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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어따 써먹어? - 13살부터 99살까지, 진정한 평등을 위한 페미니즘 수업
손냐 아이스만 지음, 김선아 옮김 / 생각의날개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올해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이슈 혹은 화두는 페미니즘이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재작년 즈음부터 트위터를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내가 알지 못했고 외면했지만 너무도 끔찍한 세계를 본 느낌이었고, 지금까지 그것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페미니즘에 관심은 갖게 되었지만 나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기 때문에 분명 완벽하게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간극에 대해 언제나 조금 더 배우고 알아야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관련된 서적이나마 이것 저것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읽은 책 중 하나가 최근에 출간된 <페미니즘을 어따 써먹어>라는 책이다.
이 책의 작가 손냐 아이스만은 독일인 문화학자로서 페미니즘 관련 운동과 저술 활동을 해 온 인물이다. <페미니즘을 어따 써먹어>는 페미니즘에 관한 쉽고 기본적인 개론서 정도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페미니즘은 무엇이고, 어떤 형태로 분류되고, 세계의 각 나라에서는 어떤 형식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했는지 등 페미니즘의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게되는 보편적인 성차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말한다. 글이 어렵지 않고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아 누구나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의 제목과 디자인이었다. 내용적으로는 아주 기본적인 페미니즘의 이론들을 잘 정리해서 담고 있는 좋은 책이지만, 제목이 내용을 함축하지 못했다. 제목만 봐서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무조건적, 무논리적으로 비난받는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을 소개하고, 그것들에 대한 반론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이 책은 지극히 보편적인 페미니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 자신이 독일인인데다가 이 책은 한국 사회의 현상에 대해 다룬 것도 아닌 단순한 번역서이기 때문에 그런 깊이의 내용을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책의 내용을 담기 위해서는 제목을 다소 밋밋하더라도 <페미니즘 A to Z> 라는 식으로 정하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덧붙여 디자인적으로도 너무 촌스러웠다. 10년 전쯤 유행했을 듯한 느낌의 책표지와 내지로 디자인이 되어 있는데, 현재의 페미니즘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조금 더 거칠고 파격적인 디자인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첨언하자면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저자가 쓴 책'을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한창 태동하고 성장하는 시기이며, 치열하게 싸움을 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화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사례에만 집중한 번역서의 경우는 한국의 현 상황을 잘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론적으로 훌륭한 내용들을 담고 있겠지만 그런 책들은 결국 한국의 상황에서 한 걸음쯤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편적인 페미니즘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도 분명 의미는 있겠지만,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생생히 담고 있는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82년생 김지영>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같은 책들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