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9.8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에쿠니 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그래도 친구 생일이라고 돈을 모아서 엘리, 초부, 용키, 영맨(아마 이 네명이 맞을듯)이 '울 준비는 되어있다'를 사준 것을 본 게 처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야마다 에이미 등에 미쳐있었기 때문에 일본 여성 작가라면 일단 ok하고 생각했었다. 그걸 떠나서라도 지금 기억하기로 제법 괜찮은 인상이었던 듯하다.

두번째로 읽은 책은 내가 누나에게 생일 선물을 해 주려고 산 '반짝반짝 빛나는'이었다. 실은 내가 보려고 샀다는 쪽이 옳겠으나, 어쨌든 내가 먼저 봤다는 점을 제외하곤 선물이었으니 대충 넘어가자. 그때즈음엔 요시모토 바나나/야마다 에이미에 더해 시마모토 리오까지 어쩐지 일본 여성 작가들에게 조금 불만이 있었다. 작품은 감수성 충만하고, 또, 에, 그러니까, 앞에 언급한 작가들에게서 느낀 한계를 똑같이 느꼈다고나 할까. 제법 재밌게 읽었지만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는 요시모토 바나나/야마다 에이미에 더해서 줄줄이 프랑크 소세지처럼 주르륵 묶어서 생각했던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좋은 인상이긴 했지만 우와,라는 감정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집게 된다. 새로 정리한 도서관에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 줄줄이 꽂혀 있어서 이번에 좀 볼까, 하는 마음에 빌린 것이다. 그 중 가장 얇아 보이는 이것을 가장 먼저 읽는다. 실적은 쌓아야 하는데 대형차를 팔 자신은 없는 자동차 외판원의 기분이 이러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작품은 에쿠니 가오리가 결혼하고 난 2-3년 사이에 쓰여진 에세이들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에세이라 하면 자연히 최근 본 영화나, 최근의 사건-그 특별한 사건에 보편적 시각을 준 뒤-느낀 점을 서술해 깔끔한 마무리, 라는 공식의 글을 쉽게 볼 수 있었으니 당연히 그런 글을 예상했던 나는, 첫 에세이부터 뒷통수를 맞았던 것이다.

에세이는 연애나 사랑이 아닌 결혼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다. 그렇다. 연애와 사랑과 결혼은 지구와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다. (철이가 그토록 되고 싶던 기계인간은 103회나 지나서야 겨우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처참하고 리얼하게 결혼에 대해 담담히 쓰는 에쿠니의 글은 정말 놀랍고, 놀랍고, 놀라운데다, 놀라웠다. 하지만 처참한 결혼 생활 와중에도 이런 저런 낭만 또한 빠뜨리지 않고 써, 결혼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환상도 심어주는 난처한 책이다.

해설에 써 있는 말이 딱 마음에 와 닿았는데, 이 책은 결혼한 사람은 혼자 살고 싶어지고, 혼자살던 사람은 결혼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하여튼 부럽고, 또 어쩐지 무서워지는 결혼 생활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충만한 감성은 정말 좋았다. 에세이 하나하나가 머릿속을 탕탕 두드리는 기분이었고 간만에 뇌가 슬슬 돌아가는 기분도 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불여일견 불여일견 불여일견. 에쿠니의 책을 잔뜩 빌려놨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독서에 대한 열의뿐인가?

2005.9.9 살인자의 건강법-아멜리 노통브

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출간 당시(1992년) 프랑스 문단에 제법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는 문제의 그 작품. 재기발랄하다는 평이 딱 들어맞는다.

신선하고, 건방진데다, 재밌기까지하다.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이번 책 또한 두 사람간의 대화로만 이루어져있다. 가상의 인물(소설인 것 다들 알고 있을텐데 이런 말 쓰기 참 뭐하다)인 죽음을 두달 앞에 둔 대문호가 처음으로 인터뷰를 한다는 설정이다.  

재밌긴 한데, 남들한테 추천하면 딱 욕먹기 좋은 책이다. 작품은 문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잘나서 재밌게 읽었다는 뜻이 아니라 난 문학쪽에 흥미가 있기 때문에 재밌게 읽은 것이다. 나는 밀리터리 잡지를 손에 쥐어줘도 잘 읽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에 큰 흥미가 없는 사람은 지루하게 읽을 듯한 책이다. 

하지만 앞의 절반분량인 네 명의 기자와의 인터뷰는 문학에 대한 내용이라면 나머지 절반분량인 여성 기장와의 인터뷰는 조금 더 깊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 초반 부분만 어렵사리 읽어내면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독서나 그 외 문단등등에 대한 비판이 잔뜩 있어서 가슴이 뜨끔했다. 나도 책을 쉽게 보고 쉽게 잊기 때문이다. 거기 말대로 기껏해야 이해한 것은 내용 정도다. 후반부 또한 특별히 공감이 간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내면을 파해치는 것을 꾸민 재미가 상당하기 때문에 매우 즐겁다. 개개의 소설은 그 소설가만이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의 이야기가 들어 있기에, 색깔이 있는 소설가의 소설을 읽는 것은 항상 즐겁다.

2005.9.10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김영하,이우일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2월

말 그대로 영화에 대해 김영하가 글을 쓰고 그 글에 맞춰 이우일이 그림을 그린 에세이집이다. 영화이야기라기보다 영화도 있는 이야기가 더 맞는 제목같다. 

김영하가 영화랑은 거의 관련 없는, 하지만 완벽히 관련 없지도 않은 이야기를 써내려가면 이우일은 영화와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김영하의 글과 관련이 있기도 한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는 그림들을 그려 넣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광팬이 아닌 사람도, 어려운 영화이야기라면 치를 떠는 독자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곧, 나도 즐겁게 읽었다는 이야기다.  

최근 출간 된, 라랄랄 하우스만큼이나 재밌는 글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이우일의 만화 재밌는 건 하루이틀일도 아니고 말이다. 나온 영화중에 안 본게 더 많았다는 게 조금 걸렸지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부산 국제 영화제 탐방기도 적혀 있는데, 역시 부산 국제 영화제를 관람한 내용은 별로 없었다.

2005.9.13 하느님의 보트-에쿠니 가오리

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이정환 옮김 / 자유문학사 / 2003년 4월

에쿠니 가오리는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로 나를 속여서 그녀의 책을 세 권 빌리게 해놓고 뒷통수를 쳤다.

사실 이 책을 제일 처음 빌렸는데, 이유는 어쩐지 구하기 힘들 것 같이 생긴 표지때문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초기 단편집이나 하루키의 수필집이나 열림원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또 하성란의 식사의 즐거움을 얼마나 보고 싶어 했던가. 근데 이 책은 힘들게 구하지 않았어도 그닥 아쉽지 않았을 듯하다.

책이 엉망이라는 식으로 감상문을 쓰고 있긴 한데, 그렇게 나쁘진 않다. 그게 문제다. 나쁘지 않다는 것. 감성이 충만하고 글재주도 좋다. 게다가 작가는 꽤 미인. 하지만 요리 저리 알듯 말듯한 문장으로 삽질만 한다거나 괴이한 형태의 가족관계, 현실과 삼천년쯤 떨어진 이야기는 최근 뜨고 있는 일본 소설들의 전형이다. 이십대 여성에게 절대적지지를 얻고 있다는데, 여기서 이십대 여성의 허위를 잘 알수 있다. 허나,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를 읽은 지금은 에쿠니 가오리의 삶이 그렇게 감성이 충만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보다 그녀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나뿐일까? 

빌려 놓은 두 권을 읽는 게 걱정일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쁘지 않다. 절대로 나쁘지 않다.

2005.9.14 웨하스의자-에쿠니 가오리

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위험한 소설이다. 자신이 굉장히 우울하고, 감상적이라고 '착각'한 사람이 보게 된다면 정말 삶이 위험해질 정도로 아슬아슬한 작품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울한 사람이 본다면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대체적으로 자신에게 환상을 품은 사람은 그 환상에 사로잡혀 멍청한 짓꺼리를 하게 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한 여자가 주인공인데 주변에 죽음이 널려있고 절망하고 말도하고 맨날 끝을 향해 달려가곤 하는 우울한 사람이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있을까 싶은 이야기에 또 불륜(에 가까운)이야기에 하여튼 이래 저래 골치아프다. 하지만 또 한 번 에쿠니 가오리는 정말로 저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저토록 위태로운 사람이 세상엔 있구나, 하면서 놀라워 했다. 하여튼 발랄한 사람조차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작품이니까 되도록 피하자.

또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건 또또또 사람과 사람은 이해불능이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애인을 항상 믿고 이해하는 척 하지만 슬쩍 흘린 문장 속에 애인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김난주씨의 해석은 또 다시 거슬린다. 몇 번이나 읽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오타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제 한 권 남았다. 그나마 나아보여서 이걸 먼저 읽었는데 낙하하는 저녁, 솔직히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