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어머니와 딸

밑줄.

나를 울리고 또 위로하는 구절들…

어머니가 어떤 다른 생각을 하셨든간에(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부분적으로는 암묵적으로 내 편임을 알고 있다), 어머니는 또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 당시에 경험하셨다고 후에 내게 말씀하셨던 ‘무감각한 상태‘ 밑에 깔려 있는, 모든 어머니들이 느끼는 죄의식을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해 쓰기가 어렵다. 어머니의 딸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묘사하려고 노력하지만, 내 자신이 분열되고, 어머니의 피부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처럼 느낀다. 나의 일부는 어머니와 너무나 닮았다. 아직도 어머니에 대해서 깊이 쌓인 분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이 흔히 저지를 만한 잘못 때문에 벽장에 갇힌 4살짜리 아이의 분노(아버지가 명령한 것이지만 행동으로 옮긴 사람은 어머니였다), 안면의 틱 증세가 생길 때까지 너무 오래 피아노 연습을 해야 했던 6살짜리 아이의 분노(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우겨서 했지만, 레슨을 시킨 사람은 어머니였다). 내 자신이 어머니로서, 나는 아이의 얼굴에 나타나는 틱 증세가무엇인지 알고 있다 - 그것은 자신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예리한 죄의식과 고통의 칼날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임신하고 어머니를 절실하게 원하고, 어머니가 적에게 가버렸다고 느끼는 딸의 분노를 느낀다.
또한 나는 어머니 안에도 분노가 깊게 쌓여 있음을 안다. 모든 어머니들은 자녀에 대해 걷잡을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분노를 갖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어머니가 되었을 당시의 조건, 불가능한 기대, 임신한 여성에 대한 아버지의 혐오, 아버지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아버지의 혐오감을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 대한 나의 분노는 비애로 바뀌고 그녀를 위한 분노로 바뀌며, 다시 어머니에 대한 분노, 오래되고 정화되지 않은아이의 분노로 바뀐다.
현재 나의 어머니는 항상 어머니가 원하던 대로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고 계신다. 어머니는 사랑받고 존경받는 할머니이며, 새로운 영역을 탐구 - P252

하며 산다. 어머니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살고 있다. 나는 끊임없는 치유를 위해 어머니와 대화를 갖는다는 환상, 치유 받지 못한 아이의 환상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모든 상처를 내보이고 어머니와 딸로서 함께 겪어 온 고통을 넘어서 마침내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최소한 나는 어머니의 존재가 현재 얼마나 중요한지, 그동안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인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20세기의 새로운 여성운동의 초기에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당한 억압을 분석하고, 왜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가 아마존이 되도록 교육시키지 않았는지, 왜 우리의 발을 묶어 놓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는지를 ‘합리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분석은 정확했고 철저했다. 그렇지만 좁은 의미의 모든 정치학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분석은, 의식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의 내부에는 여성의 보살핌과 부드러움, 그리고 승인, 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행사되는 여성의 힘, 여성의 향기, 감촉, 목소리, 우리가 두려움과 고통을 느낄 때, 우리를 감싸는 강인한 팔을 여전히 갈망하고 있는 어린 소녀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들 누구라도 크리스타벨 팬크허스트의 말대로, "여성 참정권 운동의 대가를 미리 지불하기로 마음먹은 어머니, 여성을 위하여 대가를 지불할 자세가 되어 있는 어머니"를 갈망했을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으로서 우리 자신의 힘을 느끼려 노력할 때,
우리는 어머니를 필요로 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린 소녀의 외침을 수치스러워 할 필요도 없고 퇴보라고 느낄 필요도 없다. 그 욕구야말로 강한 어머니와 강한 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창조하고자 하는 우리욕구의 시작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중적인 시각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어머니에 의해 키워졌다. 우리는 단지, 어머니가 계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편에 있었다는 것만을 알고 있다. 그러나 - P253

만일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에, 혹은 우리를 입양시키기로 작정함으로써, 아니면 생활고 때문에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미쳐서 우리를 버렸다면, 제도화된 모성하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위한 여건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생계 때문에 어쩔 수없이 무관심하고 애정이 없는 낯선 사람에게 우리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면, 제도가 요구하는 대로 ‘훌륭한 어머니‘가 되도록 노력하고, 그 때문에 우리의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청교도적인 어머니가 되었다면, 혹은 아이 없이 살 필요가 있어서 그냥 우리를 떠났다면, 우리가 이성적으로 아무리 용서하고 어머니 개인의 사랑과 힘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 안에있는 아니, 남성이 통제하는 세상에서 자란 여자아이는 여전히 순간순간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러한 역설과 모순에 맞서 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 잃어버린 어린 소녀의 탐구열을 우리 내부에서 끝까지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느낌을 바꾸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운동을 해나가는 여성들 가운데서 반복적으로 분출되는 맹목적인 분노와 고통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성 간의 자매 관계 이전에, 어머니와 딸이라는-과도적이고 단편적이지만 아마도 근본적이고 중요한-지식이 있었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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