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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블로그를 잘 둘러보신 분이라면 아실테지만 평소 독서량의 90%를 학교 도서관에서 해결하는 입장에서는... 여느 도서관과 조금 다르게 전공 서적들로 가득 찬 도서관이 조금 불만스러울 때가 있다. 특히 요즘같이 날이 더웠다가 비가 왔다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는 (어째서인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내 기분이 오락가락 정신없어지곤해서 나란히 꽂힌 책등을 열심히 들여다 보아도 어느 책 하나 뽑아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상당히 간단한 듯 복잡하다. 호불호가 은근히 뚜렷해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무조건 신뢰하며, 추리소설류는 무의식중에 손이 나간다. 그 어느 쪽에도 해당이 되지 않을 때면 다른 사람이 추천했던 책을 우선 골라 한 번 훑어보고 맘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일단 리스트에 추가한다. 그렇지도 않을 때에면, 표지가 예쁘거나 제목이 독특한 책들을 무작위로 뽑아 책을 훑어보고, 역자후기를 읽어본다. 뭐, 이렇게 써놓으니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빌리는 책의 80%는 추리소설, 나머지는 그냥 표지가 예쁘고 제목이 독특한 책이니 상당히 치우쳤다면 치우친 기준이랄까.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는 조건 중 당연, 독특한 제목에 속했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 일본 소설이 유난히 많아서 (영문모를) 오기로 이번엔 외국소설에 집중해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소설 책장을 지나 옆으로 눈을 돌려 제목을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물론 아니고 말고! 나야 언제나 금요일 저녁이길 원하지만, 세상일이 다 내 맘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가방에도 쏙 들어오는 책의 크기에 더더욱 만족하며 대출하고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금요일 저녁 같았다. 좋은 책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금요일 저녁에 비할바가 아니다.
이 유쾌하고 슬프도록 웃긴 책은 소극장 무대에서 매달 발표되었던 글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약간 낯선 방식의 '발표 형식'이라 처음에는 짧은 연극을 했던 대본인가? 했지만 아무래도 내 이해가 맞다면 소극장에서 자신이 쓴 글을 읽는 모임이 있는 모양이다. 확실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어야만 하는 방식 답게 글은 시종일관 톡톡 튀는 매력을 보여준다.
요일이 등장하는 제목을 가진 책 답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로 나뉜 목차지만 사실상 이야기들은 (일련의 순서가 있긴 해도) 옴니버스라서 요일과는 별 상관이 없다.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한없이 게으르고 어딘가 엉뚱하면서도 나름의 진지함을 가진 사람으로 설정해 놓았다. ...실제로 그런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불행히도 독일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 전에 독일에 갈 여비도 없지만.
호어스트(주인공)는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미루고 미뤄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심지어 도둑이 들어도 화를 내고 가는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게으른 남자다. 쓸데없이 자신에게 관대하고 하루종일 혼자 놀아도 절대 지치지 않을 그런 남자이기도 하다. 그런 호어스트의 일상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하며 어이없어 웃음이 나온다. 책의 처음 단편은 '티롤행 표 두 장'인데 이 짧은 글에서 나는, 호어스트라는 사람에게 무한한 동질감과 호감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느꼈다. 어쩜 저렇게 나와 같은 '짓'을 하고 있는지... 내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기에 나는 좀 더 크고 시원하게 웃을 수 있다. 아무래도 우리는 같은 '게으르지만 자신에게 관대한 과'니까! 아니 뭐...부지런한 분들이 보시기에는 '시간낭비'겟지만 당장 코앞에 (나에게는) 산더미같은 일들이 쌓여있다면 이정도 현실 도피는 귀여운 수준 아닐까 싶다. 어리숙해서 귀엽고 웃긴 호어스트, 게으름을 떠나 이렇게 웃음을 주는 남자를 미워할 사람이 있을까.
처음부터 이게 순서와 그리 상관없다는 작가의 말을 읽어서 인지 작품과 작품 사이에 전에 등장한 사람이 다시 등장할 때마다, 그리고 그 전편의 이야기가 슬쩍 비칠 때마다 반가워서 또 웃고 말았다. 이 작가는 독자(혹은 청자)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각 편마다 2~3장의 짧은 작품들이라 뭐라 설명하고 싶어도 그저 어이없는 개그의 일인자를 차지할만한 남자가 나온다, 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아... 이렇게 글재간이 없어서 어디 다른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싶어 하실까...이 리뷰를 읽으시는 분들도 이래서 어디 이게 무슨 책인지 알 길이 없잖아...하고 불안하시더라도 속는 셈 치고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음에 들어하신다면 더더욱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