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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평점 :
레이먼드 카버의 이 단편들은 결국 사랑이나 인생이나 하여튼 그 언저리에 있는 뭐 그런 거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노동을 하던 중 틈틈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카버의 소설들은 호흡이 길기 힘들어 대부분 단편이라고 하는데, 그 단편들은 사람의 굉장히 특별한 부분들을 조명한 것들도 있으나 대개는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을 담아낸다. 그러나 그 평범함은 인간관계의 하여튼 그 언저리에 있는 뭐 그런 것을 굉장히 날카롭게 꿰뚫고 있어 꼭 그리 담담하게 받아들여지지만은 않는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사랑, 아니 꼭 사랑일 필요는 없다.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추상적인 것들 말고도 사과나 열쇠고리 등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결국 사랑이나 사과가 아닌 그 주위를 맴도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일테면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예전에 먹었던 맛있는 사과나, 주변사람들에게 들은 사과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일테면 사과의 영양소라던가-를 한다. 모든 이야기를 사과가 아닌 사과 주변에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사과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반론은 조금 타당치 못하다. 어떤 것이 사과 그 자체일까. 사과의 모양? 아니 그것으론 부족하다. 단지 겉모양만 사과라고 그것을 사과라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더해 사과의 맛과 냄새, 성장 과정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과를 먹은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우리는 사랑을 말할 때 사랑 그 자체를 말할 수는 없다. 단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함으로써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생각을 언뜻 내비칠 수 있을 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