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소설
장 미셸 코엔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이 내 눈에 띄인 건 작년이었다. 오색찬란한 하드커버도 눈에 확 들어왔지만 사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바로 제목. 다이어트 소설! 다이어트라니 이 세상 여자 반이상이 반응할 그 단어가 당당히 소설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여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그 책을 뽑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났다. 하지만 소심하고 컴플렉스 투성이인 난 쓸데없는 자격지심에 몇번이고 책을 들었다 놨다 하며 소심의 극치를 (도서관 CCTV에게) 보여줬고 결국 사람이 한적했던 어느 날 조심스럽게 뽑아 후다닥 대출해 집으로 뛰어왔다.

책은 두껍고 하드커버지만 생각보다 가벼웠고 무엇보다, 진부한 말이지만, 손에서 놓을 수 없을만큼 재밌었다. 아주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날신해진다'는 일에 나름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비록 게으름과 넘치는 식욕으로 제대로 시도해 본적은 없지만서도. 의식할 필요도 없는 제목에 굳이 과민반응했던 것도 실은 내가 스스로 날씬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그래서 이 책을 들고 집까지 종종걸음을 치며 책장을 넘기고 싶은걸 꾹 참고 있었다.

나는 다이어트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의 재기넘치는 이야기를 읽고 자기위안을 삼고 싶었다. '다이어트 소설'은 '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설의 주 무대는 살을 빼는 클리닉이며 주인공들 모두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이라는 외면보다 '사랑'이라는 내면에 집중한다. 왜 사람들은 살이 찔까? 왜 사람들은 자신의 몸매/몸무게에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을까?

작가는 '파리 클리닉'의 의사, 닥터 마튜 소랭을 통해 그 이유가 인간의 내면에 있다고 말한다. 닥터 마튜는 모든 의사의 귀감이 될만큼 환자를 위해 애쓰고 환자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의사다. 그의 클리닉은 단순히 살을 빼거나 섭식장애를 고치기 위한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마음의 결핍 또한 치료해 나간다. 닥터 마튜가 있기에 사람들이 변할 수 있었겠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각자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안고 클리닉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부모님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없어 먹기를 거부한 거식증 환자 사라, 쓸모가 없어졌다고 고용주에게 버림받은 유명 디자이너 랄프, 엄마의 바람을 알고 한없이 실망한 치대생 에밀리, 품위와 자존심으로 가족간의 사소한 비밀을 몇년이고 오해한 델핀, 남편의 바람에 상처받은 유쾌한 릴리안. 사람들은 낙원과도 같은 클리닉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지탱해가며 상처를 치료하고 마주볼 용기를 얻는다. 그 사람들은 '먹는 것'을 자신의 탈출구로 삼았고 그 결과로 더욱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섬세한 사람들이었고 악순환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믿음뿐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 또한 필요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시각은 새벽 1시였다. 사실 자기 전 가볍게 프롤로그만 읽으려고 집어든 거였는데 끝내 끝까지 다 읽고 늦게 자고 말았다. 나는 비록 클리닉에서 도움을 받았지만 스스로 다시 일어날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긴 그 사람들이 부러웠고 존경스러웠고 사랑스러웠다. 스스로 어쩔 수 없다면 도움을 구하는 것 또한 한 방법일 것이다. 그 결과로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순간의 자존심이 문제일까. 그렇게 열심히 애쓰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기특한(내가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사람들 중에서 랄프는 독보적인 존재다. 사실상 닥터 마튜가 영양학적인 면에서 균형을 잡아주었다면 랄프는 정신적인 면에서 사람들 사이의 균형을 잡아준다. 랄프의 경험과 굳은 의지는 사람들을 한 팀으로 묶어주었고 랄프에 비해서 어린 사람들에게는 든든한 보호자를 만들어 주었다.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길에 자신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나이를 떠나서 대단한 사람이다. 사랑이 분명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 형태는 다를지라도 '사랑'은 사람에게 살아갈 힘과 희망,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클리닉의 환자들이 사랑을 회복하고 나서야 살이 빠지고 삶의 목표를 잡게 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까.

비록 원하고 예상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유쾌하고 내 컴플렉스를 간접적으로나마 해소시켜준 유익한 책이었다. (책 속의 식단은 챙겨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이 책을 읽기만 해도 행복해져서 살이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환자들은 자기가 겪는 고통만큼 그대로 표현을 하곤 하지요. 사라는 사랑이 넘치는 아이예요. 자기가 아직 주지 못한 사랑, 아직 받아보지 못한 사랑...(28)

-랄프는, 인생이란 수많은 관문을 헤쳐나가야 할 문제들의 연속임을 알고 있었다. (67)

-사라는 자신에게서 욕구라는 감정이 샘솟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차갑기만 하던 몸이 서서히 따뜻하게 풀리는 현상을 느꼈다.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이 이토록 감미롭다는 것조차 그녀는 잊고 있었다. (73)

-더이상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마튜의 말이 옳았다. 지금이야말로 에밀리가 스스로를 지켜야 할 때인 것이다. (148)

-마음과 영혼의 깊은 곳에서 전해지는 견딜 수 없는 고통까지 감내해야 하는 에밀리의 온몸이 부를 떨렸다. 이런 내부의 학대는 망가진 위장에서 전해지는 그 고통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158)
-대신 그 질문들을 내부에 감춰두고 침묵이라는 자물쇠로 잠가버렸다. 그리고 수많은 양의 칼로리로 그 질문을 덮어버렸다. 그것은 고통의 주머니와도 같았다. 몇 년 동안이나 꾸역꾸역 먹어치운 음식물로 가득한 고통의 주머니. (179)

-뚜렷하고 새로운 목표 없이 보낸 요 몇 년이 자신을 살찌게 한 원인은 아닐까? 매일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는 지겨운 일상이 그의 육체에 반영되어 예전과는 다른 육중한 몸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 (195)

-접히고 또 접힌 살, 둥뚱하게 나온 배, 팽창할 대로 팽창한 피부는 곧 자신의 엄청나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아들이 건넨 몇마디의 말로 곧 사라져버렸다. 이런 말의 힘, 특히 침묵하고 있었던 말의 힘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299)

-그렇게 꽁꽁 묶어놓고 참기만 할 게 아니라, 제 안에 있는 눈물을 다 쏟아놨어야 했지 않나 하고 말입니다. 그 눈물이 쌓여 몸이 이렇게 부은 것 아니겠어요! (401)

-살을 빼고 싶다는 욕구 속에는 몸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 들어 있다네요. 번데기가 나비로 변태하듯이요. 결국 살을 빼서 우리가 닮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새롭게 출발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겠죠. (403)

-환자를 만나면 만날수록 느끼는 건데, 그들은 흔히 고통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경우가 많아. 물론 나도 그래. 얼마든지 다른 곳을 향해 문을 열고, 좀더 즐겁고 나은 것을 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이렇게 마음을 외부로 향하게 하는 것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발판이야.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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