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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유리의 도시(뉴욕 삼부작) 만화판을 보면서 뉴욕 삼부작을 보던 때가 떠올랐다. 소설가 퀸이 점점 자기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아주 흥미로웠지만, 역시 그 작품의 백미는 종반부의 골목신이었고 그때의 감동을 못잊어 오스터의 또 다른 작품을 빌렸다. 내 기억으론 뉴욕 삼부작을 보고 재미있어서 공중곡예사와 타자기를 치켜새움을 보았었다. 그리고 본 고독의 발명이 이상하게 너무 읽기 힘들어서 한동안 읽지 않다가 전역할 때 즈음에 후임의 환상의 책을 본 후 다시금 애정이 살아났었다. 전역하고 안 그래도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결국, 좀 얇아보이는 이 책을 빌린다.
오스터의 소설은 내면의 탐구를 빼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오스터의 분신들은 외부의 자극 혹은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철저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 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이며 매력적이다. 이 작품에서의 주인공은 과거 퓰리처 상까지 받았던 칼럼과 에세이를 주로 쓰는 작가인데, 그는 노년에 삶에 대한 애정을 상당부분 잃게 된다. 이유는 살면서 겪은 여러 가지 풍파에 질린 것도 있겠지만, 결국 오랜 시절 함께 한 아내의 죽음이 결정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단 둘뿐인 딸과 손녀가 각각 이혼과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너무도 큰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서 그 또한 큰 아픔을 겪는다. 결국 딸은 아버지와 함께 살길 바란다고 말했고, 노작가는 그러기로 한다. 여러모로 생의 의지가 있던 시절에는 자신의 전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하지만 그런 일들로 인해 노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도 질려버린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그는 잠들기 위해, 혹은 밤을 보내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오스터 특유의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교차적으로 진행되는 노작가와, 그가 만든 이야기는 결국 수렴되지는 않는다. 노작가의 이야기는 어설프게 종결되며 그는 결국 남은 자신과 딸과, 손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스터의 소설은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또 자기 탐구적이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 갖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내가 이해한 것에 따르면)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보다 나은 소통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 종반부,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작은 상처를 가졌다 말할 수 없는 노작가와 딸과 손녀는 상처 입은 개처럼 서로의 상처를 핥는다. 서로의 상처를 과시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스터의 다른 소설을 조금 더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