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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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공포 장르는 좋아하기는 커녕 피하는 편이다. 어렸을 적 우연찮게 읽게된 공포 소설 한권 덕에 그 책이 있는 서재방에는 들어가지도 못했고, 다 큰 지금도 <장화, 홍련> 한 편 보고 일주일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런 내가 '흡혈귀'가 나오는 <나는 전설이다>를 보고자 마음 먹은 건, 미신적 존재인 흡혈귀를 과학적 시각으로 풀이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나는 전설이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건, 내 어학연수 시절의 막바지였다. 윌 스미스가 주연이라더라, 라는 소식과 함께 3번째로 영화화 되는 <나는 전설이다>라는 작품이 한참 인터넷을 뒤지던 내 눈에 들어왔다. 정보를 접하기에 인터넷보다 빠른 곳이 또 있을까. 당장 신나게 정보검색에 나섰다. 미국 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라 자료는 무궁무진했다. 판독능력은 바닥을 쳤지만, 기대감은 부풀어만 갔다. 영화보다 원작 책 쪽에.

 

원작의 팬이었던 사람들은 이번의 영화가 전작 못지않게 실망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나는 전설이다"라는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에서 느낄 수 있는 전설의 이중적 의미가 영화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원작 팬들은 다들 '헐리우드식 전설의 영웅'을 만들어놨다며 흥분하고 있는 듯 하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든 생각은, 책이 참 두껍다...였다. 그치만 두꺼우면서도 두께에 비해 가벼워 들고다니며 읽길 좋아하는 내 기호에 딱 맞아 흡족하기도 했다. <나는 전설이다>가 책의 절반밖에 오지 않는 길이였다는 건 좀 충격적이었지만. 뒤의 단편들의 기괴한 분위기도 나름 마음에 들어 즐겁게 읽어내렸다. 흡입력이 강해 읽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세시간여. 확실히 영화화할 만큼 비주얼이 강할 소설이었다. 내가 무슨 감독도 아닌데 읽어내려가면서 이미지가 떠올라 옛날에 유행하던 만화소설이라도 읽는 기분이었달까.

 

내용은 분량만큼 간단하지만 담긴 의미는 분량도 내용도 뛰어넘는다. 새로운 시각의(50년대였으니까) 흡혈귀와 "나는 전설이다" 고작 2마디에 압축된 모든 의미. 거기다 일상과 비일상을 절묘하게 버무린 묘사력까지. 왜 이 작품이 아직도 인기가 있는지 알만했다.

사람에게는 생존욕구가 가장 큰 본능이라고 한다. 살아가기 위해서 먹고, 자고, 움직인다. 하지만 주인공 네빌에게 가장 큰 욕구는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핵전쟁이후 모래폭풍으로 퍼진 '흡혈 박테리아' 덕분에 사람들은 죽거나 살아있거나 흡혈귀가 되지만, 네빌은 홀로 면역이 되어 있어 '인간'으로 남는다. 그는 흡혈귀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집을 수리하고 무장하였으며 낮에는 잠을 자는 흡혈귀들을 '사냥'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생존본능이라고 볼 수 도 있다. 살아가기 위해 적을 죽인다, 는 건 가장 오래된 야생의 법칙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네빌은 영사기를 틀고, 레코드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외로워 했다. 그를 괴롭히는 건, 집 밖의 적들의 고함소리에 자신이 '홀로' 남았다는 걸 상기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욕구를 풀 존재가 곁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었고, 과거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추억이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네빌은 아마 뼈저리게 깨달았을 듯 하다. 그는 몇 년만에 자신옆의 다른 존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그런 그에게 엔딩은 오히려 후련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순순히 마지막을 수용한 그는 분명 사무치게 외로웠을거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전설이다"라는 대사로 끝을 맺는다. 분명 그는 전설이 되겠지. 정상과 비정상,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리뷰라고 해도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 않으니 직접적으로 말은 않겠지만, 흡혈귀에 대한 과학적 접근에 매우 놀랐다. 가물가물한 학창시절의 생물시간을 떠올리며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정말 재밌으면서도 생각이 깊은 소설, <나는 전설이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한 번 보고 비교해 보고 싶다.

 

+공포소설 좋아하시는 분

+흡혈귀 좋아하시는 분

+미국의 쟁쟁한 공포소설 작가들의 정신적 스승이 누군지 궁금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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