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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뽀로 여인숙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Ⅰ. 서론
국문학도로써 자신의 가장 본질에 가까운, 모태로 돌아간 상태의 글과 문학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한 권의 장편소설을 분석하려고 하는 과정 첫머리에 어떠한 소설을 선택할까를 고민하던 중, 말로 풀어쓰자면 앞의 문장과 비슷한 종류의 질문에 부딪히게 되었다. 선택은 자유였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종류의 나의 ‘밑바닥’과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 『삿뽀로 여인숙』을 집어들었다. 더 이상 논문과 타인의 글에 의지하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문장을 찾고 싶었고, 그래서 나의 참고문헌은 오로지 하성란의 책과 글들(칼럼)뿐이다.
기억이란 것은 이상한 것으로,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되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돌이켜 보면 실제 그 소설이나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과장되어 있어, 일종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상태로 마음 속의 성역으로써 존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막상 그 소설을 다시 읽게 된다면 여전히 대단하기는 하지만 커져버렸던 기대감보다는 약간 덜 대단한 모습에 실망을 하게 된다. 이번 감상을 쓰기 위해서 읽은 것까지 포함하면 나는 이 소설을 총 3회 읽었는데, 한 번 읽은 책을 잘 읽지 않는 내 독서습관을 생각하면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은 후인 2003년즈음엔 이 책에 대해 경배에 가까운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몇 년이 지날수록 묽어지지 않아서 다시금 이 책을 꺼내들기가 쉽지 않았다. 앞의 말한 것과 같은 감정이 생길까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판된 이 책을 점포정리 하는 헌책방에 들어가 우연히 구하게 될 때, 나는 일종의 계시를 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2005년 초에 다시 읽게 된 이 소설은 예상했던 것 보다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4년만에 다시 『삿뽀로 여인숙』을 읽게 되면서 나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독서를 한 후에 감상문을 쓰는 것은 꽤 오래된 나의 버릇이지만 단 한 번도 어떤 작품에 대해서 작정하고 감상을 토해낸 적은 없었다는 자격지심이 있었다. 이 작품은 나의 주머니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Ⅱ. 본론
1) 작가
작가 하성란은 1967년 서울 출생으로 1992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풀」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단행본으로『루빈의 술잔』(1997), 『식사의 즐거움』(1998), 『옆집여자』(1999), 『삿뽀로 여인숙』(2000), 『눈물의 이중주』(2001), 『내 영화의 주인공』(2001),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2002), 『웨하스』(2006)등이 있다. 수상 경력으로는 1999년 제30회 동인문학상(곰팡이 꽃), 2000년 제33회 한국일보문학상(기쁘다 구주 오셨네), 2004년 제 11회 이수문학상(강의 백일몽), 2008년 제16회 오영수문학상(그 여름의 수사), 2009년 제54회 현대문학상(알파의 시간)이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글 ‘작별의 순간, 삶이 반짝였다’(2009.5.31 한겨례신문)등에서 밝히듯 그녀는 여상 출신으로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해 일을 하다 늦게 공부를 시작해 서울예대 문창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은 여러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데, 단편 「풀」이나 「1984년」그리고 이 작품 『삿뽀로 여인숙』의 주인공 ‘진명’ 또한 그런 작가의 경험과 뗄 수 없는 듯하다. 그녀의 첫 작품이 당선된 것은 나이 서른의 일인데, 스무 살부터 매년 끊임없이 신춘문예에 작품을 보냈다고 하니 9전 10기의 노력이 그녀를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만들어주었음을 알 수 있다.
2) 작품분석
하성란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이자 네 번째 출간작인 이 작품 『삿뽀로 여인숙』은 다양한 면모가 공존하는 아주 흥미로운 소설이다. 다음으로는 이 작품에 대해 주목 할 만한 점 몇 가지를 중심으로 논의해보고자 한다.
(1) 추리 소설적 서사구조
아직도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가르는 케케묵은 논쟁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그것들을 가르는 경계 자체가 모호해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폴 오스터, 커트 보거네트, 미셸 투르니에 등의 대표적인 미국, 유럽권의 현대 소설가들의 작품들에는 남미문학으로 일컬어 질만한 작가들-보르헤스, 마르케스 등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환상성이 가득하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움베르트 에코의 작품은 그 진행 자체가 추리 소설적 장치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서사적 재미를 배가시켰다. 이것은 국내 문단에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들인데, 역사 소설의 부흥이 바로 그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소설은 이와 마찬가지로 표면적으로 추리소설적인 장치를 취함으로써 네러티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해 죽게 된 쌍둥이 남동생 ‘선명’의 이야기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선명’의 쌍둥이 누나 ‘진명’이 화자가 되어 진행되는 이 소설 속의 추리 소설적 의문은 바로 ‘선명’의 죽음이다. ‘선명’이 죽고 난 후 갑작스레 들리는 환청과 환각 그리고 그 속에서 듣고 보게 되는 ‘고스케’라는 존재, 수학여행 때 샀던 네 개의 종 등등 이 소설은 수많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에 대해 친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하기 보다는 많은 암시와 상징으로 그 문제들에 대한 답을 넌지시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많은 것에 대한 의문을 얻지 못했었다. 하지만 재차, 삼차 반복하여 읽는 동안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작가의 힌트를 발견했고, 어느 정도의 해답을 얻었다. 다음으론 그런 몇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①. 고스케
쌍둥이 동생의 죽음으로 ‘진명’은 변했다. 고등학생이던 그녀는 보다 열심히 공부를 해 성적을 올렸으며,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대신 뛰어다닌다. 자전거를 타다 죽은 동생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는 ‘진명’의 자전거 또한 잠가버리고 그 열쇠를 버렸기 때문에 ‘진명’은 뛰어다니기로 한다.
선명이가 죽은 뒤로 난 건강해졌고 성적도 좋아졌다. 아이러니였다.(18쪽)
그리고 ‘왼쪽 귀에 이상이 생긴’(11쪽)다. 왼쪽 귀에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들려오는 속에 ‘선명’이라는 낯익은 단어를 포착한다. 그 말들은 다시금 일본어로 된 소리로 들려오는데, 놀이터에 앉아있던 그녀는 귀에 들리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고 ‘고스케’라는 이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대학 원서를 쓰는 날, 텅 빈 학교 복도에서 그, ‘고스케’와 마주하게 된다.
나는 산책하듯 구부러진 복도의 끝을 향해 느릿느릿 발을 떼었다. 복도 끝에서 한 남학생이 나타났다. (중략) 몸이 부딪히지 않기 위해선 내가 비켜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학생과 몸이 부딪혔다고 생각한 순간 그 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중략) “너니? 네가 그 사람이니?...... 고스케?”(51-52쪽)
그것은 단순한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환상이 아니라는 것은 ‘진명’도 독자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진명’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그녀는 ‘당분간 고스케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에 부쳐두기로’(52쪽) 한다. 담임의 예상과는 다르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게 작은 회사에 취직하게 된 그녀는 당분간 ‘고스케’를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선명’의 유품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때, ‘진명’은 ‘고스케’와 다시 재회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선명’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한다. ‘선명’의 유품을 정리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진명’은 갑작스레 바뀐 횡단보도의 보행신호에 맞추기 위해 자전거의 속력을 높이는데, 갑작스레 키가 큰 남자 하나가 나타난다. 놀란 ‘진명’은 급히 브레이크를 잡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고, 반사적으로 핸들을 틀어 남자를 피하나 전신주에 부딪혀 쓰러진다. 하지만 곧, ‘진명’이 건너려했던 횡단보도에는 보행신호를 지키지 않은 차 한 대가 지나간다. 남자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돌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 자동차와 정면으로 부딪혔을 것이다. ‘진명’은 본능적으로 그 남자의 정체를 눈치챈다.
거리에는 거짓말처럼 아무도 없었다. 방금 내가 봤던 것에 대해 날 가로막았던 그 남자에 대해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내 앞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만한 사람이 단 한 사람 있었다. 고스케였다.(98쪽)
그 뒤로도 꾸준히 ‘고스케’는 ‘진명’의 주위를 멤돈다. 창경궁에서 만난 고스케는 ‘손가락으로 뺨을 가리’(143쪽)키며 ‘흉터는 어쩌다 생겼어? 라고 묻는 것’(143쪽) 같았고, 창경궁에서 본 ‘고스케’의 환각에서 본 뒤에 있던 시계탑을 한 일식집에서 발견(193쪽)하기도 한다. 또한 환청으로 들려오던 익숙한 허밍소리와 같은 노래를 부르는 남자를 보기도 하지만(175쪽) 그 빈도가 전처럼 잦은 것은 아니었고, 그 뒤로 ‘고스케’를 만난 것은 9년이 지난 후였다.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감에 눈을 떴다. (중략) 내 몸 위를 뱀처럼 기어올라온 무언가가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남자였다. 어두웠지만 남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235쪽)
소설 내에서 이 남자가 ‘고스케’라는 명확한 지칭은 없으나, 휘파람, 허밍, 어두웠지만 남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등의 대목에서 우리는 이 인물이 ‘고스케’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정해진 수순인 양 일본을 향해 떠난 ‘진명’은 ‘고스케’를 마주하려 한다. 아버지에게 걸려 온 전화처럼 ‘진명’ 또한 ‘이제 그만 편안해지고 싶’(238쪽)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편안해지고 싶었던 것은 ‘진명’이 이미 ‘선명’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무튼 작품은 ‘고스케’를 만나려는 순간에서 끝나지만, 그 직전 작가는 ‘고스케’와 ‘선명’의 죽음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실마리를 남긴다. ‘진명’은 고스케를 만나기 직전, ‘고스케’의 방에서 ‘선명’이 죽던 해 갔던 여름 휴가에서 찍은 사진 뒤에 ‘선명’이 ‘고스케’에게 쓴 편지를 발견한다.
며칠 동안 불길한 꿈을 꾸었다. 내가 계획하는 것은 하늘을 속이는 일이다. 나는 아주 조용히 이 일을 계획하고 있다. 우린 쌍둥이니까 생각보다 일이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자전거경주에서 진명이를 따돌릴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애는 자전거로 외줄타기도 할 수 있는 아이다. 하지만 열심히 페달을 밟을 것이다. 이 일이 성공하면 이 편지가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245쪽)
이로써 ‘선명’의 죽음은 명징해진다. ‘선명’은 어떤 식 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진명’이 자전거 사고로 죽을 것을 예견하고, 그녀 대신 자신이 죽기로 한다. 이에 대한 도움을 ‘고스케’를 통해 받기로 하는데, ‘고스케’가 가진 어떠한 힘을 통해 ‘선명’은 ‘하늘을 속’여서 ‘진명’을 살린다. ‘선명’의 죽음은 헛되지 않는데, ‘진명’이 건너려던 횡단보도에 나타난 ‘고스케’ 덕분에 ‘진명’은 사고를 모면한다. 이 마지막 편지와 소설의 구절들 속에서는 ‘선명’의 계획은 명백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스케’가 가진 능력 등 몇 가지 부분에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많이 남는데, 나는 이것들을 꼭 그 정체를 알아야만 할 것들이라기 보다는 남미문학 등에서 보이는 일종의 환상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다른 소설들 중『식사의 즐거움』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초인적인 기억력, 「새끼손가락」의 택시기사가 보이는 불가사의한 마술, 「개망초」에서 죽은 인물을 화자로 설정하는 것 등 작가는 초현실적인 소재를 작품에 종종 사용했고, 그것은 하나의 소설적 재미로 다가온다. 소설에 있어 리얼리티라는 것은 현실에 꼭 있는 것들이라는 인식보다, 실제로 있을 법한 혹은 논리적인, 정도의 뜻을 갖는 것으로 그것에 실재에 대해 논쟁하기 보다는 그것의 허구가 얼마나 ‘진짜’처럼 짜여 있는 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다.
②. 네 개의 종
서사적으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 ‘선명’의 죽음이지만, 소설에서 가장 표면에 드러난 의문은 네 개의 종의 향방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 중요도의 낮음 탓인지, 표면적인 의문인 탓인지 네 개의 종의 도착점은 작품 내에서 전부 밝혀진다. ‘고등학교로 진학한 첫 봄’(13쪽)에 가게 된 수학여행에서 기념품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진명’과는 달리 ‘선명’은 ‘줄곧 사고 싶었던’(14쪽)에밀레종을 산다. 하지만 ‘진명’이 본 것은 두 개의 종 뿐이었고, 그 둘은 쌍둥이 각각에게 간다. ‘진명’은 이것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그리고 ‘선명’이 죽은 뒤 유품을 정리하던 진명은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한다. ‘미래에게’라며 쓴 그 편지 속에는 ‘나는 종을 네 개 샀다’(87쪽)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어 ‘그 한 개를 너에게’라고 써진 구절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미래’가 사람 이름인지 미래(未來)인지 궁금해하던 ‘진명’은 졸업 앨범에서 ‘윤미래’의 이름을 찾아내 전화를 건다. 우여곡절 끝에 윤미래를 만난 ‘진명’은 세 번째 종의 행방을 알게 된다.
상체를 구부리고 있어 늘어진 셔츠자락으로 목에 건 목걸이가 빠져나와 달랑거리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세우다가 목걸이의 펜던트에 눈이 갔다. (중략) 주방의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그것을 알아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중략) 벙어리 종이었다. 선명이가 산 세 번째 종이 바로 윤미래의 목에 걸려 있었다.(113쪽)
마지막 종은 작품을 읽는 새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고스케’가 가지고 있었다.
미닫이 방문 안쪽 위, 어둠 속에 매달린 작은 쇠붙이가 맞은편 창에서 가늘게 흘러들어오는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 필요도 없었다. 선명이의 네 번째 종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245쪽)
네 개의 종이 작품 내에서 하는 역할은 우선 주 네러티브의 진행이다. ‘진명’은 두 개인줄만 알았던 종이 네 개인 줄 알게 되면서 아주 중요한 인물인 ‘윤미래’와 만나게 되고, 네 번째 종의 암시로 ‘고스케’의 실체를 짐작하게 된다. ‘선명’은 오히려 그것을 노려 일부러 종 네 개라는 수수께끼를 ‘진명’에게 던져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소리가 나지 않는 종, 짖지 못하는 강아지 토마의 모습은 작품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닮아있다. 작가의 서술에 따르면 다시 ‘조립된 로봇’과 같은 인물들인데, 분해했다 다시 조립했지만 ‘어머니에게선 스프링이 아버지에게선 작은 나사못이 그리고 내게선 건전지가 빠져’(83쪽)있는 고장난 로봇과 같은 모습을 소리 나지 않는 종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③. 기타 인물들
이 소설에서는 독특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들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전부 말해주지는 않는다. 윤미래의 실종과 일본에서 그녀를 닮은 사람과의 만남, 김동휘와의 우연한 여러 번의 만남, 그리고 김정인과 최태경의 관계 등 짐작하기 힘든 여러 인물들의 삶이 교차적으로 제시되는데,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가지게 되는 차선적인 의문들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 의문들은 한두 문장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니 등장 인물들에 대해 알아 볼 다음 장에서 분석해보기로 한다.
(2)등장인물
①. 진명과 선명, 그리고 고스케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두말 할 것 없이 화자인 ‘진명’이지만 나머지 두 인물 ‘선명’과 ‘고스케’는 서사적 중요도에 비해 많이 등장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세 인물이 이 작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작품 자체가 쌍둥이 동생의 죽음, 그리고 그것에 얽힌 의문들을 풀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그 반증이다.
우선, ‘고스케’는 앞선 단락에서 밝혔듯 ‘진명’을 대신한 ‘선명’의 죽음이 헛된 것이 되지 않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작품 전체의 네러티브에 긴장성을 부여할 만큼 그의 존재 자체는 독자에게 해결해야 할 의문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등장이 ‘진명’의 환상이나 환청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니만큼 인물의 성격은 많ㅇ느 부분 묘사되고 있지는 않다. 그 외의 서사상의 역할에 대해서는 앞단락에서 충분히 밝혔으니만큼 넘어가기로 한다.
‘진명’과 ‘선명’의 관계는 쌍둥이,라고 정의하기엔 그리 단순치 못하다. ‘진명’은 그녀의 동생에게 단순하지 않은 애증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공을 넣기 위해 운동장을 뛰어다닌 게 아니었다. 난 선명이를 잡기위해 뛰어다녔을 뿐이었다. 하지만 따라잡을 수 없었다. 매번 슛은 선명이가 넣었다.’(212쪽), ‘선명이의 침착함이 부러웠었다. (중략) 사람들이 가진 쌍둥이에 대한 편견 가운데 하나가 쌍둥이는 쌍둥이가 아닌 형제, 자매들보다 훨씬 더 친밀한 사이일 거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투와 경쟁심 또한 남다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211쪽) 등의 대목에서 ‘진명’이 ‘선명’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이 단순한 애정은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선명’이 떠나고 난 뒤 ‘진명’은 끊임없이 그의 죽음의 그늘에서 발버둥 칠 뿐이었던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쓰라림은 인정하기 싫지만 질투였다. ‘너’라는 아이에 대한.’(88쪽)등의 대목에서는 분명한 ‘선명’에 대한 애정의 흔적이 뚜렸했다. 좀더 범 작품적인 측면에서 살피자면, ‘진명’은 하성란의 여러 다양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자들과 흡사한 목소리를 낸다. 하성란 작품 속의 여성 화자들은 대체로 현실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스스로를 제 3의 인물인 양 바라보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인물들은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기쁘다 구주 오셨네」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 속에서도 ‘다행히 선명이는 즉사했다. 살아 있었다면 트럭의 앞바퀴가 밟고 지나간 왼쪽 이마의 함몰된 커다란 상처가 두고두고 근심거리가 될 뻔했다’(10쪽)라고 담담히 ‘선명’의 죽음에 대해 서술한다. 하지만 이런 거리를 두는 서술로 작가는 인물들의 감적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나는 이따금 트럭을 몰았던 그 청년의 안부가 궁금해지고는 했다’(11쪽)등의 표현을 보면 오히려 덤덤하기 보다는 익숙치 않은 더욱 큰 슬픔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선명’은 ‘진명’과 ‘미래’의 대화와 기억 속에 등장하는 모습들을 짜깁기 해보자. ‘이진명, 우린 쌍둥이다. 같이 태어났고 늘 같이 있을 거다.’(245쪽) ‘선명’은 ‘진명’에 대해 큰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진명’대신 죽을 일을 꾸민 것만 보더라도 이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선명’은 ‘진명’을 상당히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명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기념품 같은 걸 거다.’(86쪽), ‘네가 나보다 잘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자전거 타기일걸?’(42쪽) 그리고 ‘선명’은 자신(혹은 진명)의 죽음을 예견했거나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떠나고 난 후에 추억하는 남은 사람들의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다. 떠난 것은 보다 아름다우며, 끝난 것은 보다 완벽하고,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을 추억 할 수밖에 없다. ‘선명’의 모습이 이렇게 빈틈없고 아름다웠던 것은 떠난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선명’을 추억하며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인물들도 조금씩 변해간다. 매일 학교와 집(그리고 회사와 집)을 뛰어다니던 ‘진명’도 어느덧 뛰지 않게 되었고 고장 난 엘리베이터 대신 꼭대기층까지 올라가던 그녀도 ‘4층을 오르기도 전에 속도가 느려’(205쪽)진다. 우연히 말한 ‘선명’의 이름에 찢어질 듯 울며 시골로 내려간 어머니, 아버지에게 온 전화 속에서 아버지는 말한다. ‘젊은 넌 믿지 않겠지만......나는 믿고 싶다. 이제 그만 편안해지고 싶구나’.(238쪽) ‘진명’도 결국 젊은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슬프지만 인정해야 할 진실 중 하나는 인간은 모든 것에 덤덤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②. 김정인, 최태경
‘선명’의 뒤를 따라가는 네러티브가 이 소설을 이루는 한 축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진명’의 사랑 이야기인 ‘김정인’의 이야기일 것이다. ‘담임 선생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대학에 입학하지 못’(53쪽)한 ‘진명’은 원목을 수입해 도매상에 넘겨 파는 수입상의 사무 보조원이 되었고 은행에 입금을 하러 가는 도중 업무 시간이 지나 은행문이 닫혀 멍하니 은행 안을 쳐다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능청스럽게 말을 걸어 온다. 함께 은행을 털자며 접근하던 그와의 인연은 같은 건물의 다른 회사라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정해진 수순인 양 ‘진명’은 ‘김정인’에게 빠지게 된다. ‘진명’과 ‘김정인’사이에 있던 많은 일들을 일일이 서술할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의외로 택시기사의 말에서 찾았다. ‘사랑도 처음이고 술도 처음이로군요. (중략) 사랑도 술도 점점 이력이 납디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난 죽으려고 했어요. 죽을 용기를 얻기 위해 술도 먹었어요. 덕분에 술만 세졌지요.’(81쪽) ‘최태경’이 최초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긴장감이 가득했던 셋의 연정은 어쩐지 ‘최태경’과 ‘김정인’둘의 싸움이 시작되면서 ‘진명’은 급속도로 흥미를 잃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에서의 ‘김정인’의 등장 비중은 다른 어떤 인물보다 높지만, 그렇다고 그의 중요성이 그만큼 큰 것은 아니다. 그가 ‘김정민’이든 ‘김성인’이든 크게 상관 없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진명’은 자신이 생각했던 크기의 감정을 그가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이란 것의 지저분한 종말(‘태경’과 ‘정민’의 싸움)을 보면서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를 조금 깨닫게 된다. ‘회전목마를 탈 건지 도깨비 집에 들어갈 건지’(71쪽)결정하게 된다.
③. 윤미래
‘윤미래’의 관계도는 이러하다. ‘진명’과 ‘선명’의 고등학교 동창이며, ‘진명’은 몰랐으나 ‘선명’과 모종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관계의 감정은 아마 일방 혹은 쌍방의 연정이었을 것이다. 1983년 2월 25일 희망독서실에서의 사건(210쪽)으로 ‘미래’는 ‘선명’에게 연정을 품게 되고, ‘선명’또한 수학여행에서 산 네 개의 종 중 하나를 편지와 함께 ‘미래’에게 준다.(87쪽) ‘진명’은 이러한 사실을, 아니 그 전에 ‘미래’의 존재 자체를 몰랐지만 ‘선명’의 유품을 정리하다 나온 편지의 내용으로 알게 된다. 종의 행방이 궁금했던 ‘진명’은 졸업 앨범을 바탕으로 ‘미래’를 찾아 종이 그녀에게 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미래’와 ‘진명’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우선, ‘미래’는 ‘진명’을 ‘선명’의 대체물로 보는 것이 명확하다. 이는 ‘미래’뿐 아니라 작품 초반 ‘진명’의 어머니조차 ‘진명’을 ‘선명’으로 잘못 보기도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16쪽) 둘은 쌍둥이였기 때문에라도 겉모습이 상당히 닮아있는 것은 물론, 둘 사이엔 뭔가 설명하기 힘든 타인들보다 더 깊은 공명이 있었고, 이것들이 둘을 더욱 닮아보이게 한다. ‘첨으로 날 주목해’(212쪽)준 ‘첫 남자 이상의 의미가 있’(212쪽)는 ‘선명’을 잃은 ‘미래’에게 있어 그런 ‘진명’의 존재가 더욱 애틋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잘못 건 척 전화를 끊은 ‘진명’을 찾아와 묻는다. ‘널 의지해도 되겠니’.(114쪽) ‘미래’는 ‘선명’을 잃은 일 자체를 서로 공감하며 위로해 줄 수 있는 아픔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선명’의 대체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진명’또한 잘 알고 있었기에 ‘정말 그렇게 닮았니’(108쪽)라고 묻거나 ‘난 이진명이야. (중략) 난 선명이가 아니야. 선명이는...... 선명이는 죽었어’(209쪽)라고 말한다. 이 감정의 차이는 두 인물과 ‘선명’과의 관계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진명’에게 있어 ‘선명’은 단순한 남매 이상의 의미를 가진 말 그대로 자신의 반쪽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를 잃고는 더 이상 온전한 자신으로 남아 있을 수 없어서 달리고, 문제집을 푼다. 스스로의 안으로 침잠한다. 반면, ‘미래’와 ‘선명’의 관계는 그보다 깊지 못하다는 것을, ‘선명’이 떠나고 나자 ‘미래’는 깨닫는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해 발버둥 치며 ‘진명’의 주위를 멤돌지만, ‘진명’은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미래’는 그것을 인정했는지 혹은 도피하려 하는지 그들이 보지 못 한 7년 사이에 산을 탄다. 결과야 어쨌든 그녀의 감정이 소중히 남아있는 것만큼은 분명해보였다. ‘모자 고맙다. 잃어버리지 않게 잘 간수할 거다.’(232쪽)
반면 ‘진명’에게 있어 ‘미래’의 의미는 단순치 않다. 처음엔 단지 종의 향방을 알고 싶어 ‘미래’를 찾았고 종을 확인하자 곧 ‘선명이가 산 세 번째 종의 행방을 확인한 지금 더 이상 윤미래와 만날 일은 없었다’(115쪽)고 말한다. 그러나 만날 때 마다 무언가를 하나씩 놓고가는 ‘미래’탓에 ‘진명’은 그녀를 지속적으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진명’의 의지가 있었다면 쉽게 끊을 수 있을 만남이었을텐데 ‘진명’은 어쩔 수 없이,라는 핑계로 만남을 지속한다. 그렇다. 잠수함처럼 침잠한 ‘진명’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고통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거다. 자신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선명’이라는 존재를 잘 알고 있는 ‘미래’와의 만남을 끊을 수 없었던 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진명’또한 누군가 위로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④. 김동휘
작품 내에서 기이한 우연으로만 세 번(네 번째는 모호하므로 제외) 만나게 되는 ‘김동휘’라는 인물은 그 비중은 적으나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인물이다. ‘진명’은 환청에 가게 된 이비인후과에서 다친 귀를 치료하러 온 ‘김동휘’와 처음 만나게 되는데, ‘김동휘’는 버스 안에서 달리는 ‘진명’을 계속 보다 관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의 귀를 보여주며 진명의 관심을 끄나 ‘진명’은 금새 흥미를 잃어 헤어진다. 다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대학에 떨어진 진명이 회사에 사무보조로 취직하게 되었을 때다. 입금을 하러 은행에 가던 도중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가 바뀌어 중앙선에 서 있게 되는데 그곳에 우연히 선 버스에 ‘김동휘’가 타 있었다. ‘진명’의 이름을 물었으나 버스는 곧 출발하고 ‘동휘’는 ‘진명’에게 자신의 학교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세 번째로 둘의 만남은 ‘최태경’을 피하는 ‘김정인’에게 이끌려 간 모텔에서의 만남인데, 우연히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리고 둘은 짧은 대화를 하는데, ‘동휘’는 ‘진명’에게 ‘나중에 만나도 알아볼 수 있게 너무 많이 달라지지는 말’라고 한다. 이것은 모호한 네 번째 만남에 대한 암시로도 읽힐 수 있는데, 우연히 만난 ‘미래’와 간 남대문 시장에서 ‘진명’은 ‘동휘’로 보이는 남자에게 아는 척을 하는데, 그 남자는 ‘진명’을 모른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그 사람이 ‘동휘’가 아니었다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기도 하지만, 세 번째 만남을 복선으로 본다면 너무 많이 달라진 ‘진명’을 알아보지 못한 것 일 수도 있다.
‘동휘’라는 인물이 가진 작품 속 의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쌍둥이 ‘선명’을 잃고 상실감에 그 존재가 엷어진 ‘진명’에게 실체를 부여하는 것이다. ‘미래’부터 부모님까지 온통 자신과 ‘선명’ 사이에 있는 질긴 인연의 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둘러 싸인 곳에서, ‘동휘’는 온전한(혹은 단수로써의) ‘진명’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동휘’는 ‘진명’의 이름을 묻는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 존재를 가장 상징적으로, 그리고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동휘’는 ‘진명’의 이름을 물음으로써 ‘진명’은 자신이 ‘진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또한 몇 번의 만남 동안 ‘진명’이 어떤 식으로든, 얼마만큼이든 ‘선명’의 존재를 떨친다는 것(변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마지막 만남에선 너무도 변한 ‘진명’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⑤. 김유미, 미스 최
그들 외에도 이 작품에는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나 마지막으로 짚어 볼 이 두 인물 말고는 크게 의미를 갖는 인물들은 없는 듯하다. 우선, ‘김유미’를 살펴보자.
‘선명’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진명’에게 환청이 들려오게 되고,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앉아 무심코 귀에 들리던 환청을 따라 말하는 ‘진명’에게 ‘김유미’는 말을 건다. ‘내 이름은 고스케입니다’라는 뜻의 일본 말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내뱉은 ‘진명’에게 ‘김유미’는 그것의 뜻과 자신의 이야기도 해준다. 이것은 간과하면 안 될 중요한 점인데, ‘진명’이 ‘고스케’라는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결국 ‘김유미’의 역할이었다.
하성란은 소설 속 주변인(타자)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주목하는 편인데, 그것은 그녀의 소설들의 주인공들 자체가 우선 사회적으로 주변인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당연하다. 「치약」에서의 한물 간 카피라이터와 무명의 모델, 「깃발」에서의 평범한 샐러리맨, 「촛농 날개」에서의 모순된 운명의 주인공 등은 극히 타자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녀의 단편들에서 그런 타자의 모습에 집중하는 면모는 장편에서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관심으로 드러난다. 작가의 또 다른 장편『식사의 즐거움』을 보면, 갓난아이를 바꿔치기 한 간호사의 사연에 집중하기도, 그리고 주인공이 방역을 하러 간 아파트에서 만난 노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소설에서의 여담이란 것은 어찌 보면 남은 이야기라는 뜻과는 다르게 소설들에 있어 아주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데, 작가들은 또 다른 주변 이야기들로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주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유미’가 주절주절 ‘진명’을 향해 말하는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게 넘길 만한 주변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또한 ‘미스 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스 최’ 또한 주변인으로 인식되며 그녀의 금고이야기(93쪽, 126쪽), 결근이야기(135쪽)를 통해 하성란은 그녀에게 주목한다.
(3)하성란 작품세계의 특징(『삿뽀로 여인숙』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하나의 작품 『삿뽀로 여인숙』에 대해 서사적 의문, 그리고 작품의 인물을 중점으로 분석해봤다. 물론 이 두 개의 시선으로만 보기엔 많은 아쉬움이 남는 글이지만, 그 외의 모든 점으로 이 작품을 읽기엔 내 개인적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두 가지의 시선 이외의 『삿뽀로 여인숙』, 그리고 한 작품을 넘어서는 하성란의 작품 전반적 특징에 대해서는 간단히만 알아보도록 한다.
익숙한 서사의 파괴
하성란은 익숙한 세계를 조금 비트는 서사를 즐기는데, 그것은 주인공들이 믿고 있던 세상을 부수는 것으로 실현된다. 그녀의 첫 작품집 제목 그대로인「루빈의 술잔」이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에서의 주인공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던 약혼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옆집 여자」의 명희는 거짓된 익숙함으로 주인공에게 다가가 주인공의 익숙한 세계를 부순다. 이 안에서 하성란의 인간성에 대해 탐구하며 관찰한다.
익숙한 세계의 반전은 간혹 실재와 현실의 혼란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단편「치약」에서는 실제 존재했던 ‘따봉’이라는 광고를 소재로, 『삿뽀로 여인숙』의 체육 선생(44쪽)과의 대화에서는 축구 선수 차범근을, 「별 모양의 얼룩」에서는 씨랜드 화재 사건을 소재로 사용한다. 이것들은 전부 실재하는 것으로 하성란은 그것들에 대해 자신 특유의 서사를 담아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는 실재하는 그것들과 소설 속의 사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모호해지는 듯 한 느낌을 받으며 혼란스러워진다. 그 짜여진 이야기까지 실존한다는 착각탓인지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무척이나 깊은 인상을 받는다.
개인성에 대한 탐구
인간성의 탐구라는 측면에서의 하성란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서 그녀는 이야기하기 때문에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알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가 자칫 놓칠 수 있는 ‘전체’에 대해서 소설 안에 배경적, 삽화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삿뽀로 여인숙』안에는 ‘진명’과 ‘미래’의 대화 속 이웅평 중위 미그기 남하사건(212쪽)을 통해 작품 배경이 1980년대라는 것, 통신수단이 텔렉스에서 팩시밀리로 바뀌는 것(204쪽) 등 직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배경에 대해 알려준다. 이러한 방식은 앞서 말한 비틀기와, 개인의 집중 두 가지 모두로 해석 가능한데, 우선 단순히 알려줄 수도 있을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다른 것을 빗대어 말하는 것을 즐기는 작가 특유의 특성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어떠한 식의 큰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작가의 문학적 버릇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 해석하건 그건 독자의 자유다. 두 번째 해석의 방식은 아무래도 개인에 집중하는 작가이다보니 주변으로써의 전체에는 소홀해 질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고, 그렇게 하나의 요소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다른 것의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 전체로서의 세계가 삽화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개인의 인간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문체적 특성
하성란이 9전 10기의 도전으로 최초에 「풀」로 등단하였을 때, 문단은 실로 이 작가에 ‘열광’했다. 그녀가 갈아온 칼은 극히 날카롭고, 새로웠다. 그 후 하성란의 소설을 분석한 모든 글에는 두 가지 내용이 약속이나 한 듯 빠짐없이 들어 있었는데, 첫째는 물론 그녀의 ‘서사적 비틀기’였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그녀의 문체다. 대부분 서사 위주의 서술이 한국 문학 전반의 특성이었는데, 그녀는 묘사를 극대화함으로써 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묘사는 곧 집착이라는 단어로 설명 가능할 것인데, 그녀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대상에 언어적으로 끈질기게 집착함으로써 그 대상을 표현한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그녀의 글들은 직, 간접적으로 많은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줬는데, 내가 읽기로 김경욱, 천운영, 백가흠, 김경욱, 김중혁, 김애란, 김숨 등의 작가들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묘사는 인물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주변 사물에 빗대어 나타내는데 무척 효과적이었고, 하성란이라는 이름이 갖는 특수성을 극대화하기에 이르렀고 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가장 촉망받는 작가 중 하나로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이야기꾼으로써의 면모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성란에겐 문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이러니 저러니 해도 소설은 결국 이야기일 것인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가장 좋은 작품은 뒷 이야기가 궁금해 잘 시간을 넘겨가면서 한 장이라도 더 보려는 작품일 것이다. 뛰어난 묘사에 묻혀서 하성란의 네러티브는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데(이것은 그녀가 상대적으로 단편을 많이 창작해서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무척 아쉬운 이야기다. 그녀는 매 소설마다 보다 새로운 소재, 새로운 이야기를 찾으려 노력하며 애쓰는 것이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이 세월의 흐름에 관계없이 훌륭한 것일테고. 작품집 『옆집여자』의 작가의 말에서 하성란은 ‘내 본심과는 달리 내 소설들은 여러분의 뒷통수를 치고 싶어한다’고 쓰는데,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소설 속 네러티브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한 일상을 비트는데서 하성란 네러티브는 빛을 발하며, ‘뒷통수를 친다’.
Ⅲ. 결론
하성란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친구가 머리를 자른다고 따라 간 미용실에서 기다리다 지루해 책장에서 꺼내 본 책이 『옆집여자』였었다. 그렇게 빠지게 된 하성란은 2002년『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이후로 출간작 없이 한참을 지냈었다. 그리고 2006년 4년만에『웨하스』가 나왔지만, 그 뒤로 또 이렇게 잠잠하다. 최근 소식들을 접해 본 결과 아마 늦은 직장 생활과 둘째 아이의 출산 탓 일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단편 소설과 칼럼 등을 연재하기도 하다 작년과 올해엔 두개 문학상도 수상했다는 걸 보면 그녀도 작가로서의 자신을 상당히 잘 관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는 새로운 장편소설을 계간지에 연재하고 있고 한 계절만 지나면 그것도 마무리 된다고 하니 그녀의 새로운 장편(!)소설을 기다리는 것도 즐거운 고통일 것이다.
이 작품 분석을 위해 소장한(그리고 없는 것은 빌린) 그녀의 작품 전부를 책상 위에 쌓아놓고, 한글 파일을 열었을 때의 막막함이 떠오른다. 보다 분석적으로 읽기 위해 책을 읽는 틈틈이 메모해두었던 탓에 『삿뽀로 여인숙』의 곳곳은 포스트 잇으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내가 이 책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가득했다. 이렇게 글을 마치려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에도 그 의문은 그대로이다.
하지만 확신이 생긴 것도 하나 있었다. 글을 쓰면서 계속 읽던 탓에 난 이 소설을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고 책장은 너덜너덜해져서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이제 이 책을 보기 지긋지긋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거쳤는데도 나는 아직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며, 정말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 탓에 레포트를 쓰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는데, 그 선택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실로 보석 같은 책이었고 이 감상문을 읽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도 이 책에 흥미를 느껴 『삿뽀로 여인숙』을 읽어보는 것 만으로도 내 감상문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거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적으며 마치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오로지 그 문장 하나에 있다고 해도 그 말은 절대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이란 단어를 친다고 친 것이 그만 오타를 내고 말았어요. 종이 위에는 모음 아가 사라지고 두 글자가 함쳐져 삶이란 글자가 찍혀 있었죠, (중략) 이런 말 재미 없죠? (39쪽)
-삿뽀로 여인숙,하성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