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결국 김연수는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야 말았다. 어지간한 이름 있는 문학상을 죄다 수상했으며, 등단한 지도 15년이 넘어가고, 펴낸 책 권수만 해도 두 자리 수가 넘어간다. 최근에는 홍상수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밴드 ‘문 샤이너스’의 노래 가사를 써주기도 했단다. 바야흐로 한국 문단의 대표 작가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작가가 된 것이다.
이 과제를 받아들고 전에 읽은 김연수의 글들을 생각했다. 나는 과거 군대 시절에 김연수를 아주 좋아하던 선임에 의해 읽게 되었던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이효석 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껴있던 ‘모두에게 복된 새해’ 두 개의 글을 읽었었고, 그것들에 대한 기억이 아주 희미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바로 ‘여행할 권리’를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 보았고(아니 대체 한 작가의 글쓰기가 갖는 의의와 의미에 대해 쓰는데 고작 에세이 한 권도 아닌, 한 편을 읽고 뭘 쓸 수 있겠는가), 시간이 여의치 않아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인 ‘달로 간 코미디언’과 이번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급히 읽어치웠다. 그렇게 나는 그의 한 편의 장편과 세 편의 단편, 한 권의 여행수필집을 읽고 그의 글쓰기가 갖는 의의와 의미에 대해 써보려 한다. 아아. 정신이 아주 아찔해지는 순간이다.
우선, 과제에서 주어졌던 에세이 속 마지막 장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내보려 한다. 김연수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다. 김연수가 그 일본을 여행하며 이상의 마지막 날들을 따라 간 것은 그 자신의 문학사에 있어 아주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는 소설을 발표하고 또 쓰긴 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슬슬 소설 쓰는 일을 접고 회사에 취직해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실로 오랜만에 장편 청탁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느끼고, 이것에 모든 것을-그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이 쓸 가장 마지막 단 하나의 작품-걸기로 한다. 그 자신의 필명-혹은 문학의 근원인 이상을 쓰기로. 그렇게 이상의 마지막 날들을 찾기 위한 여정은 이 수필집에 잘 나타나 있고, 거기에서 바로 장편 ‘꾿빠이 이상’이 나오게 된다. 다행히도 그의 작품은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고 그 후에 그는 모두 알다시피 더욱 크고 다양한 넓이의 작품들을 쓰는 작가가 된다.
여기에 김연수의 글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가 있다. 그렇지 않은 작가는 없겠지만 그는 유난히 공부를 많이 하는, 발로 쓰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들은 역사소설부터 현시대를 그리는 문학까지 실로 다양한 시대상을 포괄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그의 철저한 고증과 자료조사에 의해 쓰여진다. 이상의 마지막 날들을 따라가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 그의 모습이 바로 그 단적인 모습이다. 또한 그렇게 노력하는 만큼의 문학, 소설에 대한 진정성의 모습이 또 다른 김연수 문학의 핵심이다. 그는 실로 자주 ‘나는 소설가다, 소설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나는 프로 소설가다, 소설은 나에게 있어 신성한 것이다’와 같은 종류의 말을 하는데, 이것은 김연수가 가진 문학에 대한 진정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말들이다. 그는 소설에 대해 항상 고민하며,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가가 써야 할 소설에 대한 고뇌로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의 문장은 너무 집약력이 강하다. 농담을 하는 부분에서도 진지하게 읽어야 그 농담이 이해될 정도로 그의 문장은 무겁고 또 진지하다. 이것은 약간 가독성을 떨어뜨리기도 하는데,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김연수는 어렵다’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김연수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것도 문장이다. 김연수의 작품은 여담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으며 그 여담을 이루는 짧고 또 긴 문장들의 행간 사이에서 김연수는 춤을 춘다.
그리고 결국 김연수는 소통을 말한다. 갑작스레 헤어진 옛 애인의 사연을 알고 싶어 그녀를 만나러 가며,(달로 간 코미디언) 가까운 이들의 속내를 알기 위해 산책을 한다.(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심지어 그 자신조차 자신의 필명의 어원인 이상의 마지막 날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김연수는 말하는데, 결국 사람 사이에는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말을 하고, 서로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김연수 자신이 아마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레이먼드 카버(실제로 그는 이 작가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가 쓴 소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을 잠시 이야기 해 보자.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사랑, 아니 꼭 사랑일 필요는 없다.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추상적인 것들 말고도 사과나 열쇠고리 등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결국 사랑이나 사과가 아닌 그 주위를 맴도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일테면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예전에 먹었던 맛있는 사과나, 주변사람들에게 들은 사과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일테면 사과의 영양소라던가-를 한다. 모든 이야기를 사과가 아닌 사과 주변에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사과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반론은 조금 타당치 못하다. 어떤 것이 사과 그 자체일까. 사과의 모양? 아니 그것으론 부족하다. 단지 겉모양만 사과라고 그것을 사과라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더해 사과의 맛과 냄새, 성장 과정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과를 먹은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우리는 사랑을 말할 때 사랑 그 자체를 말할 수는 없다. 단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함으로써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생각을 언뜻 내비칠 수 있을 뿐이리라.
김연수의 글쓰기의 의의와 의미는 나는 바로 이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보다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더 많이 말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김연수는 보다 우리가 자신을, 상대방을 알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함을 말하고 싶었다고 나는 믿는다.

--------------------------------------------------------------------------------------

과제 겸 감상문. 그렇기 때문에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에 내가 쓴 감상문을 일부 차용했다. 간만에 아주 재미있는 과제였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