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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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역시 감상은 사정상 나중에.

다음 읽을 책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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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아 세계문학전집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장정일의 소설 <구월의 이틀>속 한 문장과 무관하지 않았다. ‘호기심 가는 것부터 빼 읽기 시작하면 결국 나머지는 다 못 읽게 되는 게 전집’이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부터 나는 그 말에 완벽히 공감했다. 나 또한 이전까지 세계문학전집류에 관심을 갖고 이따금씩 그것들 중 몇몇 권을 읽어오긴 했지만, 그것을 전부 읽는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지 못했었다. 이유는 장정일의 문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우선 그 방대한 분량에 압도당했기 때문이었고, 다음으로는 세계문학전집을 구성하고 있는 책들이 전부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지적 허영에서 나온 일종의 도전심리로, 나는 지난 11월 말부터 세계문학전집을 몇 권까지가 됐든 1권부터 차근히 읽어보기로 결심하였다. 시중에는 다양한 전집류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특유의 길쭉하고 예쁜 책 판본과 도서의 구성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있던 ‘민음사’의 판으로 세계문학전집을 선택하여 1권부터 빌려 읽기 시작하였다. <암흑의 핵심>은 바로 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7번째 출간 작품이다.



시작과 끝 부분에만 잠깐 등장하는 서술자 ‘나’가 듣게 되는 말로의 이야기를 일종의 액자소설 같은 형식으로 구성한 이 작품은, 선원 말로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모험 이야기를 하는데서 시작된다. ‘인도양이니 태평양이니 중국해니 하는 곳을 실컷 돌아다니다가 막 런던으로 돌아’온 말로는 ‘뭍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실증이 나’기 시작해 ‘다시 취업할 배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17p)

말로는 어린 시절부터 지도상에 표기되지 않은 미 탐험지역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선원이 되어 여러 나라와 바다를 돌아다니게 된 것인데, 일자리를 찾던 그의 눈에 아직도 지도 속에 공백으로 처리된 지역이 눈에 띈다. 아프리카의 콩고다. 말로는 숙모 한 분의 도움을 받아 콩고에서 원주민들에게 살해 된 선장의 대신 할 사람을 찾는다는 회사로 찾아가게 된다.



작가의 삶을 반추해 봤을 때, 그 자신의 분신임이 분명한 작품의 화자 ‘말로’가 해주는 모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200여 페이지가 넘지 않는 많지 않은 분량에 비해 그리 읽기 쉬운 작품만은 아니다. ‘나’가 말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말로의 서술은 자연스럽게 대화체로 이루어지는데, 그 일인칭의 대화 투는 문어적인 문체에만 익숙해져 있던 독자들에게 다소간의 생소함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뚜렷한 네러티브나 플롯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의 구조 또한 혼란스럽다. 소설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이야기는 부재하고 그 사이엔 철저히 선원의 기록과 같은 건조한 줄거리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갖는 문학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읽기 힘들었던 이 책을 읽어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단순한 곤욕스러움이 아닌, 일종의 섬뜩함과 의문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그렇다. 말로의 탐험 속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되던 당시 아프리카의 모습, 혹은 커츠의 죽음과 같은 풍경은 책을 읽은 뒤에도 여운이 강하게 남는다. 아마도 이는 이 소설이 가진 특유의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가장 큰 영향을 준 듯한데, 그것이 집약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것은 말로가 커츠를 만나게 되고 또 그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는 장면에서다.



항해를 통해 콩고에 도착하게 된 말로는, 콩고에서 자신이 일하게 된 모회사의 대행점을 맡아 경영하는 커츠라는 인물을 찾아 ‘검은 대륙의 중심’을 향해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천신만고 끝에 커츠를 마주하게 된 말로지만, 커츠는 처음 아프리카로 건너올 때 ‘국제야만풍습억제협회’라는 단체를 위해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위엄있는 선의를 가지고 그 거대한 이국적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그와는 달랐다.(113p) 말로가 마주했던 커츠는 상아(돈)에 미쳐있던 편집증 환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보고서에는 ‘모든 야만인들을 말살하라!’고 가필되어 있었고, 아마 그 보고서에 가필을 하게 되는 과정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114p)

말로를 통해 암시되는 커츠의 삶의 과정 덕분에, 커츠가 죽음을 맞게 되는 장면에서 마지막으로 뱉은 ‘무서워라! 무서워라!’라는 말은 다양한 해석을 암시한다. 자신의 지난 삶을 반성하는 후회나 회한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인지, 혹은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담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한 죽음의 공포를 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로와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158p) 그리고 이 마지막 말을 포함한 작품 내의 여러 가지 은유를 생각하는 동시에 언어와 번역의 문제도 생각하게 됐다.



조셉 콘래드는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 귀화해 영어로 작품을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무 살이 다 되어서 배우기 시작한 타국의 언어로 작품을 썼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작품이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잊혀 지지 않는 고전이 된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오랜 세월 간 읽혀온 만큼 이 책은 다양한 역자에 의해 다양한 번역으로 출간되어 왔다. 번역상의 차이에 대한 흥미가 생겨서 이 책의 다양한 판본을 모아 읽어 보았다.

그래서 기본 골조로 삼고 선택한 판본인 민음사의 것을 기준으로 하여, 역자가 다른 몇 권의 책을 비교해 보았다. 물론 이들은 같은 소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판본이 다르더라도, 이야기의 전개상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어느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우선, 제목만 살펴보더라도 민음사의 것은 <암흑의 핵심>이지만, 나영균 역의 자유교양사판 1989년 출간본은 <어둠의 속>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2006년 발간된 북피아판에도 동일한데, 이유는 번역가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출판사를 바꾸고 어느 정도로 오역이나 오, 탈자를 바로잡은 후 재출간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석구 역의 을유문화사판 2008년 출간본의 경우는 이들과는 또 다르게 <어둠의 심연>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마지막으로 1982년 삼성출판사의 장왕록 역의 경우도 <암흑의 오지>라는 제 4의 제목으로 출간된다.



원제가 <Heart of Darkness>인 것을 생각하면 이 모두는 각자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들 중 어느 제목을 취할 것인가에 따라 작품이 궁극적으로 갖는 의미가 달라진다. 제목은 작품의 내용과 주제를 가장 단적으로 암시하는 중요한 일을 담당한다. 원제의 'heart'가 갖는 의미는 여럿이다. 가장 첫째 의미로는 말로가 가고 싶어 했던 지도상의 검은 부분일 것이고, 그 다음의 의미로는 이 작품을 가장 보편적으로 분석해왔던 것인 말로를 통해 보여지는 제국주의라는 ‘암흑’의 진실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커츠로 표현되는 인간 내면의 알 수 없는 본성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번역판의 제목들도 각자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의 세 번역판 제목의 경우는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함께 원제가 갖는 의미를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제목의 경우는 첫 번째 의미만을 강조하고 후자의 의미들을 포함할 수 없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제목 외에도 얼마간의 번역상의 차이는 보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커츠가 남기는 마지막 말일 것이다. 앞서도 민음사 판에서는 ‘무서워라! 무서워라!’라는 말을 남기며 커츠가 죽었다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원래 ‘The horror! The horror!’라는 문장을 번역한 것이다. 이것을 나영균은 1989년 판에서는 ‘끔찍스럽다! 끔찍스러워!’라고 했지만, 2006년 판에서는 그것을 ‘끔찍하다! 끔찍해!’로 정정한다. 이석구 또한 나영균의 2006년판과 동일하게 ‘끔찍하다! 끔찍해!’로 번역하였으나, 장왕록은 이들과는 또 다르게 ‘지옥이다! 지옥이다!’라고 번역한다.

제목과 마찬가지로 커츠의 마지막 외침은 다양한 목소리로 읽힌다. 번역의 문제를 꺼낸 것은 이 때문이다. ‘The horror! The horror!’ 라는 문장을 저렇게 다양한 형태로 번역해 낸 것은 아마 번역가 각자가 느꼈던 커츠의 최후에 대한 의견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같은 문장을 다양하게 번역하고, 또 그 의미가 미묘하게나마 다르게 변하는 것에 있어서 사람들은 번역이라는 것의 한계를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한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번역가는 곧 창작자와 같다고 생각한다. 번역의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가능한 원작과 가장 가까운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 번역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선택된 단어들은 다 각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번역이 가진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고 또 오래전부터 논쟁이 되어왔던 소재는 역시 콘래드가 바라보는 제국주의에 대한 것일 거다. 내가 참조한 다섯 권의 책의 해설이나 역자 후기에도 역시 그러한 관점을 통해 작품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랬기 때문인지 나는 이 소설을 제국주의를 중심에 놓고 보지 않으려 애썼다.

내가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려는 시도 속에는, 그 ‘인증된’ 세계문학들을 다시 내가 가진 눈으로 바라보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어도 그것이 내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코 나에게 있어 좋은 작품은 아닌 것이다. 물론 나도 이 작품을 보면서 콘래드가 말로의 입을 통해 삽화식으로 제시한 제국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커츠라는 인물의 삶과 죽음 속에 더 큰 의미를 찾았다.

우리 대학에서 선정한 100권이나 되는 인문학 권장도서들도 이미 ‘인증된’ 말할 것 없는 훌륭한 책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이미 익숙해진 독법에 의해 읽고 느끼기만 한다면, 그것도 결코 그 책들을 읽는 바람직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남들이 느꼈던 백 가지보다 내가 느낀 한 가지가 더 소중하고 마음에 와 닿는다.

번역가들이 각자 번역하면서 얻은 깨달음들로 각자의 단어를 선택했듯이, 나도 남들이 느낀 것이 아닌 내가 느낀 것들을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한다. 전문가들을 통해서 나온 잘 다듬은 문장이나 날카로운 시선이 아닌, 비루하고 좁은 나의 글과 시야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의 단어와 말들을 찾아서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제야 내가 읽은 좋은 책들이 비로소 내 것이 되며 진정한 의미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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