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문장들에서 내 경험과 비슷하게 일치하는 부분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다. 단순히 기분이 좋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딱히 내 경험과 비슷하지 않아도 한눈에 공감하거나 이해되는 문장들도 있다. 어쩌면 인간의 생각과 경험이란, 같은 구조를 가진 것이 아닐까. 나도 그래, 나도 그렇다고, 손뼉을 치고 눈물을 흘리고 난 후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우울. 그러나 그 문장들은 또한 언제까지나 우울의 웅덩이에 머무르지 않도록 나를 꺼내주기도 하니까. 


좀 길지만 옮겨놓는 밑줄. 



-------------------------

"...... 페미니즘으로 분석을 해냈을 때 내가 느낀 기쁨이란! 나는 그 기쁨과 함께 깨어나고, 온종일 함께 춤을 추고, 미소를 지으며 함께 잠들었다. 나는 상처받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날그날의 운에 따라 날아오던 돌팔매와 화살들은 내게 흠집 하나 내지 못하게 되었다. 페미니즘이 내게 알려준 것을 계속 지킬 수만 있다면 나는 머지않아 나 자신이 될 것이었다.
나 자신이 되면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자 삶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내게는 통찰이 있었고, 함께 할 여자들이 있었다. 내 삶의 경험 한복판에 나는 서 있었고, 변하고 또 변하고 있었다. 어디를 보든 방을 가득 메운 여자들이 있었고, 그들 역시 변하고 또 변하는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설명을 들으며 활기를 얻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이고, 같은 언어로 같은 분석을 하며, 뉴욕의 식당과 강당 그리고 아파트에서 만나고 또 만나 자신의 통찰을 자세히 설명하고 분석한 것을 전하는 기쁨을 느낄 때, 그때야말로 즐거움으로 충만한 순간이다. 혁명 정치의 즐거움이 그때 우리의 것이었다. 1970년대 초반에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 그 여명 속에 살아 있는 것은 더없는 행복이었다. 세상의 어떤 ‘사랑해‘라는 말도 그 행복에는 닿을 수 없었다. 함께가 아니라면 우리가 존재할 다른 곳은 없었다. 그때 우리 모두는 페미니즘의 느슨한 포옹 속에 살아갔다. 나는 내 남은 삶을 그 속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54~55) 


" 그랬는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1980년 즈음 서서히 페미니스트 연대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노력만큼 세상이 충분히 변하지 않자, 예전에 모든 여성들을 찢어놓았던 것이 우리 안에서 다시 효력을 발휘했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들려줄 말이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았다. 각자의 개성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대화는 지루해졌으며, 개념들은 똑같은 말의 반복이 되어갔다. 회의는 귀찮은 일이 되었고 모임 소식에도 예전만큼 마음이 설레지 않았다. " (57)




" 페미니스트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떠올랐던 그 통찰의 빛이 내게 되돌아왔다. 몇 년 전, 페미니즘은 내게 일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이제 그것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시선으로 그 가치를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다. 두 번째 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식이 깊어지는 각성이었다. 내 정치적 견해들이 준비해왔던 것을 혼자서 마주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지력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200년 동안 갖고 있던 통찰이 내게 찾아왔다. 내 삶을 지배하는 힘은 오직 나 자신의 생각을 꾸준히 다스리는 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해내려면 평생이 걸리는 일이었다.
 나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책상 앞에 앉아 생각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 생각을 통제하고, 확장하고, 내게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법을. 그러나 실패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또 실패했다. 

 사흘 뒤 나는 다시 책상으로 기어갔고, 패배한 채 책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이 되자 내 머릿속의 안개가 걷혔다. 다루기 힘들게 느껴졌으나 실은 간단했던 글쓰기에 대한 문제 하나를 풀자 가슴에 얹혀 있던 돌 하나가 치워지는 것 같았다. 숨쉬기가 수월해졌다. 공기에서는 달콤한, 커피에서는 강렬한, 하루에서는 설레는 향기가 났다.

 종교적 열정으로 만들어진 수사법은 내 안에서 사라지고 매일의 노력이 가져다주는 안심되는 고통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일이 전부‘라고 주문처럼 계속 되풀이할 수는 없었다. 분명 일이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일하려고 매일 자리에 앉아있는 일은 내게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바라보자, 체호프의 문장이 나를 마주 보았다. ‘남들은 나를 노예로 만들었지만 나는 내게서 그 노예근성을 한 방울 또 한 방울 짜내야만 한다. 나는 1970년대 언젠가 그 문장을 책상 앞에 압정으로 고정해두었지만, 내 두 눈은 10년 넘게 그 문장을 따분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제야 정말로 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를 구원해주는 것은 ‘일‘이 아니었다. 매일의 고생스러운 노력이었다.
 날마다 노력하는 일은 내게 일종의 연결이 되었다. 연결되는 감각이란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강해진 나는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독립적인 사람이 되자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생각을 할 때 나는 덜 외로워졌다. 내게는 나 자신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 자신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새로워진 지혜의 힘을 느꼈다. 그리스인들부터 체호프를 거쳐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까지,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본성을 탐구하는 데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모든 사람은 오직 일하는 자기 자신의 생각만이 자아의 고독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똑바로 들여다보기엔 힘겨운, 너무도 힘겨운 진실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과 공동체를 갈망한다. 그 두 가지 모두 삶에 있기를 바라기에는 썩 괜찮은 것들이지만 갈망할 만한 것들은 아니다.
  갈망은 살인자와 같다. 갈망은 우리를 감상적으로 만든다. 감상적이 되면 우리는 낭만만을 추구하게 된다. 내게 있어 페미니즘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로맨스가 아니라 힘겨운 진실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힘겨운 진실을 추구한다.
  내가 방금 적어놓은 모든 것을 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몇 번이고 잊어왔다. 불안과 권태와 우울이 나를 압도하면, 그것들은 나를 지워버리고 나는 ‘잊는다.‘ 영혼의 노예 상태란 일종의 기억 상실이어서, 우리가 아는 것을 붙잡지 못하게 만든다. 아는 것을 붙잡지 못하면 우리는 경험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변화가  없으면 우리 자신 안에 있던 연결은 끊어져버린다. 그건 견딜  수 없는 일이기에, 삶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끝없이 ‘기억하는‘ 일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끊임없는 투쟁 속에 있다. ...... " (58~6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3-02-26 2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이 느꼈던 감정을 저도 느낄듯하네요. 저는 페미니즘으로 인해 저런 감정을 처음 느낀건 아니지만 오래전에 느꼈던 저런 감정이 아직도 제 삶과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지금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도 어쩌면 그 연장이구요. 이러나 저러나 비비언 고닉의 책은 꼭 읽어야겠습니다. ^^ 지금까지 딱 3권 나와서 전작하기 좋은 작가! 더 나오기 전에 빨리 빨리 읽어야겠어요. ㅎㅎ

난티나무 2023-02-27 02:33   좋아요 0 | URL
네 글에서는 페미니즘 모먼트가 나오고 있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삶의 여러 분야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페미니즘은 삶 자체이기도 하고…^^
고닉 책 저는 두번째예요.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