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아는 거? 내가 말할 수 있는 거요? 경험으로? 관찰을 통해? 기억에 의해? 직관으로? 인생을 통해 내가 배운 거요? 책이나 항간에 떠도는 사적인 소문?
남자는 우리보다 훨씬 더 크게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 문을 쾅 소리나게 닫는다는 것. 벽장을 닫지 않는다는 것. 냄비, 접시, 굴 먹는 포크가 어디에 정돈되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 중요한 날짜를 잊어버린다는 것. 그다지 결점이 많지 않다는 것. 탄생을 느끼지 못하고, 죽도록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잊는다는 것. 어둠 속에서 혼란에 빠진다는 것. 멀리 있는 건 잘 보지만 냉장고 안의 버터는 찾지 못한다는 것. 우정에 충실하다는 것. 다리를 벌리고 앉는다는 것. 하루에 평균 칠천 번 제스처를 사용한다는 것(여자는 이만 번). 사랑과 섹스를 분리한다는 것. 치약 뚜껑을 절대로 닫지 않는다는 것. 비가 와도 우산을 쓰기 싫어한다는 것. 덕을 갈망할 수는 있어도 진리를 갈망하지는 않는다는 것. 수학적인 추리에 더 재능이 있다는 것. 공간 속에서 방향을 잘 분간한다는 것. 잘 울지 않는다는 것. 거절을 토대로 스스로를 구성한다는 것. 남자에게 감수성은 가장 폐쇄된 부분이라는 것. 불안정하다는 것. 자기 감정을 보여주기를 몹시 싫어한다는 것. 다르게 행동할 수 있더라도 그것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기쁨을 주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안 하고는 못 배긴다는 것. 발기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 자신의 여성적인 부분을 전보다 더 잘 받아들인다는 것. 쇼핑할 목록의 반을 잊어버린다는 것(목록을 가져가지 않았으니까). 신문을 다 읽고 나면 바닥에 그대로 둔다는 것. "내가 그녀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날 사랑하려고 할까?" 하고 생각한다는 것. 입어보지도 않고 옷을 산다는 것. 미용제품에 더이상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 먼지를 닦기 위해 걸레질을 하기보다는 기꺼이 청소기를 돌린다는 것.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보다는 아기 산책시키는 걸 더 좋아한다는 것. 잊지 않고 어머니에게 전화한다는 것. 모두 노예라는 것.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것. 세상이 그들의 마음을 냉혹하게 만든다는 것. 그들이 서로 속지 않는다면 사회에서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 변화하는 중이라는 것. 조처를 따르는 것보다는 조처를 취하는 것에 더 능숙하다는 것. 은혜와 모욕에 대한 기억을 잊기 일쑤라는 것. 질긴 스타킹을 좋아한다는 것. 갈색 머리 여자를 더 좋아한다는 것. 자기 의무에 속하는 일에 대해 무기력하게 행동한다는 것. 자살에 실패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 조용한 것을 동경한다는 것. 그게 남자라는 것. 그들은 무정함, 배은망덕함, 부당함, 자존심, 그들 자신에 대한 사랑, 다른 사람에 대한 망각을 보여준다는 것.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게 그들의 본성이라는 것.
- 카미유 로랑스, <그 품 안에>, p. 116~118
몇몇 문장에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옆지기의 모습에 쿡쿡 웃음이 난다.
모든 남자가 다 이렇진 않겠지. 그러나 대체로 맞다.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문화 차이가 조금 느껴지지만 프랑스 남자들이나 한국 남자들이나 거기서 거기다. )
사람이란, 어른이 된 사람이란, 그 사람의 성격은 대부분 그의 성장환경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그가 알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짧은 시간에 바뀔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어떤 나쁜 습관과 행동을 갖고 있더라도 일단은 이해를 해 주어야 한다, 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 그러나 이해는 하되 용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 사람이 저언혀 바뀔 생각을 안 한다면, 아니, 그저 저만이 옳고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며, 함께 사는 사람은 다 시종이며, 함부로 대하는 것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는 그런 남자라면?
세상 살이에서 주워 듣는 이야기 속 남자, 바로 내 옆에 있는 남자, 행동만이 우연히 눈에 띄는 모르는 남자, 그들은 참 어렵다.
이응준의 소설 속에,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말이 나오지. "누군가를 안다는 건 무서운(두려운?)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