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새빨간 비밀 - 프랑스 페미니스트의 유쾌한 생리 안내서
잭 파커 지음, 조민영 옮김 / 시공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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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성평등'과 관련한 생각해볼 만한 인상깊은 글귀 하나를 보게 되었다. 네이버 웹툰 <나는 남 너는 녀> 13화 작가의 말에 쓰여있던 글이었다.



"문득 '예쁘다'는 물건에도 많이 쓰는 말인 반면, '잘생겼다'는 거의 사람에게만 쓰인다는 게 새삼 신기했네요...!



페미니즘의 근본은 결국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 인식되는 것의 반작용이다. 예쁘다는 말이 주로 물건에게 쓰이는 동시에 사람 중에는 여성에게만 주로 쓰인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인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성은 남성보다 아래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곧, 페미니즘은 이것에서 출발한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존재이다' 


생리 현상 중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것 중 하나는 '생리'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생리'는 그것을 언급하는 것 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는 그 자체로도 여성혐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생리는 여성이라면 대부분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생리'라는 단어를 말하거나 이렇게 타이핑 하는 것, 그리고 생리대를 사거나 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알 수 없는 어떤 거부감 혹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물론 생리가 터부시되는 이유에는 '여성혐오'적인 것이 아닌 '보편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다. 우선 생리는 피를 동반한다. 피는 보통 상처, 부상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피를 흘리는 행위 자체에 반감이 생기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보통 '똥을 싸거나 오줌을 싸는' (이 단어를 쓰고 보는 것에도 상당한 거부감이 있다) 일 또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며, '화장실을 다녀온다' 등으로 언급하곤 한다. 생리가 이와 흡사한 생리적 현상이기 때문에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생리 = 똥, 오줌과 비교한다는 것 그 자체가 여성혐오적이지만)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 생리를 터부시한다고만 생각하기엔 이상한 부분이 많다. 우선 남성은 생리에 대해 '거의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이 책을 보기 전 알고 있던 것으로는 "생리를 하면 피가 나온다, 한 달에 한 번쯤 한다, 임신을 위한 생리 현상이다" 정도의 개괄적인 부분밖에 알지 못했다. 왜냐면 그 이상은 말하는 것, 알려고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터부이기 때문이다. 사실 출산을 위해서라면 생리는 여성은 물론 남성도 잘 알아야 한다는 '대의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여성들은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 따르면 '여성들끼리도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불편해 한다' 고 한다. 단순히 이성에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 때문에 생리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시되는 것이라면, 동성끼리는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그것도 아닌 것이다.


결국 생리를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성혐오의 문제다. 실제로 많은 문화권에서 생리는 부정적인 인식을 동반한다. 한국 사회에서의 생리 또한 마찬가지다. "너 생리하니?" 라는 말은 곧 '예민하고, 쉽게 화를 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생리하는 여성은 집 밖에서 자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동시에 생리는 신성시되기도 한다. 생리는 곧 '아이를 낳기 위한' 과정으로 인식되어 '신성하고 존엄한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성녀와 창녀는 결국 하나다. 둘 다 대상화인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것은 여성이 '성녀도 창녀도 아닌 인간이 되는 것'이다. 생리는 결국 그냥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의 새빨간 비밀>의 저자 잭 파커는 프랑스인이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프랑스는 한국보다 훨씬 개방적이며, 보다 더 남녀가 평등한 곳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저자 또한 생리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저자가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공론화하길 원했던 이유는, 생리에 대해 잘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을 정신적, 신체적을 억압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생리는 보통 한 달에 일주일 정도 기간 동안 한다고 하는데, 따져보면 인생의 1/4이다. (생리 전, 폐경 후를 제외한다고 하면) 이렇게 생리는 편재해있는 동시에 보편적인 현상이나, 모든 여성에게 동일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생리혈의 양이 많은 사람, 적은 사람 / 생리통이 심한 사람, 약한 사람 / 생리 기간이 짧은 사람, 긴 사람 등등 다양한 경우가 많은데, 생리 자체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는 그런 자유로운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그런 상황 속에서는 대부분의 여성이 '그저 인내' 할 수밖에 없다. 그냥 남들도 이만큼 아프겠거니, 하며 참는 것이다. 잭 파커는 그러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신이 나서서 먼저 '생리'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는 공간(웹사이트)을 만들고 생리에 대한 글을 쓰고, 그 글을 모아 이렇게 책까지 출간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프랑스에서조차 생리에 대한 글을 쓰고, 웹사이트를 만들고, 책을 낸다고 하니 '너 미쳤냐'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 책은 작가의 생리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 보편적 지식 등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1장은 '생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성교육 시간에 배운 것에 우리가 배우지 않은 작가 자신의 경험까지 들려준다. 2장은 '생리를 더 잘 겪는 방법'이다. 이 책에 의하면 생리통이란 '원래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 자체가 여성이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꾸준히 '자신의 몸을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생리라는 터부를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3장과 4장은 역사, 문화적 맥락 속에 표현되는 '생리'이다. 대부분의 나라와 문화권에서의 생리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며 여성혐오적이라는 부분을 설명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극소수 문화권에서는 '생리는 생리일뿐'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사회일수록 남녀는 평등하게 대우받았다고 한다. 마지막 5장은 작가가 지금까지 했던 말들을 정리하여, "왜 생리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사실 이 부분은 간단한 정리에 불과하고,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작가가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생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무척 놀랐다. 새로운 자각이었다. 


2~3년 정도 전부터 페미니즘에 대해 급격히 관심을 가지고 이런 저런 책을 읽어왔는데, 이 책은 내가 읽었던 페미니즘 도서들 중 가장 좋았던 책 중 하나였다. '생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얼마나 잘못 되어있고, 여성혐오적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한참 부족하고 더 공부해야겠지만,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시야가 넓어진 것에 무척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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