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지음 / 살림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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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기형도의 운문(시)을 제외한 글(산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여행기, 일기, 편지, 소설, 기사 등 여러가지 종류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작가가 의도치 않은 유고 작품집(그의 형이 주관하여 펴냈다고 한다)이다보니 그 완성도나 수준면에서 하나의 소품이라는 느낌이 든다. 기자시절 쓴 기사를 차치하면 그 느낌은 더욱 강해지는데 6-70년대 순문학 작가들(특히 김승옥)의 느김이 많이 나는 그의 소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거기에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글들은 채 정제되지 않은 탓인지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앞머리에 수록된 대구와 광주를 거쳐 순천으로 향하는 여행기는 아주 인상적이며 훌륭하다. 여행의 족적의 기록과 그 와중에 느낀 생각들이 진솔하고 또 깔끔하게 잘 쓰여져 있었다. 오로지 이 여행기만으로도 이 책은 그 존재 의미를 충분히 갖는다는 생각을 한다.

기형도에게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넘겨도 괜찮은 책이지만, 그의 시 한두편에라도 마음이 동했었다면 한 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다. 그의 시들이 그의 문장력/문학 그 자체라면, 이 책은 그라는 사람 자체가 어떠했는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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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을 던지다 - 한국 최고의 과학지성들이 현대과학의 난제에 도전한다!
김정욱 지음, 정재승 기획 / 해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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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역사는 단순한 교양의 축적의 측면에서 본다면 가까이하기 쉽고 재밌는 학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종류의 교양 과학서적이 지속적으로 기획/출간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획자인 정재승씨는 '과학콘서트'등을 펴내거나 tv속 독서 혹은 시사 프로그램 패널로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항상 노력하는데 이 책 또한 같은 맥락에서 쓰여진 책이다. 사실 빅뱅이 대부분의 교양과학서적에서 첫머리에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종류의 책은 그 구성이나 내용면에서 약간은 뻔한 재탕의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수박 겉핥는 것이 아닌 전문 과학서적이 얼마나 대중에게 안 팔리냐 할 것을 생각하면, 그런식의 흥미와 가벼운 상식 정도의 수준으로 책을 편성해야만 하는 것은 일종의 불가항력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책들이 범람하는 것 또한 지루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고만 고만한 시장에서 나름의 장점하나를 가지고 있어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여러 저자의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낸 것인데, 이런 기획을 한 정재승씨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략 28명 정도의 과학의 각 분야에서 최정상/최전선에 있는 분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자신있는 그리고 가장 대중에게 알려주고픈 지식들에 대하여 십여페이지 분량의 글을 써서 보인다. 워낙 쟁쟁한 분들이라 그 과학적 지식의 질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글솜씨 또한 굉장하다. 사실 간혹 인문학 분야 쪽보다 과학 등 이공계 쪽을 전공한 사람의 글이 더욱 뛰어난 경우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인문학 분야를 전공한 사람은 자신의 학문이 상대적으로 더 대중에 가깝다는 의식을 해서 스스로 쓰는 글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너무 높게 측정해 독자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으며 써서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반면, 이공계쪽의 저자는 그 기저에 독자의 이해도가 낮을 것을 분명히 예측하고 더 쉽고 간단한 문장을 써 가능한 더 많은 의미전달을 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이 책을 봐도 그렇지만 과학서적은 상당히 많은 비유로 가득 차 있다. 결국 독자의 이해를 위한 것인데, 우주와 지구를 축구장과 모래알갱이로 비유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40x10의 10승 의 숫자들이 상당히 현실감있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여러 저자가 한 토막 분량의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본인이 가장 관심있고 잘 아는 분야가 되게 되며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노라면 무림 초고수들이 각자 자신있는 무공을 펼쳐 화산에서 검을 논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

과학같은 걸 배워봤자 사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고 얘기해도 사실 해 줄 말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와서 이렇게 글을 쓰고, 춤을 추고, 아파하고, 우는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의 권리이며 의무라고 생각한다.

역시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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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강 배 한 척 외 - 2007년 제8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해토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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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은 다음과 같다. 박민규의 누런 강 배 한 척,(수상작) 그렇습니까,기린입니다, 굿바이,제플린,(수상작가 자선작) 김애란-침이 고인다, 김연수-모두에게 복된 새해, 이현수-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들이지 마라, 전성태-목란식당, 천운영-소년J의 말끔한 허벅지, 편혜영-분실물, 황정은-모자(추천우수작).

우선, 수상작인 박민규의 누런 강 배 한 척은 생각만큼 그리 좋진 않았다. 오히려 기린,이나 제플린,이 나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썼다는 이 작품은 그래서인지 한 늙은 남자의 노년의 쌉싸래한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나이듦'이나 그러한 '노년의 삶'에 대해 쓴 작품은 박완서의 것이 더 잘 묘사되어 있음은 물론 뛰어나기도 하다. 박민규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잘 실현된 작품도 아니며 솔직히 가장 좋았던 작품은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나는 이 수상에 납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집이 나온 당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박민규처럼 글을 쓰려 했었다. 한창 떠오르던 박민규의 인기는 절정이었고 2000년 이후 한국문학의 판도를 아예 바꿔버렸었다. 이 상은 그래서 누런 강 배 한 척,뿐만 아니라 박민규라는 작가 자체에게 주어진 것이었고 따라서 나는 납득한다. 카스테라에 한 번 수록된 적 있는 기린,이 완성도를 포함한 모든 측면에서 나았지만 발표시기라던가가 맞지 않아 수상운이 없었던 듯 하다. 기린과 제플린은 박민규 특유의 느낌이 수상작보다 더 잘 살아있는 작품인데 이 책을 통해 박민규를 처음 읽는 사람은 누런 강 배 한 척의 수상에 의아해하지 말고 이 두 작품을 읽으며 박민규의 수상에 대해 이해해주길 바란다.

추천우수작에서는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가 단연 눈에 띄는데, 심사평에도 마지막까지 수상작과 겨뤘던 작품이란다. 좌애란 우민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김애란 또한 최근들어 가장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중 하나인데 그것은 그녀의 개성이 넘치는 작품의 질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특유의 공감과 사실감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문체의 그녀의 소설은 아주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두 번째 작품집에서 약간의 소포모어 징크스를 느꼈지만, 분명한 저력이 있는 작가니만큼 앞으로 더 좋은 글을 발표할거라 믿는다. 다음으로 괜찬은 작품엔 김연수-모두에게 복된 새해, 전성태-목란식당, 황정은-모자 정도를 꼽을 만하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되는,을 연상시키는 플롯의 김연수의 이 단편은 상당히 재밌다. 이번에도 소통의 불능에 대해 쓰고 있는데 한결같은 말을 하는 작가이기에 재밌게 읽었다. 전성태는 처음 읽었는데, 아마도 철저한 사전취재가 있었을 듯한 이 작품을 읽으며 상당한 사실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소설적 재미또한 적절히 섞여있음으로 말끔하고 담백한 느낌을 받았다. 황정은 또한 처음이었는데 젊은 이 작가의 재기발랄한 모자라는 작품의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보였다. 장치적 허술함도 사실 보였지만 그보다 앞으로의 진보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기대되는 작가다. 천운영은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이 정도의 평이한 수준의 작품엔 만족할 수 없어 이렇게 순위를 뒤에 둔다. 그녀의 적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평작이었다. 이현수의 작품은 얼개 자체가 좀 엉성한 느낌이 강한 작품이었고, 편혜영의 작품은 마치 90년대의 소설을 보는 듯한 작법으로 쓰여져 좀 심심했다. 그때의 소설이 싫거나 못하다는 게 아니라 2007년에 거의 20년은 전의 시각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현실의 반영이란 소설의 측면에서 보면 상당한 악덕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론 전체적으로 수상작품들의 수준이 높아서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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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열일곱 - 2007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김종휘 지음, 한송이 그림 / 샨티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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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인 설명은 이렇다. 20대엔 '운동권'이었던 작가가 30대를 넘어서 대안학교의 선생이 되었다. 그리고 만난 제자들 15명의 이야기를 묶어 채긍로 내었다. 정확히 말하면 30명의 제자이지만 자세한 사연이 쓰여진 제자가 열 다섯, 간단히 소개만한 제자가 나머지 열 다섯. 후자의 제자들은 사연이 없던 게 아니라 사연을 알만큼 가까워지지 못해서 간단히 쓰고 넘어간단다. 확실히 부대 안에 있으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5분만 넘게 이야기하면 당최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어떻게 단순히 그냥 만난 모든 제자들의 이연이 이리도 제각각 개성넘칠까하고 궁금한 마음이 들다가 그것을 생각하곤 스스로 얻은 답에 스스로 납득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인생도, 개성없는 인간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면 그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물론 대안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제도권 교육과 뭔가 맞지 않아서 온 것이니만큼 사연이 있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제도권 안에서 묵묵히 대학가기위해 공부하는 아이들을 범인으로 매도하기엔 우리 개개인의 삶의 가치는 너무도 크다. 오히려 그렇게 특별하고 특이하고 '뭔가 이루는'사람에 대한 가치의 고저라는 인식 자체가 제도권의 강요일 수 있다. 인간은 뭔가를 꼭 이뤄야만 하는 건 아니다. 이와 꼭 같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는 같은 맥락의 여러 종류의 보편적 다수의 사회에서 튕겨져나온 열 다섯 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마음으로 쓴다. 쉽게 판단했던 그 아이들에 대해 사과하고, 고백하며, 끊임없이 묻는다. 내가 그 아이들의 제대로 봤는가. 내가 한 행동들이 옳았는가. 결과의 입장에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입장은 작가의 행동은 옳았다고 본다. 이토록 마음으로 쓴 글을 읽으면 더욱 그 생각에 확신의 무게가 실린다. 권말에 작가는 아이(혹은 제자)들을 대하는 방법이라 하며 몇 가지의 말들을 써 놓았는데, 그것은 실은 인간을 대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권말뿐아닌 책 전체에 걸쳐 이야기 되어진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김종휘의 애정 듬뿍 담긴 제자자랑의 말들은 마음으로 쓴 탓인지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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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 개정판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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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그녀의 책만 세 권째인데 이번 책은 전과 달리 내가 찾아서 읽는다. 나도 한비야라는 인간에 빠져버린 듯하다. 이 책은 세계 여행을 거의 마쳐가던 한비야가 이국땅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들은 한국 지명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었던 자각의 경험에서 결심하게 된 여행기이다. 그녀는 그 무지에 부끄러워 여행의 마무리를 우리나라 종단 도보여행으로 지으려는 결심으로 해남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걷는다.

항상 쓰는 글이지만 그녀의 책엔 문학적 가치가 그리 높지 못한데, 이건 그 책을 읽은 주위의 여러 사람도 꼭 같이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나도 그녀의 책을 읽는 것은 역시 그녀의 글엔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유독 우리 가슴에 커다란 바람을 불어넣어주는데 그 이윤 바로 '우리'의 국토를 여행하기 때문이다. 사실 떠나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는 것은 수많은 현실과 변명 때문인데, 그런 것은 그저 용기없는 자들의 흰소리라고 매도하기엔 떠나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이란 같은 편에서 쉽게 동의하게 되지 않는다. 사실 전엔 세계오지여행이나 중국어를 배우기 위한 중국체류, 세계난민구호활동등 그녀의 족적을 보며 그저 눈 반짝이며 우와,를 연발하기 바빴지만 이 책은 너무도 사실적으로(금액마저!) 그리고 현실적으로 국토도보여행 하는 과정을 서술함으로 전과는 다른 우리도 지금 당장 충분히 실현가능한(지금 당장 세계여행도 맘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고 말해도 반박할 순 없지만, 떠나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 선 나는 마찬가지로 쉽게 동의 못하겠다) 국내여행아른 점에서 굉장히 현실감있게 와 닿는다. 아주 제대로 헛바람이 든다. 그리나여 나도 이 책을 전에 읽었던 수많은 사람들도 했을 그것을 하기에 이른다. 바로 국내 도보여행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촌스럽다니 단순하다니 말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이십대이고 이런 책을 읽었는데 가슴에 바람이라도 들지 않는 쪽이 더 창피하다는 생각에서다. 한비야의 생각과 글들을 따르고 좋아하기엔 머리가 너무 커졌지만, 그녀의 떠나라!,이론엔 단 한마디의 반박의 여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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