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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7 - 악명높은 황제들 ㅣ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8년 11월
평점 :
7권 악명 높은 황제들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서 우리는 쉽게 선입견을 갖는다. 유명한 인물일수록 실은 사람들이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 한 경우가 많고, 또 알고 있다 하더라도 왜곡된 면이 상당히 많다. 특히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로 분류되는 사람의 경우는 그 위대함만, 악행을 많이 저지른 사람의 경우는 악함만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이 7권은 특히 그런 악명이 높은 황제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시각은 그간 다소 잘못되어 있던 관점들에 대한 옹호다. 여기 나오는 네 명의 황제 티베리우스, 칼리쿨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네로의 이야기만 보더라도 우리의 시각이 그간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나도 네로 말고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철저히 시오노 나나미의 시각에 따라 그들을 판단하게 되었는데, 이미 그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의 경우는 그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가까이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비교를 해 본다면 보다 이해는 쉬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포악한 왕으로 생각하는 태종 이방원을 생각해보자. 그가 아버지와 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일이나, 정도전과 같은 개국 공신들을 죽인 일들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로 인해 그는 항상 권력욕에 심취한 악명 높은 왕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그가 펼친 정치와 왕권 강화, 명나라를 상대로 한 외교 등은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훌륭했다.
반면 누구나 위대한 왕으로 생각하는 세종을 생각해보자. 물론 나도 국문학도로서 특히 그를 존경하고 있으며 그가 펼친 정치와 치세는 단연 위대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명나라를 상대로 한 치욕적인 외교 등을 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과는 상관없이 시대가 지날수록 사람들의 선입견은 더욱 견고해진다. 그리고 그 방향은 악명 높은 사람들은 더욱 악명 높게, 선정을 베푼 사람들은 더욱 선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경우도 나는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냥 전투를 좋아하는 폭군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철저한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척 놀랐다.
그리고 이 7권은 그 네 황제를 다소나마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야를 제공한다.(하지만 역사책을 읽을 때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책을 통해 갖게 된 역사에 대한 인식은 철저히 글쓴이의 시각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글쓴이가 거짓을 말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때론 아주 슬프게 느껴진다.) 특히 티베리우스의 경우는 그 위대함을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어찌 보면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 못지않은 훌륭한 황제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디우스의 경우도 다소 실책한 점도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아주 올바른 치세를 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특히나 많은 악명에 시달렸던 칼리굴라와 네로의 경우도, 그간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심한 망나니뿐 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경우는 어린 나이에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점, 제위 초반 많은 인기를 얻었다는 점, 살해(자살)당해서 제위를 빼앗겼다는 점 등 많은 공통점이 있다. 물론 통치 후기로 갈수록 이 두 사람이 많은 실수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토록 심한 오해와 악명에 시달린 것은 어쩌면 통치 초반 그들이 큰 인기를 얻은 것과도 크게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 지내고 좋아했던 사람의 실수는 어쩌면 그 주변의 사람들이 더 용납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예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고 여러 가지 안 좋은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을 때 가장 앞에 서서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었다. 칼리굴라와 네로의 경우도 그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로마 시민들에 의해 더 많은 악평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악평들은 커져 가고 시대가 지날수록 강렬한 이미지 한 두 개만 남게 되는데 그것들은 결국 좋지 않은 소문일 뿐이다.
어쨌든 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티베리우스에 의해 개국 이래 가장 번성했던 로마는 네로의 실정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맡게 된다. 다음 권에서는 그 위기들과 그것을 극복하는 로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재미있는 이 책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항상 너무 기대되며 설렌다.(이것은 내가 로마의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