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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저택 ㅣ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SF나 팬터지 등 장르 문학은 언제나 한국 문학계에서 소외받는 장르였다.(이걸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소외된다는 뜻) 하지만 순문학이 많은 부분 붕괴하고(개인적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와 드라마같은 매체를 통해 SF와 팬터지가 대중들에게 익숙해지면서, 장르 문학 또한 요즘은 조금씩이나마 입지를 넓혀가는 것 같다.(물론 출판계 전반의 불황으로 아주 미세하긴 하지만)
레이 브래드버리는 20세기 미국 SF계를 이끈 대표 작가라고 한다. 사실 그동안 이름은 들어왔는데,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었다. 이 책이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읽게 되는 것이다.
<시월의 저택>은 무려 55년간의 긴 집필 시간 끝에 책으로 출간되게 된 소설이다. 사실 55년동안 이 작품을 내내 쓴 것은 아닌데, 이 책이 나오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45년 이 책에 재료 중 하나인 '귀향 파티'가 발표된다. 이 글을 시작으로 다양한 잡지에 다양한 단편들이 발표된다. 하지만 그 작품들은 책이 되지 못했고, 자연스레 잊혀져간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단편들을 보는 게 안타까웠던 레이 브레드베리는 55년이 지난 2000년에 그 작품들을 모으로, 고쳐쓰고, 이야기를 새로 써서 이 책 <시월의 저택>을 내게 된다.
사연만으로도 흥미로운 이 책은 어찌 보면 레이 브래드베리의 자전적이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물론 자전적이라는 게 그가 직접 겪은 일이란 의미는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독특하고 기괴하고 재미있는 몬스터들이 실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전적이라는 의미는 작가가 어렸을 때 상상했던 이야기를 소설의 형태로 옮겼다는 것을 뜻한다. 작가의 말에도 나와 있듯 이 작품에서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은 모두 작가가 어릴 적 할머니네 집을 돌아다니며 만났던 친척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친척들을 보면서 저 아저씨는 저런저런 괴물일거야, 저 사촌은 저런 저런 괴물일거야, 라는 식의 공상을 어른이 되어 다시 살린 것이 이 작품의 원천이었으니, 자전적이라는 말의 뜻은 그런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단하고 감동적일 수도 있는데, 어렸을 때의 공상은 크고 나면 다 부질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러한 생각들을 소설로 구체화시켜 책을 냈다는 것이 너무 멋진 일인 것 같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괴물 친척(?)들을 상상하고 있으면, 정말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상은 어린이든 어른이든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