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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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과 책 사이의 간격에 대해서는 잠시 침묵하기로 한다.
이 책을 다르게 이름 붙이자면 김영하 초기 단편선. 등단 이후의 약 3년간 쓴 단편들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다. 학습에서 김영하의 소설 ‘엘리베이터’를 보고 괜찮겠다 싶어서 빌려봤다. 내가 읽었던 김영하는 사실 은희경이나 하성란과 같이 뭔가 새로운 세대의-그러니까 2000년대, 21세기의 작가-작가라고 늘상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의외로 후일담 소설을 제법 썼었다. 그것도 슬쩍 언급하고 넘어가는 투가 아닌 무척 제대로인 후일담 소설을 말이다. ‘도드리’나 ‘베를 가르다’, ‘전태일과 쇼걸’ 따위의 작품을 보면 누구라도 쉽게 동의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도 최근의 김영하가 보여주는 경향도-지금, 여기에 대해 쓰는 것-분명히 나타난다. 이것은 역시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에서 가장 여실히 드러나지 않나 싶다. 또한 소설이란 곧 작가의 삶이라는 얘기를 증명하듯 자신의 이야기가 작품들 속에 잔뜩 들어가 있는데, 그것은 굳이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역시 초기 작품집답게 약간은 아쉬운 표현이나 플롯도 있었다. 최근의 김영하 소설들을 보면 상상도 못할 그런 치기라고 밖에 못할 것들인데, 사실 그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도 분명히 보여졌던 바 있다. 그러나 김영하는 분명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너무 쉽게 결론 내릴 필요는 없다. 단순히 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영하도 조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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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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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윤대녕의 첫 장편 소설이었다고 한다. 윤대녕 앞에 붙는 수식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부분 존재를 찾아가는,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자아를 시원하는 등 대부분 나 자신을 찾아간다는 뜻이 다분한 말들의 다른 표현들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실제로 기억을 잃거나(사슴벌레 여자, 본 작품), 깨닫지 못한 자신의 비어있는 어떤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한없이 걷거나(거리에서 낯선이와 서로 고함), 옛날 영화를 보러 간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수탐하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쓸쓸하다. 그러나 정말 다행히도 그런 작품 종국에는 항상 그 결핍들이 기대했던 충족은 아니지만, 다른 어떤 종류의 대체로 주인공에게 찾아온다. 뭐 사실 대부분 사랑을 찾거나 완성하면서 끝나는 게 사실이지만, 우주에서 길을 잃은 기분으로 작품이 끝나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윤대녕의 문장은 어찌보면 자의식 과잉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항상 줄타기를 하는 기분인데, 감정이 과해서 좀 너무하다 싶은 부분에서는 한 박자 쉬어주면서 다행히 절제를 하는 덕분에 스스로에 도취한 유치한 문장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그 경계가 항상 불안하여 읽다보면 조마조마한 기분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글이 써지지 않는 늦은 밤에는 혼자서 춤을 춘다는 작가의 옛날 책을 보러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은 일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렇게 날씨 좋은 요즘은 나가서 노는 게 더 좋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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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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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작품은 박완서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마흔에 등단한 작가는 등단 초기부터 자신의 세대의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그렇게 쉰, 예순, 일흔이 되어갈수록 그녀의 작품 속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어갔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란 작품도 그와 같은데 70년대에 쓰여진 작품들이므로 그녀가 쉰, 정도 됐을 때인데 작품 속 인물들도(조금 더 연령이나 성별이나 처지가 다양하긴 하지만)그와 비슷한 나이를 산다. 거기에 더해 그녀의 작품은 중산층의 삶을 아주 잘 묘사해냈는데, 너무 소소해 꺼내기 부끄러운 일들까지 쉽게 풀어 써 서술하는 그녀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존경심이 드는 이유는 일종의 달관이라고 볼 수 있는 감정들 때문인데,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 이를테면 지금 읽고 있는 윤대녕을 예를 들자면 그는 작품을 통해서 무언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다거나, 혹은 자기 자신의 완성된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노력의 흔적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반면 박완서의 작품은 조선왕조실록이라도 기록하듯 그저 담담히 자신과 주변의 것들에 대해 소일하듯 쓰는 것 같다. 마치 윤대녕>박완서라는 느낌이 강한데, 이건 좀 다른 문제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물론 윤대녕의 문학에 대한 소명도 좋지만, 박완서가 친절한 복희씨에 쓴 작가의 말과 같이 글을 쓰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는 것도 아주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옹기만들기의 장인이라거나 하는 사람들이 담담한 눈빛으로 옹기를 만드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아 말할수록 꼬여가는 이 기분. 그만할란다. 

아무튼 그녀의 글을 읽지 않는 것은 뭔가 큰 손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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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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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히치하이커를 읽던 날들은 왠지 내 인생의 어떤 사춘기와 같은 고민의 나날들이었던(혹은 나날들인) 것 같다. 혹은 항상 고민중이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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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의 편지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자연사랑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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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보고 너무 빠진 스테판 츠바이크. 도서관에 가보니 이 책 하나 있어서 빌렸다. 책날개에 소개되어있는 그의 기이한 삶에 조금 놀랐고, 이 소설이 발표됐을 당시의 소설들에 비해 이 소설이 갖는 실험성에 또 조금 놀랐다. 그러나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나의 열정이 사그라든건지 아님 책이 정말 그냥 그랬는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세 편의 중편(단편?)이 실린 작품집인데, 세 작품 모두 한 인간의 내면을 독백(편지) 혹은 서술로 아주 깊숙한 곳까지 파헤치는 집요하다시피한 작품이었는데, 표제작의 여인의 결말은 조금이나마 허구적인 감정의 완성을 이루는 반면, 나머지 두 작품은 너무 자기 감정에 내면적으로 집중한 나머지 파멸적 결말을 맞이한다. 사실 뒤의 두 작품이 최근의 나의 화두와도 조금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 공감하며 읽은 편이었으나 작품 전체적으로 너무 집중을 못한 듯해서 부끄러움 반, 무감각함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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