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28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청개구리 기질이 98%인 나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같이 사람들이 너무 본 책은 어쩐지 손이 가질 않는 편이다. 이 책도 내가 애용하는 한 인터넷 서점에서 열심히 광고가 뜨기에 읽기도 전에 눈에 익기는 했지만 읽어볼 마음은 거의 없었다. (광고가 많이 뜰수록 마음이 멀어지는 이 비뚤어진 기질이란!) 하지만 학교 도서관에 신간이라며 정면에 꽂혀있는 이 책을 보자 어쩐지 표지의 개가 나를 유혹했다. 거기다 사실 제목도 독특하고 제목 폰트도 귀여우니 내가 좋아하는 표지 스타일이기도 했고.

이게 무슨 중대한 고민이라고 난 한참을 신간 책장 앞에서 고민했고 마침내 누군가가 그 책을 빌려가고 난 후에 결심했다. 저 사람 뒤에 빌려봐야겠다, 라고. 그렇게 빌려온 책은 귀여웠다. 무엇보다 내가 귀여워 하고 한편으론 싫어하기도 하는 '어린아이'가 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어리고 미숙하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충분히 성숙하다고 믿는 어린아이만큼 귀엽고 또 사랑스런 존재가 있을까. 물론 내가 그랬다고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책은 그런 어린아이가 현실과 맞닥트렸을 때의 (약간은) 극단적인 반응을 차근차근 집어가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어린아이는 잔혹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냐면 나는 어렸으니까. 너무해, 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잔인해, 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에서 루앤이라는 친구는 딱 그런 어린아이다. 엄마가 말하는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 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급작스런 친구의 변화에 거리를 두고 냄새나는 친구를 더이상 친구라고 여기지 않는. 읽으며 화를 내긴 했지만 그 나이대로 돌아가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게 어린 아이라는 거겠지.

덕분에 주인공 조지나가 급격한 환경 변화에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 아닌 수치심이며 분노다. 집에서 쫓겨나 차에서 자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조그마한 소녀.

-그러고는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엉엉 울었다. 그 애가 나를 감싸 안으며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내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13)

어린아이 였던 내가 조지나와 루앤에게 감정이입을 했다면 어른티를 내는 나는 조지나의 엄마에게 감정이입했다. 사이가 좋지 않던 남편이 '푼돈'을 남기고 증발해 버렸고,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은 고스란히 엄마의 책임이었다. 세탁소에서 일하는데다 집에서는 쫓겨났다. 이보다 더 짜증나는 상황이 있을까. 어린 아이들은 엄마에게 불평하고 하루에 두번 알바를 뛰어도 돈은 쉽사리 모이지 않는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돈'이 얽히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그건 조지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영리한 꼬마 아가씨는 '돈'이 있어야 이 짜증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 정확히는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알게되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개 납치'. 맹랑한 생각이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너무 무서운 생각이기도 하고! 하지만 납치를 했어도 마냥 귀여운 강아지에게 조지나는 어쩔수없는 정을 느끼고 그로 인한 죄책감과 돈을 벌고 싶다는 현실적인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며 서서히 어린아이의 유치함에서 벗어난다.

처음의 조지나가 물질적인 부재에 부끄러워 했다면 후반의 조지나는 착한 사람을 속이고 있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강아지의 맑은 눈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만하면 훌륭히 어른스럽지 않을까.

무티 아저씨는 등장인물 중 가장 호감 가면서도 또한 가장 무서운 사람이다. 언제 조지나에게 야단을 칠까...하고 조마조마하게 읽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는 인생의 조언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지만 실상 말은 별로 없는 독특한 존재다. 어린 조지나에게 그는 거지 아저씨였지만 스스로는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풍족하진 않지만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강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 강한 사람이기에 죄책감에 흔들리던 조지나를 자연스레 옳은 길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어른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진정한 교육법이 아닐까.

조지나의 발상이 귀엽고 웃음이 나게 하는 이 책, 어린 친구들도 어른분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때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독이 되기도 한다. (19)

-나는 두 눈을 세차게 끔뻑인 다음 발끝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리 비참해도 남들에게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52)

-'난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건 멋진 계획이야. 결국은 모두 다 행복해질 거야.'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다 진실이 될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134)

-나는 윌리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녀석의 두 눈을 바라보며 "슬퍼하지 마, 작은 친구야" 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윌리가 눈썹을 살풋 들어 올렸다. 녀석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그토록 참으려고 애썼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153)

-때로는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한 법이다 (200)

-때로는 말이야,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라고- (203)

-노트에 적어놓은 대로 조목조목 따르지는 않았지만, 나는 옳은 결정을 했다. 결국 내 마음이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한 짓에 대한 죄책감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시간을 한참 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애초에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던 때로. 그러나 나는, 적어도 '제 8단계'에서는 옳은 결정을 내렸다. (254)

-창밖을 가득 채운 까만 밤을 구경하면서 밤공기를 깊이깊이 들이마셨다. 좋은 냄새가 났다. 인동초와 갓 손질한 잔디처럼 싱그러운 향내였다. 그 냄새는, 조금도 고약하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만큼이나 상쾌하고도 풋풋했다. 살면서 다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그런 향기였다.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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