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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현대 소설이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산 가장 꼭대기에 앉아 있을 그 나라의 경제적 부는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고, ‘먹고, 자는’ 개인의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물론 개인을 넘어서, 국가적 사회적인 풍파-이를테면 전쟁과 군부, 민중의 혁명 등 제 3세계 국가에서 일어난 법한 일들-를 겪을 가능성들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전쟁은 과거는 물론, 현재 미국에도 있으나 제 3세계 국가와는 그 개념이나 시발점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논외로 해야 한다.) 그럼에 따라 개인과 사회는 철저히 분리되어 갔다. 한 개인의 삶이 사회/역사적인 사건에 휩싸일 일이 사라져감에 따라, 한 인간의 인생에 던져진 가장 큰 화두는 결국 ‘나 자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이언 매큐언, 코맥 매카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등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미국 현대 작가들의 문학적 대문자들이 결국 개인의 내면으로 귀결되는 것은 그렇기에 결코 우연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 작가, 폴 오스터 또한 존재한다.
그간 읽은 오스터의 책들은 너 댓 권 쯤 되었는데 뉴욕 3부작, 공중곡예사는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으나, 가장 마지막으로 읽었던 고독의 발명은 기억 안 날 정도로 별 감흥 없이 읽어 흥미가 떨어져버려 그 뒤로 오스터의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이 책은 전에 오스터를 읽지 않았었던 기분으로 읽으려 했으나 결국 읽다보니 오스터의 다른 책들은 물론 미국 현대 소설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래의 내용엔 작품의 중요 줄거리가 포함 될 수도 있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데이비드 짐머는 가족의 예측하지 못한 사고를 접한 뒤 한동안 엄청난 실의에 빠져 지냈는데, 그에겐 어떠한 삶에 대한 의욕도 남아 있지 않다. 그의 남은 생은 그저 버리지 못하고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러던 중에 헥터 만이라는 배우의 무성 코미디영화를 우연히(라고 쓰고 필연이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보게 된었는데 그 코미디를 보며 웃을 수 있었던 짐머는 생의 단 한가닥 희망을 발견하게 되고, 한동안 헥터의 영화만을 보고, 그의 종적을 찾아 헥터의 작품세계를 분석하는 책을 낸다. 그러나 헥터는 12편의 영화만을 남기고 실종된 수십 년 전의 그리 큰 유명세를 떨치지 못한 배우에 불과했으므로 그의 작업은 그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짐머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책을 쓰고 난 뒤 헥터에 대한 관심을 잃고 또 다른 삶을 이어나갈 만한 의미를 찾기 위해 다른 작업(프랑스 책의 번역)에 다시금 고독히 몰두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는 하나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 편지 속엔 헥터 만이 살아 있다는, 그리고 그가 짐머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의 글이 쓰여져 있었다.
이 이야기는 표면상의 화자인 짐머와 짐머의 서술 속에서의 등장하는 또 다른 주인공인 헥터 만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서술되는데, 그 둘의 이야기는 기묘하게 겹쳐져 진행된다. 헥터와 짐머는 모두 삶의 벼랑 끝에 서 보았다는 점에서 그러한 공통적 서술이 파생되는데 폴 오스터는 바로 이 부분에서 그 자신 특유의 한 개인의 내면을 파고드는 묘사를 한다. 다른 것은 없는 오로지 한 개인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그는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그 깊이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경이로 다가왔다. 그 경이는 결국 한 개인은 한 개인으로서(객체로서)의 끝이 아닌 모두이다(전체로서의 일부가 아닌 그 자신이 전체라는), 라는 정도의 메시지로 다가왔는데 이 모든 것은 다음의 서술 속에서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평생 가장 터무니없이 환희에 찬 순간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현실로부터 반 발짝 앞에, 나 자신의 몸이라는 제한을 넘어 몇 센티미터 밖에 있었고, 내가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그 일이 벌어지자 마치 내 피부가 투명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내 안에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세상을 보려면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되었다.
-환상의 책, 폴오스터
헥터의 절정 이후 짐머의 절정이 다다르며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로 수렴됨을 느끼는데 놀랍게도 짐머의 이야기상 두 번째 절망이 첫 번째 절망-가족을 잃은 절망과는 다른 어떤 무던한 것으로 다가온다. 이것을 나는 첫 번째 절망은-한 개인으로서의 절망이기에 그토록 처참했던 것이나, 둘째 절망은 짐머 자신이 한 개인을 개인 이상의 전체라는 것으로 깨달은 뒤 다시 찾아온 것이기에 둘째에서는 보다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했다. 짐머는 변화한 것이다.
이야기야 어쨌든 이 소설은 공중곡예사와 마찬가지로 허구적 한 인물의 일대기를 사실감있게 그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음은 물론 가독성을 높인다. 오스터 특유의 ‘구라’속에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작품의 분위기는 고조된다. 풀어쓰자면 아주 재미있다는 말이다. 미국 현대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더 좋겠고 그렇지 않은 독자들도 읽기 좋을 이 소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