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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조용히 좀 해요
레이먼드 카버 지음, 손성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3월
평점 :
소설이란 장르는 여담의 문학이라 할 수도 있다. 어떠한 소설이 가진 주 네러티브가 물론 그 소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며 줄거리이겠지만, 그 속에 작가가 담으려는 많은 이야기는 주 네러티브를 따라 흘러가는 일종의 부 네러티브라 할 만한 것-여담 속에서 보여진다. 바로 직전에 읽었던 ‘눈의 여행자’를 예로 들어보면 주인공이 숫자놀이책의 인도를 받아 일본을 여행하는 것이 주 네러티브라면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부 네러티브일 것이다. 그만큼 소설에서의 여담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며 빠질 수 없는 것인데, 만약 그 여담이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된다.
사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 네러티브가 존재한다는 말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그의 소설은 일정한 이야기나 사전의 흐름을 전달한다기 보다는 어떠한 삶의 전반적인 모습을 가장 그것을 대변할 수 있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카버의 소설은 네러티브가 아니라 신scene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여타 소설들이 한 주인공의 일생에서 가장 특별하며 찾아오기 힘든 극적인 순간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면, 카버는 등장 인물들의 가장 일상적인 순간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치밀하게 묘사해낸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순간들은 우리 인생과 같이 보잘 것 없고, 치졸하며, 부끄럽기만 하다.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가. 좋아하는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간절히 원하던 것을 이루는 것은 극히 삶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이성과 사귀게 된 후 연애의 지리멸렬함을 느끼거나, 간절히 원하던 것이 이루어진 후의 허탈함에 대해 더욱 많이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카버는 지극히 담담하고 간결한 문장들로 그 상황을 치밀하게 묘사해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피하고만 싶고 보고 싶지 않은 우리들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담담히 들춰내는 이 작가의 소설이 밉게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