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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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명한 책이다. 소설인 줄 알고 있었는데 에세이/수필 정도와 어느 정도 반반씩 다리를 걸쳐 놓았다.

사실 많은 말을 쓰고 싶지가 않다. 특별한 감흥은 없었고, 한 번쯤 봐도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식의 이야기는 분명히 이런 활자보다 직접 접하는 쪽이 천만배는 더 도움이 된다.

글은 진솔되었고, 이야기도 담백했지만, 이상하리만치 감동이 적었다. 교육과 배움 따위에 대해 약간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같지만 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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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잇
김영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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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영하는 분명 '소설가'인데 나는 그의 산문집만 네 권을 봤다. 소설은 단 한 권을 봤을 뿐이다. 소설을 볼 기회가 없었냐, 그것도 아니지만 막상 고르지 않았었다. 그러나 반대로 수필집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거나 하면 생각도 않고 바로 빌렸었다. 단 한 권 읽은 소설에 대해 인상이 좋지 못해서 그랬을까.

 쉽게 사서 쉽게 쓰고 쉽게 붙이는 포스트 잇처럼 글은 읽기 쉽다. 그러나 가볍지는 않다. 랄랄라 하우스의 전편 격이다.

또 딱히 쓸 말이 없다. 매우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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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서커스
천운영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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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등학교 한 4,5 학년 정도였을까. 학교에 가기 위해 마을 회관 앞을 지나고 있는데-바닥을 보고 걷는 버릇이 있던 나는 그땐 앞만 보고 가고 있었다-나는 내 옆쪽으로 왠 시커먼 물체가 있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그곳을 쳐다봤을 때 있던 그것은 짐승의 고기였다. 목과 발목만 자른 뒤 통으로 구운 노루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개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개든 노루든 어쨌던 그 짐승은 마을 회관 앞 수돗가에 아주 시커멓게 구워진 채 쓰러져 있었다.

 

천운영의 글을 읽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녀의 소설은 그 시커먼 짐승의 고깃덩이를 닮았었다. 마을 회관과 11,2살 꼬마와 개 혹은 노루의 구워진 고깃덩이는 그녀의 소설을 닮았다.

작가의 첫 장편인 이 소설은 형제가 중국으로 형의 신붓감을 구하러 가는데부터 시작된다. 어릴적 오토바이 위에 올라서는 묘기를 부리다 전신주에 목이 걸리는 사고로 목을 다쳐 말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된 '형'과 여러가지 병으로 고생하던 끝에 당뇨로 발목마저 잘라낸 편모를 가족으로 가지고 있는 동생 '윤호'는 형의 신붓감을 구해주기 위해 조선족들과 결혼을 알선해주는 회사를 통해 형과 함께 중국에 간다. 거기서 만난 것이 '림해화'. 형과 그녀는 결혼한다. '해화'의 한국행에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릴적 추억속에 있던 발해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해 한국으로 떠난 청년에게 연락이 끊긴지도 2년째. 물론 그 청년 말고도 여러 이유가 있어 한국인과 결혼을 시켜주는 회사에 신청을 한 것이었다.

책은 윤호와 해화가 한 장(章)씩 번갈아가며 서술자가 된다. 윤호의 물음에 해화가 답하고 다시 해화가 물으면 윤호가 대답하듯 한 장은 다음 장을 이끌어낸다. 결국 해화와 윤호와 형과 청년이 어떻게 되는지는 윤호와 해화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쪽이, 작가의 안에 있는 구운 짐승의 시체를 보는 쪽이 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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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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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부만하는 사람이라는 기괴한 소문을 일으키고 다니는 ㄱㄷㅎ은 사실 학교가서 책보고 음악만 듣다 온다는 뒷소문. 태어나서 맨날 공부만 하면 지겹지 않냐는 질문은 또 처음 들어봤다. 자네들이 내 재수생활을 봤어야 하는데 말이다.

여튼 학교 생활도 그럭 저럭 자리가 잡아가서 이제 학교에서도 슬슬 책을 보게 된다. 학교까지도 일상으로 포괄할 날도 이제 멀지 않은 듯 싶다.(라고 썼지만 오늘 나의 마음은)

'현대인의 고독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라는 호칭을 달고 다니는 요시다 슈이치의 최신작. 두어 달 전에는 내한해서 사인회도 했었다고 한다. 일본 작가는 분명 좋아하고 또 재밌게 읽고 있지만, 실은 나엔겐 일본 작가들을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는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소설을 얼마나 읽고 이딴 소리 하는 것이겠냐만은, 적어도 읽은 작가들은 대개 그랬다. 우리 나라 소설가에 비해 조금 더 가볍다고 해야하나, 깊이가 얇다고 해야할까. 하여튼 그 비슷한 감정을 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요시다 슈이치에 대해서는 그 감정이 전무하다. 난 현대인의 일상이랄까, 그런 걸 아주 날카로운 시선으로 표현한 작품을 아주 좋아하는데, 이건 전에도 말한 적 있을 것이다-큰 사건을 겪지 않은 나의 세대는 한국 전쟁이나 운동권 따위에 대한 공감이 없다. 우리는 있을 거 다 있는 세상에서 배부르게 자랐다. 따라서 우리의 화두는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의 내면이다-이 정도의 말을 또 언젠가 두드렸었다. 단락 서두에 썼던 '현대인의 고독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라는 것도 실은 전후관계가 다른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단지 현대인을 관찰하고 날카롭게 묘사하는 것 뿐인데, 사실 그 현대인이 고독한 것이다.

작품은 연관이 있을 것도 같은 두 남자 주인공을 번갈아 열 번씩 서술한다. 더 이상 쓰기 싫다. 읽어라. 아주 좋다.

지금 약간 기분이 업돼서 제정신이 아니다. 글도 많이 들떠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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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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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첫 단편집.

두 번째 작품으로 동인문학상, 첫 단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 소설계의 장/단편 문학상으로는 가장 권위(ㅋㅋ)있는 문학상을 두 개를 순식간에 수상해 버렸다. 그러나 전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단편 화장은 이상문학상, 언니의 폐경은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외에 6개의 단편이 더 들어있는데, 읽고서도 분명히 어느 정도 이해되며 좋다는 생각이 번쩍 드는 작품도 있지만, 화장같은 경우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많이 어려웠다. 역시 상을 타서 그런가 하는 식의 바보같은 생각을 잠깐 했지만, 반면 언니의 폐경은 정말 좋았다. 특히 첫 작품 배웅이 아주 좋았는데, 덕분에 쉬이 재미가 붙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마초이즘, 허무주의, 극도의 미학이 느껴지는 문장들을 보면서 여전하다는 생각. 소재와 주제의 현재성/다양성에 대해서는 역시 진보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겹쳐서 했다. 신문 기자를 했다는 것을 생각했을때 느껴지는 특유의 문장과, 현대 사회의 화두를 소설로 그대로 옮기는 것에서는 역시 소설의 사회 참여라는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기분이 나쁘고, 짜증이 나 있거나 혹은 너무 기분이 좋아 들떠있을 때 등등 어느 때이던간에 김훈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기분이 낮게 가라앉는다. 그럴 때에 내 의식은 해수면보다 낮아져 해저 밑바닥까지 가라앉으며, 스스로가 또는 주위의 사람들을 왠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나는 어쩐지 소설 속의 인간같고, 내 의식을 그것을 읽는(멀리서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내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것도 어찌 보면 아주 우습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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