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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장소에서 ㅣ 언더그라운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부제는 언더그라운드2. 지난번에 읽은 언더그라운드의 후속편이다. 그땐 옴진리교 사린테러 사건 때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했었다. 하지만 그 책이 출판되고 난 후 하루키는 너무 한쪽에만(피해자 측) 편향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내 생각으론 그런 책이 출판된 것 자체가 너무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이번 책-언더그라운드2(일본에선 포스트 언더그라운드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고 한다. ‘약속된 장소에서’는 출간될 때 바뀐 이름이다.)은 옴진리교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다.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은 전부 재판 중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직접 만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반 교인들을 만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딱 잘라 말하면 이 책도 무척 좋았다. 1권에서 느낀 특유의 사실감이 너무도 잘 전달되었다. 1권의 집필 동기 자체가 언론이나 다른 수단을 통해서는 사린테러 사건의 진짜 사실을 알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하루키가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는데, 그런 만큼 소설이나 보고서에서는 살릴 수 없는 진정한 사실성이 덩어리로 쏟아졌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가해자이며 사이코 집단이라고만 생각했던 옴진리교였지만, 실제로 그 안의 일반 신도들을 만나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교주 아사하라와 테러를 계획, 실행했던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며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난데없이 터진 사건에 혼란스러워했던 것은 일반신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맹목적이며 앞뒤볼줄 모르는 광신도들’ 이미지와는 상당히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인터뷰를 할 정도면 상당히 느슨한 신도들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들이 이야기한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그들이 전부 맹목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실 대부분의 신도는 말 그대로 종교적 귀의를 위해 옴진리교에 입단한 것이 맞다. 그들도 사린 테러 사건이 큰 잘못인 것을 알며, 그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이 벌 받는 것에 동의한다. 또한 그들 자신이 옴진리교에서 생활을 하면서 겪고 본 여러 부조리들에서도 그들은 분명 자각하고 있었다. 또한 사건 이후 옴진리교를 보는 시선에 대해서 불편해한다는 점도 같다.(탈퇴 한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들도 역시 피해자들처럼 옴진리교에 대해 원망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사린 테러 용의자로 지목받아 경찰서에 다녀 온 사람들도 있고, 그 뒤로의 생활도 불편한 것은 많았지만 그들은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신자들은 진정으로 옴진리교를 단순한 종교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옴진리교의 사상들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든 종류의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이 부분은 책을 읽는 편이 내가 설명하는 편보다 나을 것 같다. 그렇게 몇몇의 옴진리교 관계자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로 기분이 묘해진다.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판단하기가 무척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그런 테러를 저지르는 집단은 순수한 ‘악’이며 그것을 쳐부수는 ‘선’을 보고는 마음이 후련해지는데, 이건 애초에 옴진리교가 진짜 ‘악’인지부터 헷갈리는 상황이 오는 거다. 아마 이런 점들 때문에 모르긴 몰라도 일본 내에서도 이 책이 상당히 화제가 되었을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서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일본의 환경과, 이런 일을 맡아 하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부럽게 느껴졌다. 전의 포스팅에도 썼듯이 우리나라도 여러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사건들이 많았는데(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멀게는 5.18광주 민주화운동 등) 그것들에 대해 진지하고 생생한 접근을 한 적이 없다. 아마 단순히 노력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여러 정치적인 문제들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을 전부 포함해 참 부러웠다.
마지막으로 현재 옴진리교를 탈퇴한 한 남자의 이야기 속에서 내 주변에서도 볼 수 있었던 종교인들이 가지는 특유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다. 그런 종류의 사람은 남의 얘기를 아예 안 듣는 것은 아닌데, 무언가 자신을 설득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는 그 얘기를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사실은 단순히 그 이야기의 논리성과 타당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드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자신이 믿는 것과 지식들에 상당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건드리면 쉽게 분노한다. 대체로 권위주의적이며 아주 깐깐한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성향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어떤 종교든 깊고도 고집스럽게(아집을 부리며) 빠진 사람의 경우는 저런 성향을 보이기 쉽다. 자신의 믿음에 따라서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쉽다는 생각이 든다.(아마 그런 행동 자체도 스스로의 믿음에 의해 합리화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