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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평점 :
이 책 또한 급히 도서관을 가다 검색한 뒤에 빌리게 되었다. 작품의 소개 글부터 책이 무척 개성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만족스러웠다. 작가 하진은 중국인이긴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하지만 천안문 사태를 접한 뒤, 중국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미국에 정착하게 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소설이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애초에 이민으로 만들어진 사회이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을 이해할 수 없을 텐데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던 중국인 사회-차이나타운-가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인데, 재밌는 것은 그러한 차이나타운들이 현지에 적응했다기 보다는 중국의 일부를 떼어다 놓은 것 같다는 거다. 중국인 사회의 규모 자체가 어느 나라에서든 상당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독립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그 중국인 사회가 현지에 종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어느 나라에서든 그들은 자신들끼리 모여서 살아도 부족한 게 없다는 거다. 물론 이것이 조금 과장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차이나타운에 사는 중국인은 영어를 말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면 과한 과장은 아닐 거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 곳이 온전한 중국일 수는 없다. 우선 정부와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하진의 이 책은 그런 미묘함에 대해 말한다.
작가 자신도 이민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과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깊이가 생긴다. 단편집인 이 책은 그런 다양한 상황과 처지에 대해 쓴다. 중국에서 살다가 아들 부부의 초대에 의해 미국에 왔지만,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며 가족들과 갈등을 겪는 노부부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하지만(원수 같은 아이들), 중국에 살고 있던 어머니가 중국에 오면서 갈등을 겪게 되는 젊은 부부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한다.(십자포화 속에서)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해 쓴 단편도 있는가하면(연금 보장, 벚나무 뒤의 집), 이민자로서 미국 사회에서 충분히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도 쓴다.(영문학 교수)
이야기들이 모두 개성 있고 현실성이 살아있어서 재밌었는데, 그런 작품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문체라고 생각한다. 간결하고, 인물의 심리를 깊이 묘사하지 않는 대신 상황과 줄거리 전달에 중심을 둔다. 인물이 자신의 생각과 상태를 직접 서술하기보다 상황과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는 더 깊은 맛이 있다. 대놓고 엉엉 우는 사람을 보는 일도 슬프겠지만, 충분한 암시와 상징이 가득한 뒷모습이 더 슬픈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특히나 이번 주에 미국(그것도 이 작품의 배경과 같은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가 결혼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아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만난 직후 이 책을 읽으니 더 감회가 새롭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것 보다 그쪽 사회를 더욱 잘 알고 있는 친구가 읽는다면 내가 보지 못한 더 많은 면과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많은 경험은 책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다. 친구를 만나기 전 이 책을 읽었다면 분명히 선물해줬을 텐데, 읽지 못해 말로만 꼭 읽어보라 말해 두었다. 원서로 찾아서 읽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