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산 기관이 질병의 원천이었으므로 그 기관들은 질병 치료의 명백한 대상이었다. 요통, 과민성, 소화불량 등 어떤 증상이든지 간에 성 기관에 의료적 공격을 야기할 수 있었다. 역사가 앤 더글러스 우드Ann Douglas Wood는 19세기중반 거의 모든 여성 통증에 사용됐던 "국부 치료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모든 사례가 네 단계를 모두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국부] 치료에는 네 단계가 있다. 손으로 하는 검사, "거머리 붙이기", "주입", "뜸뜨기" 이다. 듀이Dewees[미국 의학 교수와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영국 부인과의사 베넷Bennet은 모두 자궁 경부나 외음부 바로 위에 거머리를 둘 것을 주장했다. 심지어 베넷은 의사들에게 거머리가 충분히 피를 빨아들이고 떨어질 때 몇 마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거머리를 세어 두라고 주의를 줬다. 베넷은 자궁 경부의 움푹한 곳 안으로 들어가려는 대담한 거머리들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는 "나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몇몇 환자가 경험한 것보다 더 격렬한 통증은 거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20세기의 사고방식으로는 덜 괴로울지도 모르지만 훨씬 더 무지막지한 것 - P183
은 이러한 의사들이 신봉한 자궁 내 "주입"이었다. 자궁은 일종의 잡동사 자루, 또는 한 격분한 의사가 말했듯이 "중국 장난감 가게"가 되었다. 물, 우유와 물, 아마인 차,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 마시멜로 즙이 신경증 여성 환자의 몸 안으로 주입됐다. 마지막 단계는 뜸뜨기였는데, 반드시기억되어야 하는 사실은, 이 단계는 마취제도 없이 겨우 소량의 아편이나알코올만으로 시술되었다는 것이다. 뜸뜨기는 질산은 고약을 붙이거나 혹은 더 심각한 감염인 경우에는 훨씬 더 강력한 수산화칼륨이나 "하얗게달 구어진 철제" 도구인 "실제 인두를 사용해서 시술되었다. 56 - P184
소를 제거한 여성들의 압도적인 다수는 중상류 계급의 여성들이었는데, 그이유는 결국 이러한 모든 절차에 돈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가난한 여성들이 단지 돈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부인과 의사의 실험적인 고문 목록에서 면제되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부인과 수술의 선구적인 작업은 오로지 외과적 실험이라는 목적만을 위해 자신이 데리고 있던 흑인 여성 노예들에게 시술한 매리언 심스Marion Sims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흑인 여성 노예들 중 한 명을 4년 동안 서른 번이나 수술했는데, 이는 수술 후 감염으로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었다.61 뉴욕으로 옮긴 후 심스는 뉴욕여성병원 New YorkWomeris Hospital 병동에서 가난한 아일랜드계 여성들에게 자신의 실험을 계속했다. 따라서 중간 계급 여성들은 의사들의 수술 자체로부터 가장 고통 받았지만, 냉혹한 실험기를 거치며 고통 받았던 사람들은 바로 가난한 여성들과흑인 여성들이었다. - P1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