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떄의 경이는 주인공의 나이때문이었다. 작가와 동년의 나이의 주인공들을 내세워 체코의 역사적 사건과 그들의 시대적 불가피성, 그리고 40대라는 나이에 걸맞는 네러티브등 여러 면에서 그의 소설은 나이라는 것에 상당한 리얼리티가 있었으며 대부분의 소설이 청춘의 순간들만 기록한 것에 비해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박완서의 이 소설집도 이미 그것을 넘어선, 노년의 소설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이 책에 수록도니 여러 단편들은 박완서 작가의 나이듦을 무시하고 생각할 수 없다. 사실, 젊은 한국 문학의 소설가들의 소설은 다 거기서 거기인 면이 없지 않은데 때로 이런 실로 의미있는 작품들이 나와 그 경직된 판에 다양성이라는 하나의 활기를 부여한다. 단순히 나이가 노년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나이에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재들을 서술해 나감으로써 상당한 리얼리티를 갖는 것은 물론 사회적 통념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속에 비춰지는 사회는 너무 현실적이니 만큼 섬뜩하기까지하다. 무엇보다 이 노작가의 필력이 경이로운 점은 젊은 작가의 작품 속에 있는 '출세를 위한 글쓰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작가는 자신의 글에 대한 어떠한 포부가 있을 게 분명하고 그것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크게 말한다면, 박완서 작가의 글은 작가의 말에도 있듯이 그저'자신의 심심함을 달래'려 썼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글은 유려하게 진행되고 필체 속에서 어떠한 종류의 '달관'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소위 말하는 거장들의 작품 속에서 느끼는 것들 말이다. 문화적 가치의 고저는 다양성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박완서라는 장르의 존재가 우리나라 문학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야겠단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