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라울 따뷔랭
장 자끄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난 사실 프랑스 문학에는 문외한이다. 내가 프랑스 문화를 접한 건, 고작 꼬마 니꼴라와 장 자끄 상뻬의 책들, 사랑해 파리 라는 영화 뿐이다. 결코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만...아직 기회는 많으니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겠지. 더군다나 내가 접한 프랑스 문화는 어쨌거나 최고니까.

장 자끄 상뻬를 처음 '만난' 건, 꼬마 니꼴라의 삽화를 통해서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무렵, 주말에 놀러간 외할머니댁의 오래된 책장을 뒤적였을 때 나온 먼지쌓인 붉은 책이, '꼬마 니꼴라'였다. 코가 얼굴만한, 그리고 얼굴은 몸만한 쬐그마한 아이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굴러다니는 듯(실제로 그런 적도 많고) 통통 뛰노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귀여웠지만 삽화! 그 귀여운 아이들! 그 아이들을 그린 게, 장 자끄 상뻬 라는 다소 길고 발음이 웃긴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삽화'만'이 아니라 책도 썼다는 걸 알게 된 건 내가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게 된 때였다. 저번에 (네이버에) 리뷰한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 이어,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까지. 다음번엔 '뉴욕'을 읽고 싶은데 과연 여건이 될까 모르겠다.

장 자끄 상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충 그은 듯한 펜 선이 친근한 삽화에 눈이 가는, 귀여운 이야기였다. 다른 무엇보다, 상뻬 책의 장점은 삽화이다. 옆은 색감이 선과 어우러진 삽화 덕분에 짧은 분량에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은 손을 놓은지 한참 되었지만 예전 끄적거리던 나로선 시원한 듯 섬세한 그의 펜선이 옛날에도 지금도 마냥 부럽다. 손으로 그려 구불거리는 선은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 같기도 해서 아기자기한 이야기에 꼭 맞는다.

이야기 역시 한없이 귀엽다.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라는 직접적인 제목처럼 자전거 균형을 잡지 못하는 아이(그리고 어른이 되어서까지)의 이야기인데... 뭐랄까, 한 페이지의 대부분을 이룬 삽화에 몇줄 되지 않는 글에 피식피식 웃음을 짓게 된다.

(이제 고작 2권 읽었지만)상뻬의 책에서는 친구관계가 유난히 자주 부각되는 것 같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친구'라는 관계가 그에겐 큰 의미였던 모양이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도 그랬고 이 작품,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역시 '친구'관계가 나온다. 조금 불완전하지만, 모든 관계가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평생의 비밀을 감추다 못해 다른 모든 사람들의 '진실'되어버린 것이 지긋지긋하고 불안해진 따뷔랭씨는 그걸 털어놓을 사람을 찾지 못한다. 좋아했던 여자는 농담이라 생각해 화를 냈고 상냥한 아내 역시 남편의 사정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친구라 여긴 사람에게 털어놓으려 했지만 타이밍이 나빠 결국은 그 앞에서 자전거를 탈 일이 생기고 만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술주정. 하지만 어쨌든 그의 나머지 인생은 평온할 것이다. 상뻬의 마지막 삽화 안의 그가 친구와 마주보며 웃고 있었으니까.

"라울 따뷔랭 자신은 원심력과 만유 인력, 그리고 중력의 법칙과 같은 신비로운 힘들을 다루는 데 지독한 어려움을 겪었다." 25

"왜냐하면, 따뷔랭은 자신의 실패의 비밀을 밝혀 내보려는 희망을 가지고 자전거의 모든 부분(안장에서부터 베어링에 이르기까지)들을 방법론적으로, 줄기차게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수리를 맡기기 시작했다."34

"사람들이 웃기는 사람들을 정말 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젓한 어스레함이 주는 무게를 갑자기 깨버릴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이 웃기는 사람들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둔다. 자신에게도 가슴이 있으며 이 가슴에는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영혼은 때로는 남과 함께 나누고픈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내놓고 말하고 싶어지는, 낭만이 과하게 들린 사람들이 자주 당하는 유혹을 따뷔랭도 느끼곤 했다."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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