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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무거운 책을 많이 읽어서, 가볍게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빌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볍긴 했지만, 상쾌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은 아니었다.
그나마 최근 읽은 하루키의 책들은 대체로 좋은 편이어서 이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평이 무척 호감으로 변하고 있었는데, 다시 이렇게 짜증나는 책을 읽으니 그 호감이 슬슬 변한다. 하루키는 과거부터 상당히 보수꼴통스러운 발언으로(보수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다던가 폄하하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보수도 진보도 정의가 있다면 존중한다.)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작품과 인성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예술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게 맞다는 의견에 동의하긴 한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읽은 뒤 알아본 작가의 인품이 훌륭할 경우 우리는 그 작품들에 더 깊게 감동한다.
특히나 작가와 같은 일종의 ‘지식인’부류에 속하는 예술가의 경우는 작품을 떠나 작가 자신의 행동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멀리는 조선시대부터 가까이는 군부독재 시기까지, 옳은 신념을 굽히지 않는 여러 훌륭한 지식인들의 행동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인의 중심에는 타당한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는 하루키에 대해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그의 모든 작품이나 글을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루키가 그의 작품에서 종종 보여주는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발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일본 극우 세력을 동조하는 발언들을 하는 사람이 맞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는 하루키는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라는 의미로 무릎을 쳐대는 일련의 사람들을 연상케 한다.
이 책은 하루키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직접 참석하여 현장의 모습을 전달한 르포~에세이~여행기 정도의 작품이다. 유명 작가가 세계 최대의 축제 중 하나인 올림픽을 직접 보고 생생한 전달을 한다는 취지 자체는 무척 좋지만, 이 작품 속에서 하루키는 늘 불만에 차있다. 올림픽은 죄다 지루하고(허나 자신이 좋아하는 마라톤이나, ‘일본팀’이 펼치는 경기는 예외다.) 지루할 뿐이라고 투덜댄다. 개막식에 100만원에 가까운 티켓 값을 치르고 입장해 한다는 소리가 지루하고 지루할 뿐이라는 얘기다. 거기다 그나마 중간에 나온다. 이건 일종의 근무 태만에 해당한다고 본다.
뭐 그거야 개인의 성향이라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간다고 쳐도, 경기를 중계하는 내내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선수가 우승하면 시종일관 빈정댄다. 철인 삼종경기 종목에서 스위스가 3위를 하자 너무도 좋아하는 스위스의 기자가 흥분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하자 ‘내가 어떻게 알아?...중략...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는 법.’이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반면 일본 축구팀이 브라질에게 패배하자 ‘바람직한 패배’라고 감싼다. 물론 자신의 나라에 대해 응원하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읽으며 불편했던 것은 다른 나라의 선전을 시기, 질투하고 깎아내리면서 일본의 부진한 성적에는 이런 저런 좋은 핑계를 가져다 댄다. 제목은 저런 식으로 지어 놓고 한다는 소리가 300페이지 내내 이런 식이니, 읽는 일 자체가 고역이 된다.
또한 호주에서 체류하며 겪는 일들을 읽는 것도 짜증이 난다. 작가가 매사에 짜증이 나있고 호주를 욕하기 바쁘니 읽는 사람도 즐거울 수 없다. 어떻게 이토록 편협한 사람이 그렇게 좋은 작품들을 쓸 수 있는지가 의문일 뿐이다. 그나마 야구에서 일본 팀과 여러 번 싸운 한국 팀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조심해 서술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아마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제법 잘 팔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웃기는 생각이긴 하지만, 작품 내내 호주를 그렇게 욕하던 하루키도 한국에서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먹고 싶어 한국에 대한 발언은 무척 조심히 하는 듯 느껴졌다.
가볍고 기분 좋게 읽고 싶어 이 책을 빌렸지만, 이렇게 읽는 내내 불쾌했기 때문에 당분간 하루키 책은 끊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