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잘 못 마시고, 몸이 받아주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술이 불러일으키는 갖가지 좋지 않은 행태들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사람인 나는 이 책에 관심이 없었던 게 맞다. 아무튼, 술이라니. 


그러나 술을 안 마시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술 이야기를 하는 책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뭐 이런 건 다 핑계고, 읽어봐야 겠다 싶었던 건 모 님의 페이퍼를 보고. ㅎㅎㅎ 그리고 딱 마침 나에게 전자도서관의 세계가 열린 거지. 오 이런 신천.. 아니 신세계가. 


아직 방학이라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에서 딩굴거리며 책을 보기도 하는데, 어제 잘 안 되던 대출이 아침에 되길래 누운 채로 내리 읽음. 엄청 웃기네, 아하하하 웃어제끼며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아니 이건 또 뭐지. 잠깐 황당함이 뇌리를 스친다. 어느 부분이라 말하면 스포 될 테니 말기로 한다. 같은 부분에서 눈물 흐른 사람 찾습니다. 네, 아마도 거기, 생각하시는 그 부분이 맞을 거예요. 


눈물은 골드스타 냉장고 부분에 걸려서도 흘렀다. 이건 또 뭔가. 나는 어느새 아무때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설마. 설마. 요즘 안구가 너무 건조하니 이렇게 자주 울어주는 건 좋은 일이야. 그럼, 그렇고 말고. 


나는 술을 거의 안 마시지만, 술과 얽힌 기억들은 많은 편이다. 젊고 어릴 적엔, 술은 안 마셔도 술자리 분위기가 좋아서 빠지지 않고 따라다녔고, (나 빼고) 술 먹다 삘 받아서 동해 바다로 내리 달려 해돋이를 본 적도 있으며, '술 권하는 사회'에 가히 모범 사례로 꼽힐 만한 에피소드도 있다. 아 이렇게 몇 줄 적다 보니 술 안 마시는 사람의 입장에서 술 이야기를 쓰는 것도 재밌겠구나 싶다. ㅋㅋ 


가장 최근의 술에 관한 기억이 떠오른다. 제주(오 제주!) 여행 때였는데, 엄마와 동생과 나, 셋이서 숙소 근처의 식당에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여자 셋이 여행을 왔고 첫날의 느낌도 좋고 그래서 기분도 내고 싶은데, 이를 어쩌나, 우리 셋은 정말 술을 입에만 대도 얼굴에 술 마셨다고 표시나는 사람들이었던 거지. 그렇다고 못 먹는 술을 각 일병씩 시키면 두 병 이상은 남을 테고 가져가도 못 먹을 테고 남기면 버릴 테고 그건 또 이중삼중으로 낭비 아니겠느냐며, 메뉴판을 보며 고심 끝에 우리는 작은 병맥주 하나를 주문했다. ㅎㅎㅎㅎㅎ 셋이서 쬐매난 맥주 한 병. 시키면서 우리는 얼마나 쪼그라들었겠어. 멋쩍게 웃으며 주문했는데 사장님 왈. "잔 세 개 드릴까요?" 


푸핫. 사장님은 다 지켜보고 있었던 거지, 셋이서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을. 우리는 사장님의 배려로 사이좋게 맥주 한 병을 잔 세 개에 나누어 따르고 기분 좋게 잔도 부딪치고 맛도 보고(그렇다 순전히 맛도 보고). 더 가관은 뭐게? 밥 다 먹고 일어설 때 테이블의 잔 세 개에는 아직도 남은 맥주가... 쩜 쩜 쩜 


책을 다 읽어갈 무렵, 희한하게도 내 입에서는(사실 머릿속이라고 해야 되겠지만) 아주 가끔 달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 소주의 첫맛이 느껴졌다. 인생 통틀어 내 입에 소주를 넣은 건 정말 손꼽을 정도인데 말이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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