먹먹하다는 말보다 낭패, 라는 조금은 현실적인 단어였다. 크지 않은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그 눈물이 떨어져 아슬아슬하게 책을 비켜나가 책상에 떨어지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 어느 차가운 부분은 계속해서 어쩌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울면 안 되는데. 내가 왜 이 시간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까.

 
내 평소 습관대로라면 난 이 책을 적어도 5년 이후에나 읽게 될 거였다. 아니, 어쩌면 영영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어려서부터 청개구리였던 나는 책을 고를 때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무의식중에 리스트에서 빼버리곤 한다. 불특정 다수의 뒤를 이어 읽는다는 생각에 불쾌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때문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칭찬에도 난 이 책을 살 생각도, 읽을 생각도 없었다. 아마 엄마의 요청이 없었다면 영원히 인연이 없었을 테지.

 

난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굶고 살진 않아도 원하는 걸 다 사 줄만큼 넉넉하진 않았던 형편에 내가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책을 읽을 때, 엄마는 내 앞에서 말한 적은 없지만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걸 자랑스러워하시는 눈치였다. 책을 읽느라 숙제를 안 할 때는 매를 들면서도 내가 책을 사달라고 조를 때면 동네 책방에 같이 나가 책을 함께 고르곤 했다. 집안에 책이 쌓여가는 요즘에도 청소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해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의 큰 딸이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좋으신 모양이다. 내가 주문한 책이 집에 배달되어 올 때면 엄마는 책 제목을 하나하나 살피시곤 전화를 걸어 택배가 왔다는 걸 알린다. 책 정리는 언제 할 거냐는 잔소리와 함께.

 

엄마도 어렸을 적 책을 좋아하셨다 했다. 가죽공장 하시던 할아버지가 엄마 손에 몰래 쥐어준 용돈으로 책을 하나하나 모으셨다고. 외할머니 댁 오래된 책장에서 먼지가 쌓인 옛날 책들을 내가 찾아낼 때마다 이게 아직도 있었네! 하고 즐거운 듯이 웃었다. 누렇고 바삭바삭 마른 책장을 넘기면 먼지가 피어올라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연신 코를 문질렀다. <모모>, <꼬마 니꼴라>, <오성과 한음>...그 많던 책들이 어디가고 이것만 남았네, 엄마는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책장을 넘기느라 그 말을 흘려들었다. 우리가 자라면서 엄마는 점점 책에서 멀어져갔다. 내가 어렸을 적엔 나와 함께 책을 보던 날도 있었지만 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며 엄마는 책을 읽는 것조차 사치라는 듯이 내가 내민 책을 식탁 한 구석에 모셔두기만 했다.

 

그런 엄마가 오랜만에 내게 책 얘기를 꺼냈다. 요새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 유명하더라. 한 번 읽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번, 자취하다 들린 집에서 엄마와 오랜만에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 그럼 내가 책 주문 넣을까. 아마 다음 주면 받을 수 있을걸. 엄마는 그럼 고맙구, 라고 말하곤 다시 걷기에 열중했다. 그리고 다음 주, 집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은 터라 엄마의 반응이 궁금했다. 오랜만의 독서에 그 유명한 <엄마를 부탁해>. 거의 매일 꼬박꼬박 통화해 실없는 일상을 늘어놓는 전화에 새 주제가 끼어들었다. 엄마 책 받았어? 어쩐지 자랑스러운 마음에 들떠서 묻자 엄마는 받았지 그럼. 뜯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었어. 하고 대수롭지 않은 투로 얘기했다.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건, 책을 한 번 들면 끝까지 놓지 않는 내 평소 독서 습관이었다. 어땠어? 그냥, 별로 슬프진 않던데. 그래? 사람들이 되게 슬프다고 하던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런가 보지. 하긴, 아이가 있는 엄마가 보는 거랑 자식이 보는 거랑은 좀 틀리겠지 역시? 담담한 엄마의 반응에 나는 오히려 안심했다. 그리고 그 주말, 집에서 책을 가지고 학교로 돌아왔다.

 

엄마와 나는, 내 또래 여자애들이 엄마와 나누는 얘기보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눈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렸을 적에는 오히려 별로 대화가 없는 편이었다. 나는 방구석에서 책 읽기를 더 선호했고 엄마는 늘 다치고 돌아오는 동생을 돌보느라 바빴다. 중학교에 올라가며 사교성이 떨어지는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엄마와 동생의 뒤를 따라다니며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듣다 적절한 대답을 해주던 엄마가 내가 대학생이 된 이후로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내가 큰 딸이라 그런 것일까. 엄마는 종종 동생이 없을 때 우리가 어렸을 적 고생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야기의 끝은 항상 엄마의 눈물과 빨개진 코다. 한 맺힌 울음에 헐떡이는 엄마에게 물을 따라주는 건 유일한 청자인 내 몫이다. 우리는 일상의 이야기도, 푸념도, 심지어 가끔은 철학, 종교의 이야기도 나누곤 한다. 이런 대화에서 내가 느끼는 건, 결국 난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거다. 드러나는 성격은 다른데 생각하는 방식은 묘하게 닮아있다. 그 사실이 가끔은 웃기고 가끔은 애틋하다.

 

엄마가 <엄마를 부탁해>를 보고 울었다, 혹은 슬펐다고 한다면 난 절대 책을 펴들지 않았을 거다. 울면 지는 거라고 절대 나가서 울지 말라는 엄마의 가르침 덕분인지 잘 울지 않는 날 울리는 주제가 바로 ‘가족 간의 정 혹은 부재’니까. 엄마를 믿고 펴든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난 후회했다. 내일 학교에 부은 눈으로 가겠구나.



엄마는 힘이 세다고, 엄마는 무엇이든 거칠 게 없으며 엄마는 이 도시에서 네가 무언가에 좌절을 겪을 때마다 수화기 저편에 있는 존재라고.

 


내가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내게 어학연수를 권했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싫어하는 건 죽어도 하지 않는 황소고집 덕에 하기 싫어하는 영어는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엄마는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곧잘 하던 딸애가 점수를 그렇게 받아온 것에 놀랐는지 평생 나와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어학연수를 입에 담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그저 대학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가 원했던 영어 공부에 대한 열정과 의지보다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학교생활에서 좀 멀찍이 떨어져 자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난 속내를 감추고 어학연수에 가겠노라 말했고 엄마는 그때부터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가며 내 어학연수 준비를 했다.

 

내가 비행기로 16시간 떨어진 시애틀에 도착해 산더미 같은 짐을 안고 기숙사 방에 들어섰을 때 제일 처음 한 일은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거였다. 엄마? 응, 나 도착했어. 이제 짐 푸려고. 응응, 다시 전화할게. 새벽까지 내 전화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운 엄마는 피곤한 목소리로 입맛에 안 맞아도 끼니는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엄마의 지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낯선 침대 위에 짐을 풀러놓으며 나는 한없이 들떴다. 시차를 느낄 새도 없을 만큼 들떠서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학교 공부에서 벗어나 낯선 동네를 산책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나는 그 새로운 생활 속에서 종종 엄마에게 전화하는 걸 잊었다. 오랜만에 전화해 왜 전화 안 했어? 라는 엄마의 채근에 돈 많이 들잖아. 어차피 별 일도 없는데 뭐. 무심하게 답하며 밥 먹었냐는 질문에 대충 먹었다고 대꾸했다. 엄마는 내가 미국에서 핸드폰을 산 이후로 종종 전화를 걸어 내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시차 때문도 있었지만, 핸드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 탓에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매우 화를 내며 나를 탓했다. 나는 나대로 엄마가 너무 자주 전화한다고 화가 나 얼굴을 찌푸리고 엄마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시애틀에서 중부인 켄터키로 옮기자 상황이 달라졌다. 계절은 겨울에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 나는 우울해했고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발산하고 싶었다. 평소라면 가방 한구석에 잠자고 있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한국시간을 확인하는 게 내 일과였다. 엄마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면 지희니? 라고 묻는 엄마의 잠이 덜 깬 목소리에 나는 응...하고 어리광을 부렸다. 나는 엄마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였다.

 


엄마는 내가 전화 할 때마다 늘 밥 먹었어? 하고 확인한다. 아직 안 먹었어, 라고 답하면 왜 아직 안 먹었어! 라고 화를 내고 밥 먹었지, 하면 반찬 뭐 먹었어? 하고 재차 물어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어느 면으로 보나 사근사근 착한 딸은 결코 아니다. 전화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 전화가 와도 놓치기 일쑤다. 그래도, 내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하는 상대는 엄마다. 심지어 손가락이 다쳤다고 전화해 징징댈 때도 있으니까. 지방에서 자취하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전화로 안심시켜 드리기는커녕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걱정스런 목소리에 기뻐한다. 이 얼마나 어린 딸인지.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도 딸은 기억할 것이다. 아내가 이 세상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을, 당신이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을.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울었다. 눈물이 너무 나 다음날 학교가 걱정되어 3번에 나눠 읽을 정도였다. 내가 눈물이 많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어디서 나오는지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난 너무 울어 눈가가 따갑고 머리가 멍해질 때에야 내가 왜 이 책을 멀리 하고 있었는지 알아차렸다. 단순히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엄마가 그냥 그랬어, 했을 때 집어 들지 않았겠지. 나는 엄마가 우는 게 무서웠다. 처음 엄마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을 때 나는 휴지를 가져다 닦아줄 생각도, 울어서 목이 아픈 엄마에게 물을 가져다 줄 생각도 못했다. 우리 자매가 어렸을 적 엄마는 남들 앞에서 우는 건, 지는 거라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는 가끔 운다는 이유만으로 혼이 날 때도 있었다. 억울함에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씨근대는 건 고역이었지만 엄한 얼굴의 엄마 앞에서 나는 억지로 울음을 참아야 했다. 그런 엄마가, 내 앞에서.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아는 게 무서웠던 거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그저 아직도 어린 아이마냥 어리광을 부리고 어깃장을 놓고 엄마에게 기대고 싶었던 거다. 책장을 펴는 순간 나는 등장인물을 “너”라고 칭하는 그 어색함을 견딜 수 없었다. “너.” 엄마를 잃어버린, 그 전부터 잊어왔던 인물들은 나였고 우리 가족이었다. 그래서 울었다. 잘못을 들킨 어린애처럼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우리 엄마는 시골에서 태어나지도, 글을 못 읽지도, 무조건 참고 살지도 않는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수도권에서 사셨고 나만큼 문화생활을 좋아하며, 화가 나시거나 아프실 때는 버럭 소리도 지르신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가 우리 엄마 같았다. 어쩌다 택배를 부쳐줄 때면 구석구석까지 먹을거리를 꾹꾹 눌러 담는 엄마. 여행을 좋아해서 한나절을 여행상품 사이트를 뒤지는 엄마. TV에서 외국 풍경을 보여주면 어머- 어쩜 저렇게 예쁘니 하고 한숨 섞인 감상을 하는 엄마. 가게 나가느라 피곤한 몸으로 꼬박꼬박 저녁 반찬을 매일 만드시는 엄마. 똥오줌 못 가리는 강아지가 밉다 하시면서 살찐다 주지 말라했던 육포를 몰래 챙겨주는 엄마. 주말에 집에 가면 배가 터지도록 먹을 걸 내미는 우리 엄마.

 

그래, 나도 우리 엄마를 잘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우리가 대학생이 된 뒤 유난히 옛날 얘기를 자주 했다. 엄마가 국민학교 시절 셋째 이모 손을 잡고 둘이서 버스를 타고 고개를 건너 친척집에 놀러갔던 일, 유난히 엄마를 예뻐하셨다던 외할아버지가 가방을 주셨던 일. 그래서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엄마 역시 어린 시절이 있었고 엄마 안에서 그 시절은 늘 아련한 추억이라는 걸. 그래, 엄마도 어린아이였던 적이 있겠지.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우리 엄마였다. 어느 때라도 우리를 최선으로 아는 우리 엄마. 과연 나는 얼마만큼 엄마를 알고 있을까. “엄마”로서의 엄마가 아니라, 꿈 많았던 소녀 시절의 엄마를, 과연 나는 알고 있을까. 엄마는 내가 엄마를 “엄마”로만 기억해도 좋아할까. 우리를 낳았다고 어린 시절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기억되어도 엄마는 기뻐하실까.

 



나는 모르겠다. 아직 어린아이는 빽빽 울어대서 싫고 말 안 듣는다고 피해 다니는 내가 엄마를 이해하려면 아직도 많은 날을 보내야 하겠지. 어쩌면 먼 훗날 잠든 내 아이를 내려다보며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고 혼자 중얼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엄마가 그때까지 내 곁에 계실까. 나는 또 책을 덮고 울었다. 이 밤, 엄마가 나를 울린다.

 



발개진 눈가를 손으로 덮으며 책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늘 밤은 어느새 이렇게 깊었다. 나는 불쑥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침대로 파고든다. 언젠가, 아주 먼 훗날이 되더라도 엄마가 이 말을 내게 해주길 바라며.

 




얘야, 너는 그렇게 내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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