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연극 2
다카오 시게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손을 대기 시작한 만화책은 그간 읽어왔던 소설보다 어느 면에선 매력적이었다. 아름다운 그림에 쉽게 읽히는 점까지. 처음 시작은 분명 얼토당치 않게 유행하던 순정 만화였던걸로 기억하지만 엄마 몰래 만화책을 빌리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계단을 내려가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학교 내에서도 여자애들 사이에 유행하던 만화책이 있어서 쉬는 시간이면 빌려온 아이 옆에 와글와글 북적거렸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홈즈와 루팡 시리즈를 읽으며 자랐던 나는 뻔한 순정만화에 이내 질려 추리만화로 눈을 돌렸고...만화 대여점의 단골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다 알고 계셨던 것 같지만 그 시절에는 빌리는 것도 보는 것도 어찌나 스릴있는 일이었는지.

난 지금도 만화책을 좋아한다. 순정만화도 좋긴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뻔한 스토리가 태반인 순정보다는 새로운 트릭이 잔뜩 나오는 추리만화라든가 스토리가 탄탄해서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만화들이다. 추리만화야...대부분 장편이지만 다른 하나는 대개 단편이라 적당히 아쉽고 여운이 남는 게 더 매력적이랄까.

'인형 연극'도 그런 만화책이다. 총 2권으로 끝나는 짧은 만화책. 그림은 화려하기보다는 동글동글 정감이 가는 그림체라 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림으로 책잡힐 책은 아니다. 애초에 이 만화책은 그림체가 아니라 스토리가 짠-하니까.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인형 연극'의 스토리를 간단히 말해보자면, 2700년대의 미래에는 1가정 1자녀 법이 시행되어 쓸쓸해진 가정을 위한 안드로이드, 통칭 '인형'이 유행하고 있다. 형제자매가 없는 어린아이들에게는 형제형의 인형을, 늙고 쓸쓸한 노인들에게는 말생대를 위한 인형을 만들어주는 변방의 쌍둥이 인형사. 삶을 주는 인형사의 피리소리에 인형은 눈을 뜨고 죽음을 내리는 인형사의 피리소리에 인형은 눈을 감는다고 한다. 에피소드마다 다 다르긴 하지만, 결국 인간의 희노애락과 지식을 배워나가는 인간과 흡사한 인형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꿈같은 이야기다. 기계가 인간과 같은 사고를 하기까지엔 갈 길이 아직 멀고, 그렇게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어디엔가 악용될테니까. 하지만 이런 인형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위해 태어난 섬세한 존재. 오직 인간을 사랑해 주기 위해서 태어난 인형. 이게 결국은 인간다운 이기심이라는 걸 알지만, 한 편으론 또 인간답게 변치않는 애정을 바란다.

이 만화에서 모든 '인형'은 각각 성격이 다 다르다. 인간과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진 '인형'은 외모도 성격도 닮은 구석이 없다. 공통점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주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점일까. 마치 인간처럼. 아니 오히려 인간보다 더 약하다. 인형사들은 인형은 '물건'이라고 잘라 말한다. 사용되기 위해 태어난, 목적을 가진 존재라고. 사용해 주는 것이 더 기쁠거라고. 그리고 물건은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다고. 그 말은 결국 인간에게 모든 책임이 달렸다는 말이다.

'민트'라는 인형이 있다. 어영부영 회사에서 짤리고 자포자기인 어리숙한 남자에게 쉽사리 납치된 어린아이 모습의 '인형'. 인형은 희노애락이 풍부하다는 말과 달리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하다. 자기를 꼬드긴 한 패를 기다리던 남자는 대신 다리를 삐었다는 가정부 '인형'을 얼결에 맞이하게 되고 '민트'의 문제점이 심리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알고보니 '민트'의 실어증은 형제형으로 만들어진 민트가 아이를 잃은 어머니에게 정신적으로 지쳐갔기 때문. 어리숙한 납치범을 '민트'는 마음에 들어하고 결국은 둘이 함께 한다는 이야기. "사람에게 상처받은 안드로이드는 사람에게서 치유받고 싶어한다"고 가정부(로 분한 인형사)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읽는 내내 이 책 속의 '인형'이 말을 하고 감정이 풍부하다는 걸 빼면 애완동물과 비슷한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사랑스럽게 애정을 담은 눈, 주인이 자길 신경써주지 않으면 풀이 죽는. 사람에게 길이 든 작은 동물들 같았다. 이런저런 분위기 있는 말을 잔뜩 늘어놓은 듯 싶지만, 내 우울한(...) 감상과는 별개로 부담없이 읽기 좋은 만화책이다. 물론; 2권으로 완결인데다가 2000년에 출간된 거라 대여점에 아직 남아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시간이 난다면 동네 대여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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