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표지부터 독특한 분위기가 풍기는 책을 읽는 내내 스토리와는 무관하게 프랑스 이름들이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굉장히 슬펐다. 이름치는 책도 제대로 못 읽는구나- 싶어서. 지금 다시 보니 그렇게 어려울 거 없는데 왜 읽다보면 헷갈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책은 이름치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야기다. 나는 영화로는 조금이라도 으스스하거나 놀라는 장면을 보지 못하지만 책을 볼 때는 어딘가 기괴한 구석도 즐기며 볼 수 있다. 시각에 청각이 더해지면 충격이 2배가 되기 때문일까... (단순한 겁쟁이라서일까...)

이 책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튀바슈 가문이 주인공이다. 우중충한 세계에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자 하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자살가게를 몇 대째 운영해 오고 있는 튀바슈 가족. 자살가게가 그들의 터전이고 생활이라 구석구석 죽음의 음침한 분위기가 배어있다. 가족 구성원들의 성격도 범상치 않다. 누나인 마릴린은 둥실한 몸매에 항상 자신이 쓸모없다고 여기는 여자아이고, 첫째인 뱅상은 자살에 관한한 매우 창조적인 예술가지만 항상 두통에 시달리는 뼛속까지 우울한 남자아이다.

이런 우울한 가족들 사이에서 막내인 알랑만이 유일하게 살아가는 걸 진심으로 즐거워 하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튀바슈 부부는 그런 막내가 (그것도 구멍난 콘돔을 실험해 보다 태어난 막내가!) 못마땅해 형, 누나와 같이 음침한 성격으로 키우려 애쓰지만 이 조그만 아이는 도무지 어둠에 물드는 구석이 없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항상 방실거리며 웃음을 보낸다.

<자살가게>에는 곳곳에 자살에 대한 기묘하고 재치있는 아이디어들과, 생소하고 (나름) 흥미로운 자살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가게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각각 다른 사연들이 있다. 가까운 사람이 죽어 그를 잊지 못해 죽고 싶다는 사람, 더이상 사람들을 참아내지 못하겠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위해 수많은 아이템이 채워져 있던 자살가게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가게의 신선고에서 동물이 빠졌다. 자살을 위해 독이 있는 동물을 사간 사람들이 그 동물에 정이 들어 다시금 살아갈 희망에 불탔기 때문이다. 간단하지만 이해가 가는 구절이다. 자신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아부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사람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튀바슈 가족에게 알랑이 그런 존재였다. 사람을 우울할 때 즐거운 것, 웃기는 것을 보고 마음에 위안을 삼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가 특히 그래서 우울할 때는 꼭 소장하고 있는 DVD 중 웃긴 것만 모아 연달아 보곤 한다. 뭐랄까, 항상 변하지 않고 즐거운 것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한 줄기 빛과도 같지 않을까.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알랑은 전염이 강하다. 웃음이 그런 것처럼. 몇 대째 이어져 오는 집안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꼬마는 형, 누나, 엄마까지 행복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죽음에 잠겨있을 때는 식욕이 없던 뱅상이 알랑에 의해 변해가고 식욕이 돌아온다. 자신이 쓸모없다 느꼈던 마릴린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있게 되어 기쁘다. 어린 시절 번번히 엄마를 기다리느라 버림받은 느낌을 느껴왔던 엄마도 그 마음의 상처를 잊어간다.

이런 가족들의 모습에 알랑을 모니코의 자살특공대 연수를 받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아빠 미시마는 그것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고 믿었지만, 오히려 막내 알랑이 없어지자 알랑이 보내온 엽서를 보며 각자 힘의 원천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튀바슈 가족에게 변화가 오고 있다.

-우리 역시 절망할 때가 있답니다. 세상 하직하고픈 이유가 없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가 준비한 상품을 우리 스스로 맛볼 순 없지요. 만약 그랬다간 제일 마지막 사람이 가게문을 아예 닫아야만 할 테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손님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35)

-벌받고 있는 겁니다. 학교에서 자살자에 대한 질문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근데 쟤가 뭐란 줄 아십니까? 아 글쎄, '자, 살자!'고 하는 사람이라나 뭐라나,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39)

- 순간, 미시마는 왠지 가슴 한복판을 빛이 가르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가게에서나 이층 아파트에서는 종종 기운이 차고 넘쳐 괄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 이곳 지하실 구석에 앉아 막내로부터 온 사연 몇 줄을 읽는 동안에는 전혀 그런 태도가 아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
아, 이 못 말리는 낙천주의자, 요 철 모르는 요정 같은 녀석! (130)

-뤼크레스, 마릴린, 미시마, 뱅상.....그 모두에게 알랑의 존재가 아쉽다. 마치 삶의 의미가 아쉬운 것처럼......(138)

-인간의 고뇌를 달래는 가족치료사,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반짝인다. 그것은 잊혀진 보배가 숱하게 빛을 발하고 있을 경탄할 만한 속내를 감춘 눈빛이다. (166)

- 날이면 날마다 인간의 머리를 꿈으로 가득 채우는 이 어린 소년은 세상 만물을 기분 좋게 적시며 졸졸 흐르는 한 줄기 시냇물과도 같다. 그는 우리를 미증유의 신천지로 이끄는 저 아름다운 수평선과도 닮았다. 두 발은 이불 속에서조차 모험 충만한 경주를 하듯 뒤척이는데, 방에 가득한 이 향기는......아이들의 몸에서 나는 상큼한 향기다. 그의 잠은 기발한 발상이 톡톡 튀는 기적 같은 현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이 틀림없다. 오, 아이의 머릿속이야말로 온갖 신기한 동화가 움트는 요람이거늘! (182)

-결말네타 포함/ 책 다 읽으신 후 보는걸 추천해요~

뭐랄까. 굉장히 재밌고 비틀린 느낌을 주는 책인데... 정말 작가를 만나고 싶어지게 만든다. 결말이 뭐 그래?! 하고 따지고 싶다. 어떡할거야, 당신... 급 우울해져 버렸잖아! 하고 따져보고 싶다.

어 떻게 보면 알랑이 가장 죽음에 근접했던 것이다.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 나머지 인생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극단성이랄까. 여러가지 이유로 자살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그 이유 안에 '자기'가 있었다. 하지만 알랑에게 '자신'이 있었을까. 단순히 임무의 완수. 자살특공대 수업을 착실히 들었구나, 알랑.

열린 결말인 듯도 싶지만, 해피 엔딩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생각할 수록 짜증이 난다. 자살이 우울한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슬픔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시 튀바슈 가족은 자살가게를 운영할까...
아아...제일 잔인한 건 너야, 알랑...

- 알랑은 붕대를 단단히 틀어쥔 채, 지난 일들에 대한 그 어떠한 아쉬움이나 미움도 없는 덤덤한 마음으로 저 위 가족들 얼굴을 바라보면서 흔들흔들 오르고 있다. 지금 보이는 저들 모두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갑작스런 신념, 저 얼굴들에 빛나는 환한 웃음이야말로 알랑의 일생일대 걸작이나 마찬가지다. 2미터가 남자 누나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튀바슈 부인은 난데없이 어린 시절 유치원 마당에 들어서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듯 가까워지는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 알랑의 임무는 완수된 것. 순간......그는 손을 놓는다!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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