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적 내가 할머니집에서 가장 좋아하던 책들은 엄마가 어렸을 적 보시던 꼬마 니꼴라였다. 재기넘치는 스토리도 좋았지만 아직 어렸던 내게 가장 끌렸던 건 친근해 보이는 땅딸한 꼬마들의 그림이었다. 코는 멀찌만히 크고 어른에 비해 현저히 작아- 작다기 보다는 난쟁이 수준이었지만 – 발치에 굴러다니는 듯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의 그림이. 러프한 선에 꼭 필요한 것만 – 다른 말로 하면 여백이 아름다운 – 그림이었지만 통통 튀는 꼬마 니꼴라의 일상에 꼭 맞아 한 때 정신없이 따라 그리기도 했던 그림체였드랬다.

그런 그림체의 주인을 다시 찾았다. 귀여운 스토리와 함께.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그림체와 꼭 맞는 깜찍한 이야기이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져 외로운 아이와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하는 통에 외로운 아이가 만드는 귀여운 우정 이야기랄까. 어찌나 귀여운지 그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더래도 나는 여전히 그들이 귀여웠다. 장 자끄 상뻬가 그리는 그림, 글은 어딘지 천진한 구석이 있어 보고 있노라면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하고 내가 어른이 되어 어린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의 표지는 티끌하나 없는 흰 색에 반질반질하게 빛나 불빛 아래 비추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장 자끄 상뻬가 프랑스인이라 크고 붉은 글씨체로 Marcellin Caillou 라고 우리의 주인공 얼굴 빨개지는 아이의 이름이 쓰여있다. 처음에 그게 프랑스어로 얼굴 빨개지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물론 프랑스어를 모르는 나는 아직도 그게 맞은지 모르겠지만 흰색 바탕에 붉은색 글씨는 굉장히 강렬해 그 밑의 작고 작은 얼굴 붉은 꼬마가 더욱 귀엽게 보인다.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내 동생조차 뭐야, 하고 관심을 보일 정도로.


사실 이야기 자체는 간단하다. 작은 문제 때문에 조금 외롭게 지내는 아이가 친구를 만나 함께 지내는 즐거움을 알아간다는 것. 이야기가 간단한데도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는 건 이 이야기가 진짜 친구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에 만난 친구가 평생을 함께 할 ‘진짜’ 친구일 가능성을 얼마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짜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외롭게 사는가. 나는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해서 아이들과 놀기 보다는 책을 집어들고 구석에 뒹굴며 책을 읽었다. 사교성이 풍부한 동생과는 달리 친구라곤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학년이 올라갈 수록 그나마도 적어져 조금, 아주 조금 외로웠다. 굳이 어린이에게 한정할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친구란 존재는 필요하다. 외로움을, 시간을,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말하듯이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므로. 내 약점이, 다른 이들이 내 약점이라 여기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어 받아들여줄 친구를 사귀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까미유와는 달리.


그런데도 이 책을 읽다보면 희망이 샘솟는다. 저 어딘가 진짜 친구가 있고 나는 곧 찾을 수 있을거라고. 얼굴이 붉은 작은 까미유를 통해 내가 먼저 진짜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이 간단한 이야기가 얼마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다른 사람들이 정말 알았으면 좋겠다. 일단은 내 동생부터.

 

+진짜 친구를 찾고 계시는 분

+혹은 친구 사이에 의문이 생기신 분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좋으신 분

+꼬마 니꼴라의 귀여운 그림체가 눈 앞에 아른거리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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