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화첩기행 1 - 예의 길을 가다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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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서문을 통해 이 작품의 서술 동기를 명백히 밝힌다. 다른 나라 부럽잖게 우리나라에도 위대한 예술가들이 많은데, 다른나라가 부럽게도 그 예술가들은 별다른 족적없이, 이름없이 사라져 버렸다. 작가는 이것에 안타가움을 가져 그 예술가들의 고향이나 주요 연고지를 찾아가 그들의 족적을 따라가며 그들의 생과 예술적 달성을 알린다. 그 중에는 이중섭이나 김정희와 같은 상대적으로 더 알려진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생전 처음 듣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글에서 그들은 동등하게 기억되어야만 하는 예술가들로 다뤄진다. 대부분의 인물들의 생 이후의 처지가 놀라우리만큼 같은데 기이하고도 허탈하게 죽음을 맞은 뒤, 그는 마치 전연 없었던 사람들이었던 양 사라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예술적 달성에 매료된 몇 안되는 사람들이 뒤늦게 그들을 추모하려 하지만 절대 다수의 무관심에 휩쓸려 최소한의 그런 노력조차 무효화된다. 그렇게 불같이 살고 재같이 사라진 게 한 두사람만이 아니다보니 작품 중후반에 가면 무던히 살고, 사라진 게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단 뜨악한 무덤덤함이 생기는데,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 참기 힘든 수치심과 분노가 되어 돌아온다. 무관심과 무지는 항상 면죄부를 받을 수 만은 없고 이따금씩 죄가 되기도 한다. 나는 묵묵하게 무지한 죄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느끼며 변명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사죄하고 변명하려 해도 이 책을 덮은 지금 나는 더 이상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으리란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사족.전공이 무색하게 저자의 그림보다 난 글솜씨가 더 좋았다. 아니, 사실 그림은 단 하나도 좋다는 생각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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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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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력적인 이름을 가진 작가와 그 작가의 매력적인 제목의 소설은 두 개의 질투가 중첩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아내의 정사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그레이엄 헨드릭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스스로 껄껄 웃기까지 했다. 손을 뻗어 딸의 눈을 가려야 되겠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며 당차게 시작하는 이 소설은 그 첫단락의 문장들은 실은, 단순히 받아들인다면 작가에게 당하게 되는 '트릭'이다.  첫 질투는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는 후면의 질투다. 그것은 주인공 그레이엄의 첫 아내 바버라가 그레이엄이 앤과 바람을 핀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바버라)와 딸 앨리스를 버리고 앤과 결혼한 것에 대한 질투다. 이 첫 질투는 주 네러티브의 질투(그레이엄이 앤의 과거에 대해 갖는 질투)에 가리워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레이엄의 질투의 시작을 만들어낸다. 첫 질투는 바버라가 그레이엄에게 '한 방'먹이기 위해 실행되는데 바버라는 어찌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레이엄의 새 아내 '앤'이 과거에  B급 영화에 조연배우를 했으며 (영화속에서)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장면 등이 있었고, 이것을 이용 바버라는 그레이엄이 자신과 같은 고통(혹은 질투)을 느끼길 바라서 앨리스와 이 영화를 보게 사주한다. 이것은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함무라비 법전과 올드보이 속 유지태스러운 아주 '제대로 된'복수인데 소설의 종국을 생각해보면 바버라는 그녀의 목적을(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너무도 잘 당성한 것이다. 어쨌든 그 첫 질투의 결과 그레이엄이 앤에게 갖는 두 번째 질투를 유발했다. 그레이엄에게 이것은 처음엔 아주 작은 질투-그가 그녀를 만나기 전 그녀가 보낸 세월들에 대한 질투-(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당신이 당신 연인에게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 연인이길 바라지 않는가?)에서 시작하여 그녀가 나온 모든 영화를 찾아보는 것으로 발전하고 신경 쇄약과 정신이상, 기억 혼재 등의 결과로 수렴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인간이 갖는 질투라는 감정의 단계와 다양한 종류의 경우에 대한 깊은 고찰과 서술을 하는데, 이것이 이 작품의 서술 동기이며 백미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줄리언 반스는 그레이엄이 도망칠 모든 구석을 막아 놓고 오로지 단 하나의 결말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렇기에 잔뜩 벌여놓아 대체 어떤 결말이 나올까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그레이엄의 결정을 보며 쓸쓸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들 중 절대 다수를 사랑을 하다보니 어쩌다 결혼도 하게 될 것이고(인류가 만든 체제상) 그들 연인의 전의 연인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곧 이 소설의 소재는 너무도 일상적이며 그러므로 이 소설은 그 의미를 갖는다. 연인이 있는, 없든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사족.나는 의도적으로 아주 중요한 한 인물에 대한 언급을 피했는데 이는 줄거리로 가득찬 이번 감상문에서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이며 작은 장난이다. 이 인물을 언급하지 않는 아주 작은 일만으로도 예비 독자는 나의 감상문을 읽고도 각자가 즐길 즐거운 네러티브의 권리를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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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2 - 이주헌의 행복한 그림 읽기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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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권을 읽다보면 이 책은 확실히 단순한 미술관의 관람을 벗어난 좋은 기행문이기도 하단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만큼 작가의 필력은 미술평론가라는 이름값을 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생긴 몇가지의 장점은 우선 잘 모르고 있었지만 매력적인 작가의 작품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브뤼겔, 마그리트 등이 그들이었는데 꼭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도서관에 가서 화집이라도 찾아 볼 생각이다.(확실히 나는 색깔을 잘 다루는 작가가 좋은데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을 너무나 매력적으로 사용했고, 브뤼겔은 색감이 너무 좋았다.) 다음으로 좋은 건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매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유럽권의 모든 작가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모든 이의 대표작들의 태반이 인물(사람)을 그린 것이란 거다. 역시 인간의 얼굴이 가진 매력에 나는 또 반했고 무척 그리고 싶어졌다. 좋은 작품은 결국 또 다른 좋은 작품을 낳는다는 점에서 플러스인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실제로 그들의 작품을 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기행문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마지막 요인이 이 책의 존재 가치를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컬러책인만큼 가격이 상당히 비싼데(권당 15,000원) 꼭 사서 보기보다는 빌려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이유는 나온 삽화들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고 그 양도 상당히 적기 때문에 이왕 같은 값이라면 이 책을 빌려본 후 마음에 든 작가의 화집을 사서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저자에겐 미안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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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 이주헌의 행복한 그림 읽기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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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책을 읽으면서 없던 버릇이 생겼다. 그건 바로 한꺼번에 두 세권을 책을 읽는 것이다. 처음엔 특별히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읽을 때의 상황이 너무 다양하므로 그에 따라 다양한 책을 동시에 읽어야 할 필요가 생긴 듯하다. 일테면 이런 식이다. 집중이 잘 되는 야간 연등 시간엔 좀 딱딱하고 진도 나가기 힘든 인문학을, 일상 중 자투리 시간엔 짧은 시간에 집중을 할 수 있는 문학을 읽는다. 이렇게 해서 한꺼번에 두 세권 정도를 읽는다. 사실 밖에서 이렇게 읽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왠지 그들의 방식은 틀렸다는 생각을 해서 가능한 한 권 한 권의 경계를 확실히하며 읽었는데(작품 하나 하나에 확실히 집중하려는 의지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너무 문학류만 위주로 읽어서 그랬던 것도 같다. 어떤 식으로든 요즘은 문학 이상의 것으로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종류가 다른 책을 여러 권 읽는 것도 하나의 좋은 독서 방식이란 생각을 얻어냈다. 물론 이 생각은 틀렸다 판단되면 금새 바뀔 것이지만.

이 책은 미술평론가이자 미술학도인(선후가 바뀌었나.)저자가 가족(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제목 그대로 50여일간 유럽의 미술관을 관람한 여행기다. 물론 기행문으로서도 작가의 유려한 글솜씨가 빛나는 좋은 책이지만 단순히 그것을 넘어서, 서양 미술의 시대별/작가별/국가별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미술관 별로 전시되어 있는 많은 삽화 또한 삽입되어 있는데 미술을 잘 모르는 모르는 나에게도 흥미가 가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잘 되어 있어 좋았다. 입문서 정도의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해주는 설명과 서술로 유럽내 여러 미술관과 작가에 대한 알림 역할을 해준다. 더 자세한 감상은 2권을 읽은 후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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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낱말편 2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 유토피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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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 전공이다보니 진중문고가 새로 보급나온 후 목록을 살펴보다 '논리적이고 매력적인 글쓰기의 기술'이란 책과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라는 책에 눈이 갔다. 앞쪽의 책을 먼저 읽었는데 여기 있는 리뷰를 보면 알겠지만 그냥 그랬다. 그리고 읽은 이 책.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 좋다.

내가 외국인도 아니고 한국어를 제외한 잘하는 언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만, 한국어는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읽고 쓰는데 만큼은 지구 최고지만(컴퓨터와 핸드폰의 세대인 현대를 생각하면 당연하다.)어떻게 쓰고 말하는 것인지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이 책은 그 어려운 한국어 중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유의어)의 사용시 어떤 경우에 어떤 단어를 쓰는가(미묘한 뜻과 뉘앙스의 차이)를 풀어놓은 책이다. 겉,밖/밑,아래/목숨,생명/끝,마지막 등 차이를 말해보라면 이렇다 할 대답을 하기 힘든 단어들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 아마 흔치 않으리라고 생각되는 이런 책을 쓴 시도에 찬사를 보내주고 싶다. 이 책은 낱말편인데, 기회가 닿는다면 문장편도 낸다고 한 서문의 말을 따라 후속편이 나왔다면 꼭 모두 구입해 여러 번 읽어 확실히 머릿속에 정립시키고 싶다. 이런 책을 읽었다고 이 글을 쓰는 내내 단어 선택하나에도 조마조마해 하는 자신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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