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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부터였나...은희경의 소설을 빌리려다 도저히 못 찾겠어서 다른 작품들을 빌렸다. 천운영은 평소에 많이 듣던 분이라 미리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기회가 닿아 보게 되었다.
표제작 바늘의 경우 표절의혹이 있었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보게 되니 작가가 표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하루 30분씩 보다 위기감이 느껴지면 한꺼번에 봐버리는 독서습관좀 고쳐야겠다.
작품은 굉장히 좋다. 정말 좋다. 오랜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났다. 다만 이런류의 소설을 읽으면 쓸데없이 많은 생각이 들고, 그건 조금 나를 기분이 안좋게 만든다. 하성란이 생각났다. 하성란의 작품과 조금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확대해서 생각해 보면 그건 비단 하성란만의 유사성이 아니다. 얼마 전 수요기획인가에서 살타첼로라는 형님들이 나왔었다. 그형님들은 우리 스스로도 무시하는 우리나라음악을 모티프로 재즈로 편곡해 연주를 하시는 멋진분들이셨다. 그 분들이 한국 음악은 서양음악과는 다른것이 있다했다. 그건 '한'이라고 하셨다. '한'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 나라 예술 곳곳에 박혀 있다. 국민성이란 분명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생각으로)문학에서의 '한'은 남성작가보다 여성작가쪽이 연륜이 많은 작가보다는 서른에서 마흔정도 나이의 작가쪽에서 더욱 많이 표현된다. 젊은 나이에만 가질 수 있는 독기는 나이가 먹게 되면 지혜로 묽어지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지하씨가 책을 말하다에 나왔을때 나는 울고 싶어지지 않았었는가) 한은 슬픔이나 비애와 흡사하지만 같지 않다. 한은 좀 더 처절하고, 끈질긴, 밑바닥스러움이 있다. 서민을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들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일본 여성작가의 소설은 대개들 상큼하다. 그건 우리나라 여성 소설가들에게선 잘 찾아볼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 활동하는 여성작가들의 경우에는 자라는 것이 워낙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꿔말하면 한은 얼마 후면 명맥이 끊길지도 모른다. 가난은 상상따위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육체적 경험이다. 정신은 육체보다 항상 아래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천운영의 작품엔 한이 있다. 한은 내가 참 좋아하는 요소다. 질척질척한 진창을 걷는 기분으로 나는 이 책을 봤다. 아무렇지 않은 구절에서 눈물이 솟기도, 평온하게 진행되는 구조에 슬픔을 느꼈다. 정말 많은 책을 읽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이든 영화든 적어도 외국작품에서 한을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슬픔이란 투명한 것(카타르시스-정신적 정화)이라면 한은 더러운 것이다. 더럽고 처절하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와 가깝다. 서민은 더럽고, 처절한 삶을 산다.
정말 걱정이다. 한의 명맥은 벌써 위기에 다달았다. 작가라고 말하기 힘든 귀여니 따위의 소설은 불쏘시개로 쓰기에 비싼 정도고, 20대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는 턱없이 적다. 우리는 너무 편하게 자라버려서 한은 이미 상실했다. 우리는 가사만 한글일 뿐인 시시껄렁한 발라드나 댄스 음악 따위를 듣고, 하성란, 신경숙, 전경린을 읽기 전에 하루키나 바나나를 읽는다. 하루키와 바나나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전에 우리 나라 소설을 읽어주는 게 어떨까? 다빈치 코드는 200만부가 팔렸다는데 하성란의 소설들은 고작 3-4쇄를 찍고 있으니 이거 한심해도 너무 한심한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