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 구르는 사랑아
주린 이의 입에서 굴러 나와
사람 사람의 귀를 흔들었다
'사랑'이란 거짓말아.
처녀의 가슴에서 피를 뽑는 아귀야
눈먼 이의 손길에서 부서져
착한 여인들의 한을 지었다.
'사랑'이란 거짓말아.
내가 미덥지 않은 미덥지 않은 너를
어떤 날은 만나지라고 기도하고
어떤 날은 만나지지 말라고 염불한다
속이고 또 속이는 단순한 거짓말아.
주린 이의 입에서 굴러서
눈먼 이의 손길에 부서지는 것아
내 마음에서 사라져라
오오 '사랑'이란 거짓말아!
저주
김명순
(1896~1951)
평양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가난하게 숨진 김명순은 소설가이자 시인, 언론인, 변역가, 영화배우다.
식민 통치하의 암울했던 사회 환경과 더불어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활동하였다. 기생의 딸이라는 낙인, 성폭력 피해 그리고 문학으로 가장된 동료 문인들의 공격이 내내 잇따랐다.
당시 문란하고 독한 여자로 그려지기도 했던 김명순은 사실,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서 5개 국어를 구사하며 서양 문학을 조국에 선보인 번역가였고, 동시에 '자유연애'를 역설하며 여성해방을 꿈꾼 신여성이자 선각자였다.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