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 행복도 없고 미래도 없고 나는 내장으로 생각한다. 


세상의 잣대로 보자면 나는 대체로 불행했다. 그러나 상대적 시각으로 보자면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겠다. 문제는 내가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들이 적었다는 것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어떤 좋은 순간에 그게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지르거나 환하게 크게 웃거나 춤을 추거나 빙빙 돌거나 방방 뛰어다니거나 건배를 하거나 아무튼지간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순간의 행복에 젖어드는 기쁨을 누리는 그런 경험이 거의 없다고 기억한다. 뇌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실제로 그런 순간들이 드물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그런 감정을 온전히 누리기에 너무 쪼글쪼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또는, 어떤 것도 내가 생각하는('바라는') '행복'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을 수도 있고, 이건 '좋은 느낌'이라고 내가 바랐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거기에 결핍된, 모자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내 생각 내 모습 혹은 다른 사람의 단점과 상황의 부정적 측면을 캐어내 그 순간을 도려내어 칼질 했을 수도 있다. 나는 도대체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런 따위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이건 행복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자세는 어디에서 왔을까? 불행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건 아니고? 그건 행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어떻게 다르지? 


새벽에 깬다. 깼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잠은 달아난다. 달아나는 잠을 애써 붙들려고 하지 않는다. 속이 쓰리다. 벌써 몇 달은 된 거 같다. 깨기 전에 꾸던 꿈에는 여전히 화장실이 나오고 전화기가 나오고 학교 시험지가 나온다. 이제 좀 그만 꿀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난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겉으로 멀쩡해 보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그러는데 의식이 닿지 않는 거기에서는 항상 두렵고 불안한지, 몇 년째 비슷한 꿈을 꾼다. 소변을 볼 수 없는 화장실. 더럽거나 막혔거나 문이 없거나 한 화장실. 얼마 전에는 꿈에서 '무사히' 깨끗한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았다. 아 이제 좀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어제 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지 못했다. 전화번호를 누를 수 없는 전화기,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 번호와 이름, 아예 아무것도 눌러지지 않는 전화기, 누르면 누를수록 먹통이 되어가는 전화기. 이 또한 얼마 전에 통화에 성공하는 듯한 꿈을 꾸었었지만 도돌이표처럼 자꾸 돌아간다. 어제도 얼른 연락해야 하는 사람에게 끝내 전화를 걸지 못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시험 보는 꿈. 항상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고 나는 겨우 문제 한두 개를 풀었을 뿐인데 이내 시험지를 걷는다.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나는 시험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의 시험이거나 공부를 하지 않았거나 시간이 모자라거나... 어제도... 그랬다... 


쓰린 배에 뜨거운 물주머니를 얹고 흐릿한 어둠 속에서 생각한다. 내가 알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어떤 것이 배 안에 있구나.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나에게 통증으로 알려주는구나. 내 의식은 희미하게 뿌옇게 그냥 요즘 좀 우울한 거 같아, 바닥에 가라앉지 말아야지, 한다. 사실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이럴 땐 인간의 언어가 유한하다. 우리는 엄청나게 엄청난 것들을 몇 안 되는 언어로만 겨우 상기시킬 수 있을 뿐이다. 때로는 원망스럽고 때로는 기특한 나의 내장, 그 기특함 뒤에는 내 분노를 내 우울을 내 좌절을 내 불안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는 자각이 따른다. 때로는 불쌍하기까지 한 나의 내장! 


<행복의 약속>을 읽으며 내 이럴 줄 알았지, 하는 여러 순간들을 맞았다. 어떤 문장에서 떠오르는 장면 하나, 어떤 문장에서 보이는 내 모습, 어떤 문장에서 생각나는 사람, 어떤 문장에서 이건 도저히 말로 하지 못할 것같아 싶은 생각... 한없이 떠들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그저 입 다물고 지나갈 것 같기도 한, 기분. 그래서 눈에 걸리는 문장들을 천천히, 멈추어 바라본다. 나는 저 문장들 어디쯤에 있을까. 왜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올까. 아직 중반쯤 읽고 있지만 어쩌면 나는 책 속 문장들을 이미 경험했을지도, 무의식 속에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확인하거나 들여다 볼 수 없는 그 곳,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의, 어떤 뚜렷한 의식도 들어서기 전의, 모호하고 경계도 없는 그 곳, 잠에서 깨어나 속쓰림을 알아채기 전에도 내 위가 쓰림을 갖고 있었듯이, 그 언저리 어딘가. 


혼자 살고 있는 아빠와 아침에 통화를 했다. 유년 시절 내 불행의 최대 원인이었던 아빠. 생각할 때마다 항상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어떻게든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내 마음은 혼란스럽다. 아니 가증스럽다. 아니 모르겠다. 아빠라는 사람 자체가 나에게 불행이었던 것은 아니다.(맞나?) 그건 그 사람이 가져오는 무언가였다. 밤의 공포였다. 지금은 어떤가. 이빨 빠진 호랑이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몸집이 더 작아지고 있는 할아버지인 그는, 그러나 여전히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실체 없는 불안. 아니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불안. 그만 돌아서고 싶어지는 마음. 그래, 미래가 문제구나. 걱정과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건 모두 미래라는 단어 때문이다. 그건 과거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의 걱정은 과거로부터 온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이런 성격인가 싶기도. 하지만 과거에서 벗어난다는 건 무엇이며 그렇게 벗어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쨌거나 미래는 각자에게 어떤 모습으로든 닥치겠지만(항상, 영원히),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무엇이고,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 모든 걱정과 불안은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이제는 내 내장도 좀 알아줬으면.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발견했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아니,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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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4-2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님의 몸은 알고 있습니다!!!

“뇌에서 만들어진 세로토닌은 전체의 5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95퍼센트가 장의 내분비 세포인 장내 크롬친화성 세포에서 만들어진다. 장이 세로토닌 대부분을 생산하고 또 사용한다는 사실은 장과 뇌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연결되며 그 연결이 상당히 대등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장은 뇌와 척수가 관여하는 중추 신경계와는 별도의 신경계로 장운동을 조절한다. 식도부터 장에 이르는 9미터의 길에는 적게는 2억 개에서 많게는 5억 개나 되는 신경 세포가 분포해 있다. 척수에 퍼져 있는 신경 세포에 버금가는 양이다. 무수히 많은 신경 세포를 가진 장은 우리의 의식과 무관하게 필요한 음식은 소화하고, 위험한 것은 구토나 설사를 통해 밖으로 내보낸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신경생리학자 마이클 거숀은 장이 가진 신경 세포의 규모와 장 신경계의 독자적 능력을 강조하려고 장을 ‘제2의 뇌’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임소연”

똑똑한 난티나무 장 ㅋㅋㅋ

난티나무 2023-04-25 06:15   좋아요 1 | URL
아아 쟝님 저 북플에서 밀린 좋아요 누르다가 그만 잠이 와버려요… 자고 내일 다시 올게요!
오 내 장 똑똑한!!! ㅎㅎ 일전에 어디선가 들은 기억 있는데 일케 적어주셔서 감사!! 장이 부릅니다, 난티나무야 자야지~~~ ㅠㅠ 졸려😵‍💫

난티나무 2023-04-25 15:13   좋아요 1 | URL
아니 진짜 9미터에 2억~5억 개라니 @@ 너무 대단한 거 아니에요????@@ 오늘부터 배를 더 많이 쓰담쓰담 해야 겠어요. 고생이 많다!!!! ㅎㅎㅎ 며칠 전에 스트레스 뽱 받아갖구 밥만 먹으면 배가 아프고 설사하고 그랬는데 ㅠㅠ 내 장은 느무 똑똑하다 진짜….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4-26 00:24   좋아요 0 | URL
유산균 먹고 햇빛보고 산책하면 세로토닌 뿜뿜!! 나 말고 내 장을 행복하게 만들면 행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ㅋㅋㅋ 장한테 먼저 잘해주는 전략을 취해보아요~!

공쟝쟝 2023-04-2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과민성대장증후군을 20대 내내 앓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닌데….
저는 사회가 제시하는 행복의 기준이 제가 달성하기엔 너무 높은 것 같아서… 이미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주눅들었던 시간들이 좀 아까운데… 이 책 보고는 아 기준에 맞는 사람들도 미래로 행복을 계속 유예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러면서 ㅋㅋㅋ 좀 꼬수왔다 ㅋㅋ (꼬였죠?)
그래도 나 자신에 대한 행복의 기준은 낮은 저 스스로가 좀 좋아졌어요… 음… 혼자 살면서 저는 깔깔 웃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언제 웃었는지 기억도 안나요.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특히 동생들이랑 있을때 많이 웃어요. 그런데 저는 웃지 않아도 혼자 있을 때 더 행복해요. 웃지 않아도 행복해요. 난티님 😌

난티나무 2023-04-25 06:15   좋아요 0 | URL
(행복하게 잠든다…. 내일 봐요~~^^)

난티나무 2023-04-25 15:10   좋아요 1 | URL
(쟝님 안녕!)
음 저는 어릴 때부터 상당히 냉소적 시각을 가지고 아 진짜 이런 🐕떡같은 세상 무엇?! 이런 마인드로 살지 않았나 싶고요, 그 세상이란 내 몸이 거하는 세상, 미시적 세상이었고… 20대에는 저도 자주 위장에 탈이 나는 생활을 ㅎㅎㅎ 그런데 지금도 툭하면 위장 탈이 나니 ㅠㅠ 발전(?)이 없는 건지 내 삶 계속 그런 건지…@@ (아이고 속쓰려…)
그래서 뭐, 행복? 흥! 너희가 말하는 행복이라는 거 다 그짓말이야, 그런 따위는 없어! 이런 마인드였다고 할까.. 뭐 지금도 그렇고요. 그러면서도 그 일반적인 잣대에 비추어 거기 미치지 못하는 내… 상황보다는 내 상태를 탓하게 되는 거 같아요. 쟤는 하는데 난 안(못) 하네? 쟤가 해서 이룬 건 안 부러운데 쟤가 한다는 그 실행력은 나한테 부족해서 짱나네? ㅋㅋㅋ 하는 건 적으면서 기대치만 높아갖고 ㅠㅠ
행복은 지나가는 거다! 웃지 않아도 행복하다! (알쥬알쥬) 작년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순간들, 적어본 적 있어요. 늠 많더라고요.ㅎㅎ 주로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감정들이었고요. 문득 이런 생각도 들어요. 자잘하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감정들에는 이입을 잘 하는데 크고 눈에 잘 보이는 감정들에는 이입을 잘 못한다… 대응도 잘 못한다… 이건 경험치에서 오는 차이가 아닐까, 싶은. 몸에 익어버린 습관처럼 말이죠.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처진 입꼬리를 올려봅니다.
쟝님 댓글에 행복한 난티나무!!! 🥰

공쟝쟝 2023-04-26 00:30   좋아요 0 | URL
행복역치가 낮아서 아주 작은 것으로도 아주 깊게 행복할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