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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내 삶을 의태어로 표현하자면 ‘꾸역꾸역’일 거다.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꾸역꾸역 책을 읽고, 꾸역꾸역 밥을 먹고, 꾸역꾸역 산다. 그런 와중에 김연수의 글을 만난다. 이 책은 김연수가 달리기를 하며-혹은 인생을 살며-느낀 것들에 대한 에세이다.
요즘 나는 내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늘 다른 사람만큼의 ‘어떤 것’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남들만큼 놀고 남들만큼 공부하고 남들만큼 일하고 남들만큼 블라블라. 그런 것들을 충족하지 못하면 나는 자신이 무척 찌질 하게 느껴졌고, 그건 다들 알다시피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래서 작년엔 통장을 털어 여행까지 다녀왔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노는 것’에 대해서는 남자들의 사회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부분에서만큼은 결코 뒤쳐지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우리는 군대에서 근무를 설 때 뻥을 친다.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갔는지에 대한 거짓말들. 그리고 그것은 전역을 하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대부분의 무용담들은 절반 즈음의 상소리를 동반하고 얘기되어진다.
그리고 난 요즘 그러한 순환고리에서 한 발자국쯤 떨어진 기분이 든다. 나는 잘 놀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난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먹고 심지어 커피도 안 마신다. 당구는 말할 것도 없다. 밤늦게까지 노는 게 싫고 저녁땐 혼자 생각을 하다 티비를 보거나 책을 보는 게 좋다. 나는 내 이런 점들이 늘 ‘찌질’하게 느껴졌었는데, 얼마 전부터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무척 편하다. 그냥 그게 내 삶에 맞는 것들인 것이다.
김연수도 ‘사람 좋고 성실한’ 자신이 늘 콤플렉스였다. 그 주변의 소설가들은 사람 좋고 성실한데 글을 못 쓰는 것보다, 사람 나쁘고 성실하지 않아도 글을 잘 쓰는 걸 선호한다. 어쨌건 소설가들은 대체로 사람 좋고 성실하지는 않은가보다. 그래서 그는 늘 그런 자신의 점들을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하고, 대회에 나가보니 그건 역전되었다. 마라톤은 매일의 꾸준함이 쌓여야만 완주를 할 수 있다. 이른바 성실함은 기본 요건인 거다. 마라톤의 세계에서 김연수는 그리 성실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보통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김연수는 사람 좋고 성실한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에 있게 된 거다.
그런 것 같다. 소설가라서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특별하게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소설가가 된 것은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 같다. 김연수는 그런 얘기를 한 권 내내 한다.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고, 여름엔 더워하고, 겨울엔 추워하다보니 소설가가 되었다. 그런 얘기다.
요즘 참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이 책은 왠지 그런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김연수를 엄청 좋아한다거나 하는 건 아닌데 종종 그의 책을 찾아 읽을 때가 있다. 아마 그런 점들 때문에 나는 김연수를 읽는 것 같다. 언젠가 우연히라도 그를 마주치게 된다면 깊이 고개 숙여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