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먹기 싫은 음식을 먹어가듯 책을 보고 있었다. 읽을 책을 고르고 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책의 총 페이지 수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250 무난한데. 340 좀 많은데. 190 빨리 읽겠네. 독후감 한 편 더 올릴 수 있겠는데.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남은 페이지만을 확인한다. 75페이지까지 읽었으니까 남은 건...

그리고 읽는 내내 감상문을 이렇게 써야지 저렇게 써야지 생각만 하고 이렇게 쓰면 그들이 나를 그럴싸한 놈이라고 보겠지. 저렇게 쓰면 다른 사람들 마음에 여운을 남길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3시간 30분 동안 나는 3번 화장실에 다녀왔고, 윤대녕 소설에 있던 구절을 멀티메일로 써서 나 스스로에게 보냈고 문자를 7통쯤 보냈으며 그 절반 정도를 받았다. 자리를 3번 옮겼고, 이 책을 읽기 전에 페이퍼라는 잡지를 훑어 봤으며, 보고 난 뒤에 다이제스티브 초코맛과 과수원 살구맛을 사먹었다. 더 전으로 살펴 보자면 7시 알람을 듣고 일어났지만 금새 꺼버리고 다시 잤으며, 10시에 일어나서는 세수를 하고 컴퓨터를 켠 뒤 인터넷으로 새로운 글들을 잠시 확인했고, 라면을 삶아 먹었다. 그리고 윤대녕의 책을 마저 읽고 병원에 들렀다가, 토스트와 우유를 사서 도서관에 갔다. 산책을 하며 그것들을 먹고 난 뒤에, 읽은 책들을 반납하고 도서관에 똬리를 트듯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고 난 뒤에 내친김에 수영장도 빠졌다. 또한 어제의 나는 12시간을 잤고, 내일은 무엇을 할 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젠장. 왜 읽는가 라는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200페이지 쯤을 읽고 있을 때였다. 마음이라는 바다 안에서 안 돼 안 돼 라는 외침 사이로 조용히 부레를 부풀리듯 수면으로 떠오른 말.

그만 읽을 때가 되지 않았나.

나는 왜 하필이면 이렇게 좋은 소설을 읽을 때 그런 말을 떠올려버린 것일까. 좋지 않은 소설도 충분히 많이 읽었는데 말이다.

다시 저 말로 돌아가서. 나는 실제로 그만 읽을 만큼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1년에 100권이라는 식으로 생각해도 지금까지 읽은 책은 1000권이 채 되지 못할 것이 분명했고, 10000권이 넘도록 독서를 계속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은 제각각이다. 한 사람의 피쳐가 공을 몇 개 던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나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이나 만화에서 읽었었다. 불치병 선고를 받고도 얼마나 살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 또한 어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이나 만화에서 봤을테고. 그럼. 나의 끝은 여기일까. 글쎄.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읽기 싫은 책을 억지로 봐야 한다는 식의 소명때문에 봤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실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읽고 싶었으니까 나는 억지로라도 읽었을 것이다. 변명조로 흐르지만 이건 사실같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서, 라는 말을 쓴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실제로 과거의 나는 읽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워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건 과거의 이야기니까. 내 기억이 전부 진실일 수는 없다는 말 또한 하고 싶다.

독서하자고 마음 먹은 15세 이후 나에게 있어 독서는 뭔가 특별했다. 책 읽는다는 것을 나에게 뺀다면 남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잘 하는 것 하나 없는 쓸모없는 몸뚱아리와 시시각각 변덕 부리는 못난 뇌라 불리는 단백질덩어리 정도일게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이제 끝낼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님을 나는 안다. 실제로 내일 아침, 아니 지금 당장부터 책이란 것에 손을 대지 않고도 나는 살 수 있다. 실제로 수없이 많이 나는 그딴 종이 쪼가리를 포기하는 상상을 했고, 누군가에게도 말한 적도 있다. 그따위. 그러나 내일 아침, 아니 지금 당장 나는 외계인으로부터 납치를 당할 수도 있다. 가능성의 문제는 그런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는 식의.

일단은 읽기로 한다. 읽고 읽지 않고의 문제는 결국 읽어 보고 난 뒤에야 답이 나오는 것이다. 확실한 생각의 정리의 뒤에서야 나는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그때까지 읽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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