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의 야회 미스터리 박스 3
가노 료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항상 추리소설을 읽을 때에는 단숨에 뒷장을 열어 범인이 누구인지 동기가 무엇인지 확인하고픈 충동에 시달린다. 몇 번이고 머뭇머뭇 뒷표지를 잡았다가 떼며 아쉬운 눈으로 안절부절하며 읽게 되는 것도 습관이라면 습관일까.

소장하고 있는 책의 반은 추리소설일 정도로 (만화책을 제외한 책을 말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면서도 도통 늘지않는 추리력 때문에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답답스럽다. 그래서 예전에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같은 추리물을 좋아했었던 내가 요즘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어딘가 로맨스틱한 추리소설에 푹 빠져있다. 슬슬 해문에서 나온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전집을 다 모아갈 무렵이라(처음 1권을 샀던 건 내가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참 징하게도 오래 걸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다른 추리소설을 보고 싶었다. 80권이나 되지만 추리소설의 세계는 끝이 없는 법, 게다가 난 취향을 타기 때문에 아는 추리소설도 별로 없다.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며 책장을 파르륵 넘겨봐도 도통 마음에 차는 게 없었는데, 문득 두껍다면 두꺼운 책이 보였다. '제물의 야회' 이게 무슨 뜻이야... 제목을 도통 모르겠다, 음 글쎄. 앞표지가 어쩐지 기묘하다, 재미있을까. 뒷표지의 설명이 어쩐지 끌려, 읽어볼까. 진지한 추리소설 매니아분들이 보신다면 좀 야단맞을 가벼운 기분으로 책을 골라들었다.

애초에 나는 일본소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내가 처음 읽었던 일본 소설은 '빙점'이란 책으로 중학생에게는 너무 두껍고 정적인 책이라 인상은 강하게 남았어도 딱히 다시 읽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물론 나도 좋아하는 일본 작가는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라든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든가. 하지만 일본의 추리소설은, 어떨까.

뭐, 결론만 말하자면 책은 재미있었다. 다른 추리소설에 비하면 조금 두꺼운 편이지만 여러 가지 사건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뒷 내용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스케일도 크고 등장인물도 많아서 중간쯤 읽다보면 이름이 다 헷갈리긴 하지만 그런 것쯤은 이름치인 내게 익숙한 일이니까. 추리소설이라고는 해도 내가 한참 빠져있는 수사물의 냄새를 풍긴다. 처음에는 피해자(가 될 예정인 사람들)의 일상 등을 비춰서 어느 정도 감정이입이 될 때쯤 범인이 급습한다. 난 처음에 그 사람들이 무슨 일에 휘말려 사건을 풀어나가나 보다 하고 넋놓고 보다가 깜짝 놀라서 뒷 장을 넘기기가 무서웠다. 오히려 주인공은 딸을 잃고 아내와는 따로 떨어져 사는 고독한 형사와 그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전문 청부살인자로, 확실히 일본 소설답게 착실히 읽어갈 때마다 그 사람들의 심정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것 같았다.

읽다보면 통쾌하다든가 추리가 잘 풀려서 오는 그런 후련함은 어디에고 없는 것 같다. 일상에서 살인은 그 자체로 피해자를 전제로 한 범죄이고 그 피해자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 상처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 소설은 애초에 바탕에 깔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누군가를 잃는 것은 그게 사고에 의한 것이든 의도된 바이든 괴롭다. 감정은 누군가가 잴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어느 누구가 더 힘들다, 라고 잘라말 할 수는 없지만 누구든 사소한 아픔 하나씩은 품고 살아간다. 그 아픔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소화해 내느냐에 따라 사람이 강해질 수도 있고 손 쓸 수 없이 약해질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걸 질릴 정도로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까지. 일본과 우리나라의 제도과 과연 같은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디에나 부패된 조직은 있는 법이다. 오히려 그런 부패를 먹고 자라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는 법이고. 정석대로라면 그런 부패를 발견하면 거부하고 소탕해야 하겠지만. 과연 실제 사회에서 그런 일이 얼마나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아직 사회 생활을 잘 모르는 나조차 그런 '부패'는 상부에서 잘 일어난 다는 것도, 그렇다면 그걸 거부할 시에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모든 상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서도.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념과 커리어 사이에 고민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이었다. 오랜만에 일본 추리소설을 읽었는데 이렇게 찜찜하다니. 재미와는 별개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입맛이 쓴 책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가 죽어버렸다... 그래도, 이런 소설이 있다면 또 보고 싶어지는게...아무래도 중독성 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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