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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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14년 정도가 되었지만(중2때 국어선생님-미친개-이 추천) 이제야 읽게 된다. 솔직한 마음으로 앞에 읽었던 하루키의 책과 마찬가지로 얇아서 빌렸다. 거기에 더해서 군 생활 할 때 <지와 사랑>(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을 너무나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에 빌리기도 했다. 하지만 따져보면 몇몇 권 읽은 헤세의 작품들 중 <지와 사랑>을 제외하곤 마음에 깊이 남은 작품은 없었다. 기대 반 걱정 반의 독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큰 감흥은 없었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너무도 절절하게 이 책에 대해 말해서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인지, 아님 내 지식과 시야가 부족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담담히 읽었다. 원래 이 책이 부처의 일대기를 헤세가 풀어 쓴 것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반 정도만 맞다. 단순히 부처의 일생을 쓴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단순 모티프 정도로만 활용해서 아예 새로운 소설로 쓴 것이다. 이것은 결국 부처의 삶을 소재로 쓴 교양소설(얼마 전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나서 알게 된 장르다.)의 일종이다. 

 

사실 읽으며 가장 혼란스러웠던 점은 주인공 싯다르타가 고타마라는 인물을 만나는 장면이었는데, 고타마 싯다르타가 부처 아닌가. 고타마가 성인 싯다르타가 부처가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싯다르타는 고타마라는 성인(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혼란을 느끼던 나는 그냥 단순하게 이건 헤세가 쓴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그 두 인물이 따로 나오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분은 말씀을 해주세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 책은 결국 헤세가 불교라는 것을 모티프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서양인이 본 동양’이라는 관점에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핀트가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느껴졌다. 싯다르타의 삶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윤회에 대한 암시 같은 것은 불교를 충분히 잘 이해하고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동양인이 직접 느끼는 불도에 대해서는 다소 미진하게 표현된 것 같다. 하지만 그 또한 그저 헤세의 작품 세계라고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내 자신이 헤세가 등장인물들을 통해 말하는 여러 문장들에 대해 깊이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이렇게 몇몇 느껴지는 점들에 대해 쓰고는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의견이나 논점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결국 이 감상의 끝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이해와 공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쓰며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문화는 결국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명작문학이 그 위세에 비해 많이 읽혀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독자가 가장 공포 때문인 것 같다. 혹시 자신이 그 작품을 읽고도 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무척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까봐 겁내는 것이다. 나도 물론 이 작품을 읽고 크게 감동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이유의 첫째는 내 부족함임을 잘 안다. 하지만 난 그것에 대해 자책하지 않겠다.  

 

이 작품이 아닌 다른 세계문학에 감동할 수 있는 것이고, 나중에 나이를 들고 다시 봤을 때 이 책에 크게 감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감동받지 않을까 두려워 책을 읽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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