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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평점 :
엊그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면서 우선 커티스 스튼펠드의 신간이 나왔나 살펴보다 나왔기에 바로 빌리고 나서, 한 권쯤은 조금 가볍게 읽고 싶어서 하루키를 빌렸다. 늘 나에게 있어서는 애증의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산문집은 대체로 가볍게 읽기 좋아서 빌린다. 500여 페이지에 달해 가볍게 읽기 힘들 것도 같았지만, 역시 읽다보니 분량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루키의 글과 태도는 언제나 나에게 불편함을 준다. 설명하기 힘든 몇몇 부분들이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는 스스로를 외동이라고 말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아마 그런 점들이 나를 열 받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참기 힘든 면들은 대체로 나 자신이 가진 못난 점들과 일치 하는 것 같다. 나와 닮은 그 모습에 왠지 더욱 화가 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정기적으로 하루키의 글을 읽는 것은, 그의 글은 무시하기엔 너무 뛰어나다. 하루키는 참 잘 쓰는 작가다.
이 책은 1979년부터 2010년까지 하루키가 쓴 여러 종류의 출판되지 않거나, 발표되지 않은 산문들을 모아 묶은 책이다. 각종 잡지에 소개된 글이라던가, 책, 음반 등에 쓴 소개사나 서문, 문학상 수상식에 읽은 감사문 등등...그 외에도 아주 짧은 소설도 몇 개 실려 있다. 역시 그 밀도 면에서 하루키의 여타 장편들을 읽는 것과는 현저히 다른 리듬이 있기 때문에 책은 두텁지만, 읽기 힘들지 않다. 사실 대체로 읽어도 딱히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도 그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해 쓴 글이나 책을 번역(하루키는 일본에서 영문학 번역가로도 많은 책을 내고 있다고 한다.)하는 일에 대해 쓴 글들은 무척 좋았다. 불필요한 힘을 빼고 쓴 느낌이라는 점에 그랬다. 외에도 옴진리교 사건에 대한 글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조만간 그가 그 사건에 대해 쓴 책-언더그라운드를 찾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건 이 책은 누구에게도 추천할 필요를 느끼진 못했다. 이유는 하루키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라면 당연히 ‘세계의 끝...’이나 ‘1Q84’등 하루키 문학에서 보다 의미 있는 책을 추천하게 될 것이고, 그런 것들을 전부 읽은 하루키 애호가들은 알아서 찾아 읽을 테니 구태여 내가 추천할 일은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