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싱글과 시니어의 크루즈 여행기
루시 나이즐리 지음, 조고은 옮김 / 에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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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아직 내가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그냥 나이에 대한 생각 자체를 잘 안 하는 편) 30대 가되며 소화 기관에는 조금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위장), 그것도 가끔만 그럴 뿐이고 전체적으로 건강에 어려움을 겪은 적도 없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대체로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나이듦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해본 적이 없다.(할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어려서 돌아가셨고 외할머니와는 소원함)  



하지만 이 자전적 만화(그래픽 노블)의 작가이자 주인공인 루시 나이즐리는 나와 조금 다르다. 20대의 만화가 루시는 자신과 가까운 90대의 조부모(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며 이 만화를 만들게 된다. 

우선 요양원에 있던 루시의 조부모가 크루즈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나이가 많은 조부모와 함께 그들을 보살피며 여행을 떠날 사람을 찾게 되는데, 마침 시간적 여유도 있고 여행을 소재로 만화도 그려볼 생각인 루시가 선뜻 나선다.  

루시는 조부모, 특히 할아버지와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어서 선뜻 보호자가 되길 자처했다. 루시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비행기 조종사)이었다. 루시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군생활을 하며 쓴 기록물(일기)을 가족들 중에서도 자신과 특별히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나눠주었는데, 루시가 그 중 하나였다. 루시는 그 기록을 감명 깊게 읽었고, 이 여행을 통해 할아버지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90대의 조부는 생각만큼 건강하지 않았다. 육체적으로도 노쇠하였고, 정신적으로도 노쇠(치매)하였다. 할아버지는 루시의 생각처럼 전쟁에 대해 깊이 기억하지 못했다.  



이 만화는 크루즈 여행에 대한 여행기이지만, 그 내용은 크루즈에서 열린 멋진 파티나, 배가 정박하며 구경한 멋진 도시의 풍경을 담고 있는 게 아니다. 나이든 가족을 챙겨가며 여행하는 것에 대한 생생한 르포라고 할 수 있다. 나이를 드는 것, 그리고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것에 대한 깊이있고 울적한 사색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장점, 그리고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러한 경험들을 지극히 담담히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을 보는 내내 작가가 겪은 어려운 상황들이 생생히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감정이 넘쳐흐른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자신의 생각과 사고들을 담담히 자세히, 그리고 거리를 두고 기록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적당한 거리 덕분에 작가가 처한 어려운 상황들에 오히려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하는데,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매체든 자신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에 대해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작가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남들과 더욱 깊이 있게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멋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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