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도서관 - 소설로 읽는 책의 역사
요슈타인 가아더.클라우스 하게루프 지음, 이용숙 옮김 / 현암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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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피의 세계」의 저자로도 유명한 요슈타인 가아더의 다른 작품. 이 책은 매우 특이한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프로젝트(?)가 한 번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맘에 들었다. 저자는 요슈타인 가아더 말고도 클라우스 하게루프라는 작가가 한 명 더 있다. 가아더와 하게루프는 각각 전화, 팩스 상으로 주고받으며 집필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두 명 나오는데 각자 한 명 씩 역할을 맡아 써내려 갔다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릴레이 정도가 될까. 소설 커뮤니티나 비툴 커뮤니티 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이지만 이렇게까지 흥미있는 건, 역시 작가들의 역량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표지는 크빈트 부흐홀츠라는 몽환적이면서 상상력이 넘치는, 그러면서도 잔잔한 그림풍을 지닌 화가의 작품으로 「마법의 도서관」에 꼭 맡는 표지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화가의 작품집이 한국에서도 출간되었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검색해 보시길~ (그냥 네이버 검색만 해도 쏟아져 나옵니다...)

'소설로 읽는 책의 역사 마법의 도서관'이 이 책의 긴 제목인 만큼, 책을 읽다보면 '책'에 관한 역사, 정보를 얻게 된다. 그것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작가 두 분이 다 오슬로에 살고 있던 관계로 노르웨이의 지명이 자주 등장하는데, 지리에 약한 나로선 그게 무슨 판타지에 나오는 이름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지명 이름이 (어찌보면)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으니 유심히 살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참고로 오슬로는 노르웨이의 수도로, 노벨 평화상이 수상되는 곳이기도 하다. 밑의 사진이 오슬로의 풍경. (출처 : http://www.fjord-tours.com/oslo/)



다른 한 곳은 책에 따르면 피엘란, 현재의 표기법으로는 피어랜드라고 하는 곳으로 그렇게 도시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평화로워 보인다. (출처 : http://www.fjaerland.org/)

아까도 말했다싶이 이 책은 작가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설정해 주고받은 원고를 모아 만든 책이다. 가아더는 둘 중 1살 많은 야무진 사촌누나인 '베이체'를, 하게루프는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무모한 '닐스' 를 맡았다. 책 안에서도 서로 떨어진 지방에 사는 두 사촌은 방학을 함께 보내고 난 뒤 '편지책'을 쓰기로 결정한다. 편지를 편지지에 쓰는게 아니라 노트에 써서 보내고 다시 돌려받는 형식으로, 말하자면 교환일기쯤 되겠다. 물론 보통의 교환일기보다 스케일이 (일단 우표 값이!) 크지만서도. 각자의 글 앞에는 닐스와 베리체의 아이콘이 있어 누가 썼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정말로 우체국을 통해 주고받은 '편지책'이고 2부는 닐스가 베리체가 사는 피엘란에 간 관계로 직접 주고 받은 듯 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웃음이 나는 게, 사촌지간이 주고받은 편지라 그런지 격의없으면서도 귀여운 표현이 자주 나온다. 서로를 정답게 비꼬는 표현이 나오는 건 당연한거고 "짱"이라든가 하는 표현이 나와서 풋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내용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사이좋은 두 사촌은 각자의 일상을 전하기 위해 편지책을 쓰기로 결정했지만 자꾸 주변에서, '이상한 여자', 비비 보켄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오슬로에서 봤던 그 여자는 베이체가 사는 피엘란에도 나타나고, 순식간에 어린이 탐정단으로 변모한 둘은 각자의 방법으로 그 여자의 비밀, "비밀의 도서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비비 보켄과 떨어진 곳에 사는 닐스에게는 그 여자와 관련된 듯한 사람이 자꾸 나타나 일상의 평화로움을 비틀지만 치기어린 닐스는 소심하게 겁을 먹으면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비록 덜덜 떨지라도.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선생님 부부와 자꾸 닐스의 곁을 맴도는 '스마일리' 때문에 닐스는 책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력이 넘치는 추리(...)를 거듭하고 베이체는 그런 닐스를 '사실'에 근거한 추리를 하자며 타이르면서도 역시 상상력이 펼쳐지는 걸 막을 수 없다. 결국 밝혀진 비밀은 비비 보켄은 '책의 해'를 맡아 노르웨이 중학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로 한 책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베이체와 닐스가 방학 때 쓴 시를 읽고 이 아이들에게 맡기자, 라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영감', 즉 여러가지 의심가는 상황을 만들어 줘 상상력과 박진감이 넘치는 '편지책'을 쓸 수 있게 한 거였다. 의심가는 선생님 부부는 비비와 대학 동창이었고, '스마일리'야 말로 비비와 아이들을 방해하는, 출판업계에 도전하는 '비디오' 업계의 관계자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몰랐던 책에 관한 지식들이 흥미진진하게 튀어나온다. 서지학자(bibliographer)의 기원이 그리스어로 책을 뜻하는 biblion에서 왔다는 것도, 고판본(incunabula)가 라틴어로 아기의 요람 또는 첫 출발기를 뜻하는 incunabula에서 왔다는 것도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현재도 도서관에서 쓰이고 있는 분류방식이 듀이의 십진분류표(DDC)라는 사실에 도서관을 떠올려보며 눈을 빛냈고, 37P의 곰돌이 푸 이야기는 선연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기 돼지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바지 멜빵을 태어나서 단 한 번 밖에 보지 못했지. 그런데 그 멜빵이 어찌나 새파란 색이었던지 한 번 보고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던 거야. 아기 돼지는 그 바지 멜빵을 다시 본다는 상상만 해도 엄청나게 흥분하곤 했지. 그러면서 끔찍하게 신경이 날카로워졌지. 만일 그 바지 멜빵이 진짜로 그렇게 눈에 시리도록 새파란 색이 아니라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걱정이었어. 만일 그 멜빵이 아기 돼지가 이제까지 수없이 보아온 보통의 별볼일없느 파란 색이라면? 하지만 크리스토퍼 로빈이 재킷을 벗었을 때, 아기 돼지는 기뻐서 기절할 지경이 돼. 그 바지 멜빵이 정말 자기 기억 속에 있는 그대로 시리도록 새파란 색이었거든. 그래서 아기 돼지는 그날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이야기는 그저 별것 아닌 멜빵 이야기 같지만, 사실 거기엔 그 이상의 뜻이 담겨 있어. 이 이야기를 읽으면 난 어떤 돛단배 그림이 떠올라. 언젠가 우리가 여행을 갔을 때 묵었던 어느 시골집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이야. 그건 분명 아주 평범한 배에 지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나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로 보였지. 매일 저녁 엄마는 나한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난 그 돛단배를 타고 지구를 돌며 낯선 나라들로 배를 저어갔던 거야. ~(중략) ~ 그리고 그때와 똑같은 기분이 크리스토퍼 로빈의 바지 멜빵 이야기를 읽었을 때 느껴졌지. 그래서 난 책 읽는 걸 그처럼 좋아해. 책을 읽을 때면 어느 정도는 나 자신도 작가가 될 수 있거든. (38p)

표지부터 내용, 읽고 난 후의 여운까지 완벽한 한 권의 책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오랜만의 강력한 책이다(실제로 이모에게 권했지만 사촌 남동생이 어려 거절당했음)! 
+흥미진진한 어린이책을 좋아하시는 분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책을 좋아하시는 분
+소피의 세계를 알고 계시는 분
http://niarain.tistory.com2009-05-28T15:22:01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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