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 - 1세대 페미니스트 안이희옥 연작소설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역사가 된 일상의 기록
안이희옥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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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다. 책을 받은 것이 그러니까... 기억이 안 날 정도니 오래 미루어두었다. 비가 쏟아지는 토요일 밤, 책상 위의 어려운 책들에 손이 가지 않아서, 좀은 소설소설한 거 읽고 싶어서, 책장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숙제(?)로 각인된 책을 꺼내들었는데 호로록 다 읽고 만 것. 미뤄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러나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한 번 읽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나, 요즘 생각한다. 그러니 첫인상 정도를 적어둔다는 마음으로...^^;; 


지난번 읽은 <버지니아 울프가 결혼하지 않았다면>과 방식이 비슷하다고 할까, 문장들이 비슷하다고 할까, 다른 이야기이지만 겹치고 그러면서도 좀더 포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전적 이야기라서 그럴 수도 있고 한국 현대사의 중요사건들을 짚고 있어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많은 사건들을 이야기에 담다 보니 언급하고 지나가는 느낌도 든다. 이것도 넣어야지, 저것도 뺄 수 없잖아. 그럴 수밖에. 하나하나가 한 편의 소설이 될 수 있는 엄청난 이야기를 갖고 있으니. 같은 이유로 좀은 헉헉거리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게도 잘 몰라서 그렇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나니 부끄러움이 커진다.


"아녜스가 80년대 세대라면 요세피나는 90년대 세대로서 시대적 억압이 덜한 성장기를 보낸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거대 담론에는 별 관심이 없고 소소한 일상사가 주된 화제였다." (185)


거대 담론과 소소한 일상사는 별개의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러나 90년대에 20대였던 내 모습이 정확히 저기 저 말에 일치하는 듯해서. 앎과 모름의 차이. 그것에 대해서도.




"... 최초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나는 최초의 기억이 이 막막함이야. 어둡고 축축한 공간에 나 혼자 서 있었어. 밤이었는지 새벽이었는지는 모르겠어. 아마 적산 가옥 마루였던 거 같아. 나는 자다가 깨어 방에서 나와 있었지. 다락의 다다미방에서 아버지가 피리 종류를 불고 있었어. 가냘프고 애틋한 관악기 소리가 슬퍼서 나는 흐느껴 울었어. 다락으로 통하는 계단은 어린 내가 기어오르기에는 가팔랐어. 막막했지. 가 닿을 수 없는 아버지의 애절한 슬픔. 달빛이 희뿌연 가운데 안개가 낀 듯했어. 나는 울었어, 소리 없이...... 그때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왔고 놀라서 나를 끌어안았어. 따듯한 어머니 살이 차가워진 내 몸을 폭 감쌌지. 나는 울음을 그쳤어. 거기까지야, 최초의 기억은." (100)


공감하기는 어려운 구절이지만 최초의 기억,이라는 말에 내 최초의 기억은 뭐지, 한참을 생각했다. 딱히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 머릿속에 영화 장면이 아니라 사진으로 남아있는 기억들. 최초, 기원, 이런 것이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 「저는 한국을 떠난 적이 없는 토종 페미니스트예요. 유학 다녀오신 교수님들과는 경험이 조금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

「한국 여성으로서 토착적 한이 있지요.」

「어릴 때부터 생선을 먹으면 여자들은 꼬리와 머리 부분을 먹었고, 남자들은 몸통을 먹었어요. 도시락에 달걀도 남자만 싸줬어요. 차별이 심했어요. 그런 얘기를 쓰고 싶어요.」" (214)


이 부분이 왜 마음에 걸리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지는 정확히 알겠다. 다만 토종,이라는 말은 아닌 사람과 구별짓는 단어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무엇이 토종인가 의문이 생긴다. 말하고자 하는 토착적 한이 저런 것이라면 모르는 여성이 있겠나 싶다. 그러니까 남성과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저런 대화가 만들어진 것이겠지.


간간이 응? 싶은 문장들이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이 옳다고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니 섣불리 뭐라 할 수는 없겠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을 때가 오면 그때는 얼마나 다르게 다가올지. 이 어정쩡하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조금 가실 수 있을지.




"세 여자는 지금 별 탈 없이 사는 것에 감사하자고, 하루하루 건강 유지에 애쓰자고 서로 덕담을 나누었다. 자식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 세대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해결하게 하자. 전전 세대, 전쟁 세대, 4·19 세대, 유신 세대, 전대협 세대, 한총련 세대, ·X 세대, · N 세대, MZ 세대 모두 저마다의 과제가 있으니까. 다만 많이 미숙했던 여성 운동은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도 여성 운동의 하나다. 서로 다독이며 살자고, 가능하면 송이도 자주 찾아보자고 다짐했다." (267)


위로가 되는 문장.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도 여성 운동의 하나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롤모델도 더 많이 필요하고 스스로 그렇게 될 필요도 있다. 그러니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러는 것만으로도 '여성 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작아지지 마! 사라지지 말자고! 주문을 외며, 여전히 비가 내리는 일요일, 우산을 받쳐들고 고인 물 위에 발걸음을 찍으러 나간다. 




(겉표지와 속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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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7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장 어려운 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드는거 아닐까요? 대부분이 골병들고 억척스럽게 나이가 들죠. 사는게 너무 힘들잖아요.

난티나무 2022-06-27 19:5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말이에요....ㅠㅠ
그래서 그렇게 나이드는 게 여성운동이라는 말이 더 다가오는 것같기도 하고 현실이 힘들고 어려우니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도 동시에 여전하고요. 역시 계급... 문제도 걸리고 특권의식이라는 말도 생각나는 지점이에요.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