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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울푸드 중 하나는 피자다. 국민 야식인 치킨도 좋아하지만, 굳이 찾아먹지는 않는다. 치킨은 나에게 몇 달에 한 번 겨우 먹을까하는 음식이지만, 피자는 1~2주에 한 번은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치킨보다 피자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어떤 것이든 매뉴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주에는 골뱅이이며 맥주에는 치킨, 이라는 식 말이다. 탕수육을 부먹하거나 '치킨<피자'라는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그는 '뭘
모르는 사람'이 되기 일쑤다. 개인의 취향은 그런 대화 속에서 결코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맛 칼럼니스트라는 같지도 않은 직함을 달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정말 싫어한다. 어떤 종류든 평론가(칼럼니스트)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그런 일 같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이유들을 가져다 붙여서 개인의 취향을 말소하는 일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편의점 컵라면이 스테이크보다 맛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그럴싸한 이유들이라는 것은 지극히 맛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이유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이 음식에 대해 떠드는 일이 한심해 보인다.
<냉면의 품격>은 저자가 직접 탐방한 서울지역에 위치한 31개의 평양냉면집의 맛에 대해 평하고 있는 책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 책은 서문과 맺는말 이외의 부분은 읽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생각한다. 서문과 맺는말에는 작가가 나름대로 정의한 평양냉면과,
평양냉면을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 나와있다.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좋은 설명이다. 그래서 서문까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31개의 평양냉면들에 대해 평가하는 본문은 읽을 가치가 없었다. 우선 문장의
문제가 가장 크다. 읽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자아도취에 빠진 문장탓에 한 줄, 한 줄을 읽는 것이 고역이었다. 언어는 물론 사적인 영역이
존재한다. 일테면 내가 말하는 '냉면'과 작가가 말하는 '냉면'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각자의 경험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도
분명히 어느 정도의 공통점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어를 통해 소통한다. 이 작가의 글이 읽기 힘들었던 이유는 대부분의 단어들을 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본인 스스로만 알고 공감할 수 있는 표현들을 읽는 것은 재미도 흥미도 없었다. 심지어 그것이 어떤 것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작가가 냉면들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 게 이 책을 집어든 독자의 마음이다.
하지만 극히 사적인 언어의 사용으로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
다음으로는 평가의 객관성의 문제다. 당연히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음식은 특히 주관적이다. 같은
음식을 먹고도 맛있다/맛없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책이라는 것으로 출판하게 되었다면 나름의 객관성(납득이
가는)을 담보해야 하는 것도 맞다. 서문에서 나름대로 평양 냉면의 판단 기준 다섯 가지를 정하고, 그 기준에 맞춰 평가한다고 했을 때는 신뢰가
갔다. 하지만 막상 본문에서 냉면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아무런 객관성도 없는 감정만 흘러넘쳤다.
특히 하나의 냉면을 평가할 때 총 5개의 기준으로 나누고, 그 기준의 만점을 5점으로 두었는데
31개의 냉면 중 어느 냉면도 단 한 항목에서 5점을 받은 게 없다. (31*5 = 155) 155개의 평가기준들 중 단 하나도 5점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대체 왜 만점을 5점으로 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더 맛있는 냉면이 나타날 수 있으니까? 그건 납득이 가는 답변이 아니다. 이
책에 있는 31개의 냉면들만을 비교 대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타날지 모르는 어떤 것'은 적어도 이 책 안에서는 고려하면 안
됐다.
특히나 결국 내용을 요약하자면 불평 불만 투성이다. 이런 건 이래서 별로고 저런 건 저래서
별로다. 같이 밥 먹기 싫은 타입인 건 확실하다. (이 책에 소개된 곳 중 2곳을 가 봤지만, 이곳에 적힌 평과 개인적인 평도 전혀
달랐다.)
물론 이 책을 '권위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의 기록'의 시각으로 본다면 굳이 욕할 것도
없어지긴 한다. 어떤 음식이 맛있고, 맛없고를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책으로 낼 때는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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